'모바일 수다' 뒤 남는 찝찝함…가시지않는 '불신' 왜?

#카카오톡의 서버 저장기간이 일주일이라는 말에 안심하면서 연예인의 루머를 퍼뜨리고 다녔던 회사원 김모씨는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수사기관이 실시간으로 감청할 수 있다는 말에 이전에 대화 내용도 다 감청되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때문이다. 평소 정부와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자주 지인들과 나누던 대학생 이모양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친하게 지내는 학교선배가 정당활동을 하면서 세월호 시위에 자주 참가했는데, 그 선배와 나눴던 대화가 검찰에 감청당하지 않았을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통신비밀보호제한조치 허가만으로 카카오톡의 대화내용을 사실상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카카오톡에 대한 불안감은 겉잡을 수없이 커지고 있다. 결국 카카오는 대화내용 암호화, 서버 미저장, 수사기관의 이용자 정보 요청 현황 공개 등 초강수를 꺼내들었지만 이걸로 텔레그램으로 발길을 돌리려는 이용자의 발길을 돌려세울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모바일 메신저도 더 이상 안심하고 떠들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 이번 논란으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늘어가는 수사기관의 검열과 다음카카오의 대응

◇뿌리깊은 사찰의 역사, 카카오톡으로 재현

우리 사회 민주화의 한 축에는 국가기관의 사찰과 도청에 대한 시민의 대응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에는 영장 없이도 위험분자로 낙인찍히면 개인의 자유로운 사생활을 드려다보며 사찰과 도청을 해 왔다면 지금은 영장에 의한 합법적인 수단으로 바뀌었다는 점만 달라졌을 뿐이다.

과거 도청은 국가기관이 통신사의 회원을 이용해 감청했다면, 지금은 인터넷과 모바일 서비스의 패킷을 가로채거나 사업자의 협조를 받아 대화나 서비스 이용내역을 실시간으로 통보받는다.


이를 위해 국정원이나 검찰, 경찰 등은 주요포털사업자를 담당하는 인원이나 부서를 별도로 배치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도 그 도를 넘고 있다며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있다"고 언급하자 검찰은 곧바로 사이버상의 명예훼손을 근절해야한다며 네이버, 다음, SK커뮤니케이션즈 등 포털사업자와 카카오를 불러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에게 참석을 통보한 것은 회의 당일 오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석우 카카오 대표가 "검찰이 오라는 데 안갈 수 있겠냐"고 말한 것도 수사기관이 지근거리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불안감의 발로인 셈이다.

◇통신비밀 보호 어디까지 제한할까?

논란은 국가가 범죄수사를 위해 개인의 통신의 비밀을 어디까지 제한할 것이냐는 문제와 맞물려 사태는 커져갔다.

카카오톡을 떠나 텔레그램으로 망명하는 이용자들은 다음카카오가 정부의 검열에 협조한다며 텔레그램으로 망명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검열도 문제지만 정부에 손쉽게 개인정보를 넘기는 다음카카오가 더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는 간단치 않다. 과거에는 수사기관은 영장없이 포털사이트에 협조요청을 보내 메신저 대화내용이나 이메일, 가입·접속 정보 등을 입수했다. 법원은 영장없이 이용자의 자료를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하자, 포털업체들은 쾌재를 불렀다. 영장없이는 어떤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근거없는 수사협조에 찝찝하게 협조하느니 법원이 판단한 영장에 따라 움직이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병박 정부부터 시작된 보수화는 법조계에도 영향을 미쳐 인터넷 서비스 이용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손쉽게 발급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통신비밀보호제한조치 청구의 인용률은 98.8%에 달했고, 압수수색영장 발부율도 91.6%에 이르렀다. 사실상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법원이 발급해준 셈이다.

다음카카오가 영장을 제시하는 수사기관에 이용자 정보 제공을 거부할 명분은 없었다.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만약 종로경찰서의 압수수색 영장이 세월호 참사 사태와 관련이 없는 흉악범에 대한 것이었다면 지금처럼 카카오톡에 대한 불만이 컸겠냐"며 "법대로 한 다음카카오로서는 억울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서비스 압수수색 영장발부 법원 신중함도 문제

더 큰문제는 영장발부 과정에서 영장이 미치는 의미와 파장에 대한 법원의 숙고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서버를 통째로 압수수색하면 서비스가 중단된다는 사실조차 모른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준 일도 있었다.

금태섭 법무법인 공존 변호사는 "수사기관은 포털업체를 길들이려고, 법원에서는 그 의미도 모른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 본사서버를 통째로 뜯어가려고 한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2011년 이후 법원은 감청이나 압수색에 대한 허가율이 90%를 넘겨 검찰이 청구만 하면 별다른 이견없이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통신비밀보호제한조치의 인용율은 98%에 달했고, 압수수색영장 허가율도 91.7%에 이르렀다. 사실상 수사기관의 필요에 따라 법원은 영장을 내주는 발급기 역할을 한 셈이다.

서울지역의 한 변호사는 "법원이 인터넷 서비스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할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발부하는 경향이 있다"며 "인신구속에 비해 압수수색은 영장발급이 비교적 용이한 편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음카카오의 대책 이용자 마음 잡을까?

다음카카오는 서버 저장기간을 3일로 줄이고, 비밀대화 기능을 적용하는 등 자신들이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실상 수사협조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하지만 정작 잡아야할 범죄자들까지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더 나쁜 것은 범죄와도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위축돼고 표현의 자유를 찾아 망명을 떠나는 것이다. 이미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텔레그램을 설치했다. 이들은 언제든 카카오톡을 떠나 새로운 망명지에 정착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이미 광우병 사태를 거치면서 이메일 압수수색을 피하기 이해 G메일이나 야후메일과 같은 해외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나쁜 학습효과가 생겨난 셈이다. 검찰이 범죄사실 모의나 공범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증거로 제시하는 모바일 메신저의 대화 역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왓츠앱이나 텔레그램을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의욕적으로 근절하고자 했던 사이버 명예훼손에 대한 대응이 오히려 다른 흉악범죄자들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모바일융합과 교수는 "국가가 국민을 불신하고, 국민이 국가를 불신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며 "정작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텔레그램과 같은 외국 서비스를 악용하고 선량한 이용자의 표현위 자유만 위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