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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로·웰빙길…"여기가 외국? 우리집도 못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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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석환 기자
  • 기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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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1.18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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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도로명주소]85km 구간에 도로명 주소 달랑 하나‥엉뚱한 외래어도 '수두룩'

"새 주소 사용 더 이상 강요하지 말고 폐지해버립시다."

안전행정부가 올 1월부터 전면 시행 중인 '도로명주소' 안내를 위해 운영 중인 홈페이지(www.juso.go.kr)에 올라온 한 민원인의 글이다. 강원도 원주에 살고 있는 이 시민은 가로로 40km나 되는 지역의 주소가 모두 '치악로'로 돼있는 '도로명주소'로는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기존 지번주소의 '동(洞)' 이름 등을 활용하지 않으면 도저히 찾아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시민의 불만은 '빙산의 일각'이다. 전국엔 이런 사례가 허다하다.
17일 안행부에 따르면 가장 긴 구간에서 도로명주소로 쓰고 있는 곳은 전라남도 진도군이다. 고군면에서 진내면까지 무려 85km 구간의 주소가 '진도대로' 한가지로 부여돼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경북대로'(경북 칠곡군~안동시 81km), 강원도 홍천군 '구룡령로'(홍천군 화춘면~내면 78km),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로'(청송군 사춘리~진안리 64km),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대로'(거제시 남부면~거제대교 63km) 등도 마찬가지다.

특히 강서·양천·금천·구로·관악·동작·서초·강남 등 서울지역 8개 자치구 31km 구간에 걸쳐있는 '남부순환로'나 서울 중구에서 종로·서대문·은평구를 거쳐 경기도 고양·파주시까지 뻗은 47㎞ 길이의 '통일로'와 같이 여러 개의 행정구역이 겹친 경우는 더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시행한지 한달도 되지 않아 곳곳에서 도로명주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도로명주소 안내 홈페이지엔 지난 1일부터 이처럼 새 주소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내용을 포함해 400건이 넘는 민원성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하루 평균 300건이던 콜센터(☎1588-0061)를 통한 상담건수도 올 들어 하루 평균 700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래픽=강기영 디자이너
/그래픽=강기영 디자이너

안행부 관계자는 "시행 초기다 보니 문의가 급증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지번 주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 때문에 상담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도 "불편한 점을 구체적으로 제기하는 문의보단 제도 자체에 반감을 갖고 있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스포츠로·웰빙길·엘씨디로…엉뚱한 외래어주소 '수두룩'

일부 지역에서 고유 동·리(里) 명칭 대신 사용되고 있는 엉뚱한 외래어 주소도 논란이 되고 있다. 경남 남해군의 '스포츠로', 전남 진도군의 '웰빙길', 서울 영등포구의 '디지털로', 경기 파주시의 '엘씨디로' 등이 대표적이다.

남해군 서면 서상리는 스포츠 전지훈련지로 각광받고 있어 '스포츠로'로, '쇠를 팔던 곳'이라는 경기도 파주시 금승리와 덕은리 일부는 액정표시장치(LCD) 산업단지에 가깝다는 이유 때문에 '엘씨디로'와 같이 낯선 주소로 이름이 지어졌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주소명으로 충남 홍성군의 '토굴새우젓길'이나 울산시 중구의 '먹자거리' 등도 거론되고 있다.

향토 지명을 연구해 온 박호석 전 농협대 교수(지명연구가)는 "뜬금없는 행정편의주의적인 단어와 외래어로 지명을 지은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기존 지번주소는 과거 땅이름이나 역사·문화·인물 등을 딴 경우가 많다. 산·강 등 자연도 투영됐다. 하지만 도로명주소는 이것들을 없애고 일련번호로 만들었다. 주소에 담긴 역사·문화적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래픽=강기영 디자이너
/그래픽=강기영 디자이너

지난해 6월 도로명 주소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대한불교청년회 등에 따르면 기존 법정지명이 새 도로명에 반영되지 않아 사라진 동·리 지명이 전국적으로 4000∼5000곳에 이른다. 일례로 조선왕조 초기에 행정구역명으로 지정돼 500년 넘게 유지돼온 서울 종로구 지명의 경우, 전체 72개 동명 가운데 59개(82%)가 사라졌다.

박 교수는 "큰길 위주의 도로명 새 주소가 시행되면서 지명의 절대수가 없어졌다"며 "정부가 주소체계 변경을 충분한 논의 과정 없이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정부는 기존 마을이름, 지명, 동·리가 다수 반영돼 있고 동 명칭은 도로명주소 참고항목(괄호)으로 표기할 수 있다는 설명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일련번호 대신 골목길과 작은 길에 고유의 이름을 붙여줬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국민 눈높이·생활환경에 맞는 체계 고민해야"

전문가들은 도로명주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한 상황에서 국민 눈높이와 생활환경에 맞는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어려운 주소를 국민들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이 사라진 도로명주소를 일방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익숙한 동명을 병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로명주소의 '거리'보다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동'에서 지리적 공동체성을 갖는다"면서 "당분간은 동이름을 추가해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국민들의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서호 한남대 도시부동산학과 교수도 "도로명주소의 인지속도가 늦는 것은 당연하다"며 "일시적으로라도 동을 같이 명기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정치권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새주소 시행을 전면 재검토하거나 동 이름을 추가하는 절충방식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기 민주당 의원도 "지금까지 투입된 비용도 많고 너무 많이 진행돼 되돌리기에는 늦었다"면서도 "지금이라도 새 주소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최적의 방안을 찾는 토론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이 손쉽게 알 수 있는 도로명을 새로 만들어야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현재 사용 중인 도로명이 행정편의주의적으로 나온 것이 많아 지역민 중심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역별로 주민검토위원회를 만들어 지역민 중심의 논의가 새롭게 이뤄져야 한다"며 "선진국 제도라고 그냥 가져올 것 아니라 우리 현실에 맞도록 고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교수도 "지역민이 이해 못하는 주소가 어떻게 뿌리내릴 수 있겠냐"며 "역사·문화 등이 반영된 이해하기 쉬운 도로명을 지금이라도 연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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