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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생활고때 건네진 국정원 검은 돈, 거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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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영 기자
  • 이동우 기자
  • 유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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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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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민간사찰]5년간 국정원 프락치로 민간인사찰 활동한 A씨 인터뷰 전문

[편집자주] 문재인 정부에서 금지했던 정보기관의 국내 민간인 사찰이 여전히 국가정보원내 일부 조직에서 비밀리에 자행되고 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국가정보원 경기지부 사찰조직에서 '김 대표'로 불리며 활동해온 프락치 A씨가 머니투데이에 그 실태를 증언했다.
MT단독

국정원이 프락치 '김 대표'에게 건넨 녹음기 위장용 가방. 3중으로 위장된 속주머니를 벗겨내면 녹음기가 위치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김 대표'는 이 가방을 들고 지난 5년간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을 대행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국정원이 프락치 '김 대표'에게 건넨 녹음기 위장용 가방. 3중으로 위장된 속주머니를 벗겨내면 녹음기가 위치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김 대표'는 이 가방을 들고 지난 5년간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을 대행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한국대학총학생회 연합(한총련) 대의원 출신인 A씨에게 국가정보원이 처음 접근한 것은 군생활 시절인 2006년이다. 국군 기무사령부와 함께 A씨의 학생운동 행적을 조사한 국정원은 A씨가 고향에 내려가 자영업을 하던 2014년 가을 다시 다가가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이들의 최근 행적을 묻고, 동향을 알려주면 보상하겠다며 돈을 건네기 시작했다. 다음은 5년간 국정원이 주는 돈을 받으며 민간인사찰을 한 '김 대표'(국정원 호칭) A씨와의 일문일답.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
▶️돈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대가 없이 와서 수십만원씩 건넸다. 학생운동하던 사람들 사진을 보여주며 연락을 유지하는지, 근황은 어떤지 물었다. 부담된다고 찾아오지 말라고 해도 계속 왔다. 국정원 직원 최모씨, 박모씨 등 세 명이 찾아와 자신들과 일하면 지금보다 사정이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 사람들(사찰 대상자)을 해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궁금한 것을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알려만 주면 된다고 했다.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빚이 쌓이고, 아이가 태어날 때가 돼 돈 들어갈 곳이 많았다. 충남 서산의 한 룸살롱에서 만나 사업 의향이 없냐는 질문을 받았다. 서울대 출신 주사파 조직이 아직 왕성하게 활동을 한다며 이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해 관계를 유지하라고 했다.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술을 강권하고 분위기를 몰아갔다. 자신들의 수사가 한국 사회를 위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빚이 쌓이고, 아이가 태어날 때가 임박하면서 다급했다. 결국 그들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사찰 행위를 '사업'이라 부르면서, 나를 '김 대표'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말로만 대표지 실제로는 노예처럼 일했다.

-국정원의 지시는 주로 어떤 내용이었나.
▶️학교선배들을 만나서 정보를 수집하라고 했다. 처음에 만난다고 한 장소에 내가 가지 않자 화를 냈다. 나중에 보니 현장에 국정원 팀이 모두 출동한 것 같았다. 내 정보를 믿고 현장에 나갔는데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해 화가 난 듯했다. 이후 지인의 결혼식에서 그들이 요청했던 사찰 대상자들을 만나 연락처를 교환하고 술자리를 가졌다. 이 사실은 국정원에 알리지 않았는데, 나중에 왜 만남을 보고하지 않았냐고 내게 물어봤다. 내가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내 행적을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이후 녹음기 등 장비를 건네며 "이게 통합진보당 해산시킬 때 썼던 제품"이라고 했다. 이XX(RO사건 내부고발자)도 이 제품을 썼다면서 녹음기를 숨길 수 있는 특수제작 가방도 건넸다. 이후 녹음기 가방을 들고 선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녹음한 것을 국정원에 제출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활동가를 감시할 목적으로 서울에 자취방도 얻어줬다. 그 곳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아이가 어린데 서울에 자주 머무는 게 힘들어 내가 사업하고 있는 고향에 있고 싶다고 하자, 지역에 청년회를 만들라고 했다.

(왼쪽)국정원 직원들은 '김 대표' A씨에게 지역 청년회 사무실을 얻어주고, 활동비를 지급한 뒤 월세로 쓰였는지 증빙자료를 요구했다. (오른쪽)A씨가 국정원 직원들에게 매달 보낸 활동비 월세 지출 내역. /사진=A씨
(왼쪽)국정원 직원들은 '김 대표' A씨에게 지역 청년회 사무실을 얻어주고, 활동비를 지급한 뒤 월세로 쓰였는지 증빙자료를 요구했다. (오른쪽)A씨가 국정원 직원들에게 매달 보낸 활동비 월세 지출 내역. /사진=A씨

청년회를 만들고 열심히 활동해 신뢰를 얻은 뒤 조직의 상층부로 진입하라는 지시였다. 청년회 사무실 보증금도 국정원이 내줬다. 이후 지역 활동가들 근황을 알아내고, 전 국회의원 등 조직 상층부에 접근하라고 지시했다. 내가 운영하던 캠핑장에 사찰대상이 찾아올 때면 소화기형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기도 했다.

-자료 제출 이후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매주 또는 격주로 수원에 있는 국정원 사무실에 가서 진술서를 썼다. 진술서를 쓰기 전 그들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진술하는 방법을 국정원이 알려줬다. 마치 연기하듯이 합을 맞춰본 뒤 진술서를 썼다. 진술서 작성을 시작하면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뒤 밀봉해 보관했다. 진술서를 쓸 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고지받았다'는 내용이 있는데, 한번은 "변호인 불러도 되느냐"고 물어봤더니 "죽여버리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국정원 사무실로 곧바로 가면 주변에 드나들던 변호사 등이 나를 알아볼 수 있다며, 근처 광교 이마트에 내 차를 대면 국정원이 나를 그들의 차에 태워 건물에 들어가는 식이었다. 최근 광교 이마트가 주차비를 받기 시작하면서 광교 토즈 스터디센터로 접선장소를 바꿨다.

주사파 조직을 잡겠다는 목적이었는데, 내가 주체사상을 너무 모르면 그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다면서 국정원 직원이 부산의 한 호텔에서 직접 주체사상을 가르쳐줬다.
북한에서 만든 원서를 학습교재로 썼는데, 정작 내가 감시한 사람들 입에서 주체사상이나 관련 단어가 나온 적은 없었다. 주로 인구감소에 따라 지역사회가 소멸할 위기에 있으니 지역사회 운동을 열심히 하자는 내용이 많았다.

-보상은 얼마나 받았나.
▶️월 기본급 200만원에 진술서 1회당 50만원을 받았다. 경비 영수증을 제출하면 추가 금액도 받았다. 시민단체 간부로 승격되자 "잠입에 성공했다"며 성과급 300만원을 줬다. 나중에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법정에서 사찰대상들의 위법행위를 증언하면 RO사건 제보자에게 준 10억여원과 유사한 금액을 주겠다고 말했다.
다만 진술서를 허술하게 쓰거나 일정을 맞추지 못해 약속을 어기면 돈을 깎거나 주지 않았다. 중간에 수차례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기본급 없이 진술서 1회당 80만원으로 금액을 바꿨다. 하지만 2주에 100만원만 주는 등 약속한 돈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5년간 받은 돈은 1억원이 좀 넘는 것 같다. 이제 그만 이 일을 끝내고 싶다고 생계를 해결할 수 있게 방편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자 500만원씩 6개월 더 주겠다면서, 6개월만 더 일하라고 했다. 이번 달에 있던 일이다.

-민간인 사찰이 불법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나.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국정원은 항상 합법적인 일,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권이 바뀐 뒤 일 그만둬야 하지 않냐고 묻자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도 버틴 조직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우리 할 일은 한다"고 말했다. 태국으로 발령받아 나간 이전 담당 직원도 국제전화를 걸어와 "언제나 조직을 믿으라"고 설득했다.

한 직원은 일을 그만두겠다는 나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다들 행복해 보이지 않느냐. 우리 일은 저 사람들이 지금처럼 계속 아무 생각 없이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인 사찰의 합법성에 대해서도 언제나 "네가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거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경찰에서 온 여직원이 그렇게 합법성을 강조했다.

-박근혜 정권에서 시작된 민간인 사찰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바뀐 부분이 있나.
▶️전혀 없다. 하는 일 똑같고 시키는 것 똑같고. 정권 바뀌는 걸 못 느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그들이 나를 데리고 유흥업소 가서 돈 쓰는 것도 똑같고. 그러면서 안심시킨다. 정권 바뀌어도 할 일 한다고.
서훈 국정원장이 판문점에서 눈물 흘리는 뉴스를 보면서 "국정원장의 성향에 따라 이 일이 끝나는 게 아니냐"고 물은 적이 있다. 국정원 직원이 정색을 하면서 "우리 원장님 성향이 어때서 그러느냐. 우리 일에는 아무 문제 없다"고 말했다. 유흥업소에서 쓰는 돈이 아까워서 "차라리 그 돈 현금으로 달라"고 수차례 말해봤지만 "네가 더 열심히 해야 돈으로 준다"면서 내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2017년 2월 탄핵정국 당시 A씨가 소속된 시민단체가 집회 현장에서 활동하는 모습. A씨는 이 사진을 국정원이 제공한 장비로 촬영해 국정원에 제공했다. 이 활동은 국정원에 '주체사상 신봉조직의 활동'으로 보고됐다. /사진=A씨
2017년 2월 탄핵정국 당시 A씨가 소속된 시민단체가 집회 현장에서 활동하는 모습. A씨는 이 사진을 국정원이 제공한 장비로 촬영해 국정원에 제공했다. 이 활동은 국정원에 '주체사상 신봉조직의 활동'으로 보고됐다. /사진=A씨


-왜 프락치 활동을 그만두려고 마음 먹었나.
▶️내 몸과 마음, 인생이 다 망가졌다. 원래 하던 사업은 국정원이 시키는 일 때문에 제대로 하기가 힘들었다. 운동권들 모임 있으면 1~2주씩 합숙하면서 자료 수집해오라고 한다. 가족에게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 채 집을 1주일에 절반 이상 비우는 날들이 많았다.
국정원이 주는 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돈을 주지 않겠다"며 생계를 볼모로 일을 강요했다. 결국 생업도 제대로 못하고 집에도 못 들어가면서 이혼하게 됐고, 양육권도 전처에게 내줬다.
나를 믿는 사람들 앞에서 불법 장비를 들고 자료를 모으다보니 스트레스를 받아 신경 손상에 따른 안면마비까지 왔다. 그런데 이혼한 다음날에도 지방에 내려가 사찰하라고 지시하고, 이혼했으니 이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겠다고 좋아했다. 아파서 병원에 간다고 하면 병원 간 사실을 믿을 수 있게 영수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당신들이 이렇게 날 망가뜨렸으니 생계를 책임지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건 "일을 더 열심히 해서 돈을 받아가라"는 질책뿐이었다.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재무구조를 개선하라"고 하고, 안면마비로 건강이 악화됐다고 하면 "동네 문화센터에 운동 다니라"는 식이다.
오히려 내가 감시하던 대상 중 한 명이 신용대출을 받아 나를 도와줬다. 죄책감이 커졌다. 마음이 찢어졌다. 그 순간 "사찰 대상자가 아니라 국정원이 더 문제였다"고 깨달은 거다.

-일을 그만두겠다고 통보한 뒤 어떤 일이 있었나.
▶️일을 그만두면 생계가 막막해지니 보상을 해달라고 했다. 보상해주지 않으면 그동안 있던 일들을 언론 등에 알리겠다고 했다. 국정원 과장이 "우리는 만만한 조직이 아니다. 나는 수지킴 사건도 겪어봐서 그냥 대응만 하면 되는데, 너는 잃을 것이 많다. 내가 이 분야 베테랑이기 때문에 며칠만 피곤하게 대응하면 된다. 언론사들은 돈되는 일 아니면 보도 안한다"고 윽박질렀다.

일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면서 6개월만 더 일하라고 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더 받으라고 했다. 동시에 내가 폭로하겠다고 협박한 점 때문에 나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진다며, 국정원 사무실에 와서 보안서약서를 쓰고 선서를 하라고 했다.

-앞으로 계획은 있는가.
▶️없다. 내 인생은 이미 국정원 때문에 다 망가졌다. 국정원과 정부를 상대로 내가 5년간 노예처럼 부림 받으며 일해온 것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다. 내가 사찰하던 대상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기 위해 언론 공개가 끝난 뒤 만날 것이다. 사죄와 정부 소송이 끝나면 한국을 떠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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