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권리 가이드라인 두고 "한국판 첫발" VS "방향 틀려"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 시행을 앞두고 정부와 관련업계의 갈등의 골이 깊다. 정부가 사업자의 협조를 얻기 위해 정책설명회를 열었지만, 사업자들과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다음달 시행을 강행하는 정부에 맞서 포털, 게임, 쇼핑몰 등 업계는 지속적으로 반론을 제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0일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 관련 정책설명회에서 구체적 입장을 표명했지만 관련업계의 우려가 오히려 커졌다. 사업자의 질문에 '사업자 자율에 맡긴다'는 방통위 답변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이용자가 자신의 온라인 게시물을 직접 삭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게시판운영 사업자나 검색서비스 사업자에게 해당 게시물에 대한 접근 배제 조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 골자다.


◇ "개인정보보관 기간도 애매하고 시행일도 조급"

사업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개인정보 보관 기간과 방식이다. 가이드라인은 자기게시물임을 입증하기 위해 접근배제 요청자가 관련 자료를 사업자에게 제출토록 했는데, 해당 자료는 개인정보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가이드라인이 해당 자료의 보관 기간을 '접근 배제 조치 등 목적을 달성한 후 파기'나 '적정기간 보관'과 같이 애매한 문구로 정리했다는 점이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접근 배제 조치 이후 제3자가 '접근 배제된 게시물이 내 것'이라고 이의 신청을 언제 할지 모르는데 요청인이 제출한 자료를 접근 배제 직후 파기할 수 있겠냐"면서 "반대로 장기 보관 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위법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자칫 가이드라인에 따라 조치한 후 위법으로 결정돼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관련업계는 이같은 애매한 조항을 남겨둔 채로 다음달 시행을 강행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당장 한 달 안에 관련 내부 규정을 수립해야 하는데, 사업자 자율에 맡기는 부분이 많아 그만큼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접근 배제(블라인드) 요청을 받고 조치하는 기술적 준비에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방통위는 기존 임시조치 등 제도로 이용하던 기술(블라인드)로, 복잡한 시스템이 아니라고 보고 다음달 시행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업자 의지만 있다면 충분한 시간이라는 설명이다.

◇"잊힐 권리, 제3자게시글에 대한 권한이 핵심…방향 틀려"

이번 가이드라인이 세계적인 '잊힐 권리' 논의 흐름에서 벗어난 결과물이 아니냐는 근본적인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제3자 게시글에 대한 잊힐권리를 논의하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라는 주장이다. 유럽과 일본 등 사례를 보면 나에 대한 제3자의 게시글에 대해 삭제를 요청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포털업계의 한 관계자는 "잊힐 권리 논의가 촉발된 유럽 사례처럼 제3자가 올린 게시글이 핵심"이라면서 "이번 가이드라인은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목적이 불분명한 가이드라인 제정으로 사업자에게 업무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주장이다.

방통위는 이번 가이드라인은 잊힐 권리 보장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반박한다. 관련 논의가 제3자 게시물 등으로 확대되면 그에 맞는 다른 제도가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고 보고, 다음달 시행을 계획대로 진행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