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전력설비 위치까지 점검하겠다"

"전력설비 위치에 대해 고민한 적은 없었다."
"사용후 핵연료는 물(저장조)에 잠겨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해 큰 문제가 날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수년간 주재원으로 근무를 했던 교육과학기술부 고위관계자의 얘기다. 원전에서 오래 근무를 하면서도 원전에 전력을 공급하는 전력설비의 위치나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하는 저장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걸 당연시한 것이다.


이 관계자만이 아니다. 대다수 원전 관련자들이 "전력설비 위치는 뭐 설계도에 따라 지었겠지", "사용후 핵연료는 물 속에 있으니 안전하겠지"라는 생각으로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런 사안들은 기존 원전 안전점검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이다.

하지만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이런 생각들이 안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본 후 "발전설비가 중단돼 큰 사고를 야기할 수 있구나", "사고 발생시 저장조도 위험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李대통령 "타산지석삼아 확실하게 안전 챙겨라"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진행된 교육과학기술부의 '국내 원전 안전점검 방향'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원자력 발전을 전면 점검하고 매뉴얼 점검 더 보완할게 있는지 챙겨 달라"고 당부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교과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일본의 상황을 거울삼아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가능한 모든 위험요소 등을 파악해 보완해 달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보고에서 전문가들은 일단 우리 상황은 일본보다 더 안전하다는데 입을 모았다. 황주호 에너지기술연구원장은 "우리나라는 사용후 핵연료를 별도 핵연료 건물동을 만들어서 콘크리트 건물에 잘 보관하므로 매우 안전하다"고, 김종신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현재 비상전원이나 비상 노심 냉각시스템 수수 폭발을 늦출 수 있는 시스템 등 한국 원전은 자연재해도 방지가 가능해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 "예상 밖 위험까지도 대비하겠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교과부가 나서서 총점검을 실시키로 했다. 구체적인 점검인력 구성과 점검 시기, 그리고 점검 내용 등은 21일 예정된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결정될 예정이지만, 큰 틀은 그동안 당연시 여겼던 부분들에 대한 위험요인 여부 파악과 대형사고 발생시 대응 점검 등이 될 전망이다.

김영식 교과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일본 사태로 원전 안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며 "그동안 안전하다고 당연시했던 부분을 다시 확인하고 점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국내 원전에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설비나 비상발전기 등이 과연 지진이나 해일 등으로 물에 잠기거나 할 위험은 없는지 등도 파악하게 된다. 만약 그럴 위험이 있다면 보다 높은 지역으로 이전을 하는 등의 보완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원전 종사자들이 사고시 얼마나 매뉴얼에 따라 잘 대처하는지 역시 점검하게 된다. 매뉴얼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사람들이 지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긴급상황에서 매뉴얼대로 움직이려면 머리로만 알고 있어서는 어렵고, 몸에 익혀둬야 한다. 이번 점검에선 이런 부분도 체크할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사고 발생시 사람들이 매뉴얼을 지키지 않는 이유는 몰라서 못 지키거나, 매뉴얼과 달리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며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이든 그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몸에 체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교과부는 이번 점검을 위한 검사진 구성을 가장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구성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여건이 허락하면 외국 전문가를 초빙할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아울러 이번 점검에서는 고리 1호기 등 20년 이상 가동중인 9개 원전의 안전성을 보다 중점적으로 확인할 계획이다. 20년 이상 가동중인 원전은 고리 1~4호기를 비롯해 월성 1호기, 영광 1, 2호기, 울진 1, 2호기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