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색깔 내놓은 '한나라'… 與 개명의 역사

한나라당이 오는 2월부터 이름을 바꾼다. 지난 1997년 11월 신한국당에서 개명한 지 14년 3개월 만의 일이다. 선거 때마다 간판을 바꾸며 '이합집산'을 되풀이했던 한국정치사에서 보기 드물게 오랫동안 당명을 지켜왔지만 정당정치 위기와 쇄신 바람 속에서 다시 '당명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26일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당명변경을 의결했다. 황영철 대변인은 "27~30일 나흘간 국민공모를 거친 뒤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새 당명을 확정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또 빠른 시일 안에 당의 로고를 새로 만드는데 이어 당의 상직 색인 '파란색'도 바꾸는 것으로 "고려중"이라고 밝히면서 당의 면모를 일신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과거 당명 변경에 따른 효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돈봉투' 파문, 디도스(DDoS) 사건 등으로 19대 총선 '고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새 간판이 과연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가 문제다.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을 과거 민주정의당(민정당)에서 민주자유당(민자당), 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당의 후신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우선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을 배출했던 민정당은 당시 '여소야대' 구도 극복 및 보수연합을 목적으로 정계개편을 추진, 1990년 1월 민정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김영삼,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 3인의 '합당' 선언으로 민자당을 탄생시켰다.

민자당은 출범 초기부터 극심한 내분을 겪으며 당명 교체 효과를 보지 못했다. 뿌리가 다른 계파간의 결합으로 인한 내분, 노태우 대통령의 탈당 등으로 내홍을 거듭했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 당선으로 잠시 갈등을 봉합했지만 민정계의 이탈, 전·노 대통령의 구속 등으로 집권세력에 대한 민심이반이 극심해지면서 1995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자 김 대통령은 '역사바로세우기'를 내세우며 3당 합당의 잔재를 씻어내기 위해 당명 교체를 지시, 신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신한국당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예상 밖의 '승리'을 거두면서 성공적 출발을 알렸다. 또 집권 여당에서는 처음으로 이회창 후보를 대선후보로 선출, '대세론'을 선점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달리는 듯 했다. 걸림돌은 역시 집권 가능성이었다. 아들 병역문제와 경선 주자였던 이인제 후보의 탈당으로 이 후보 지지율이 하락했고, 김 대통령이 탈당하면서 신한국당 내부의 '이회창 흔들기'가 본격화됐다.

결국 이 후보는 15대 대선을 1달 앞둔 1997년 11월 조순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간판을 '한나라당'으로 바꿨다. 권력의 '부침'과 생사를 함께 하는 한국 정당의 운명을 재현한 것. 그러나 결과는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귀결되며 한나라당은 처음으로 야당을 경험하게 됐다.

야권 역시 권력의 이동에 따라 창당을 거듭해 왔다. 김대중 후보 주도로 1987년 대선 직전 창당된 평화민주당은 이후 김 후보의 행보에 따라 신민주연합,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로 변신을 거듭해 왔다.

1997년 정권교체 후 탄생한 새천년민주당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키며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김 대통령의 직속 계파인 이른바 '동교동계'와 비주류였던 노 대통령 지지 세력이 대립하면서 2003년 '친노' 정당인 열린우리당이 창당됐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탄핵' 사태의 반사이익으로 154석의 거대 정당을 이뤘지만 정권 후반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계파 싸움이 거듭되면서 분열됐고 다시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 등의 복잡한 재통합 과정을 거쳐 2008년 2월 민주당을 창당했고, 지난해 12월 시민사회진영 및 노동계를 규합해 통합민주당이 출범했다.

이 같은 사례에 비춰볼 때 새 이름의 한나라당 운명은 결국 총·대선의 성패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또 19대 총선은 현실적으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주도로 치러지는 만큼 총선 승리로 당 장악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따라 새로운 당명의 수명이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나라당 한 수도권 의원은 "재창당을 뛰어넘는 수준의 쇄신을 말해 놓고 겨우 당명 개정에 그칠 것인가"이라며 "정책과 인물의 쇄신을 통해 한나라당의 변화가 진정성 있게 국민에게 다가가지 못한다면 이름을 바꾸는 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