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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에 마음을 열면 '구라'도 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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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일 배문고등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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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27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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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서재에 놀러왔습니다] 허풍쟁이 '이풍' 이야기? '풍의 역사'

허구에 마음을 열면 '구라'도 진실이 된다
“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조용필의 노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가사다. 이 노래를 만든 작자를 아는가? 바로 ‘이풍’이다. 이풍이 누구냐고? 이풍은 최민석의 '풍의 역사'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열 살 때 이미 청년의 체구를 가지게 되어 서른 살 과부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 주인공, 준수한 외모와 기막힌 변신술과 화려한 입담과 체력으로 대한민국의 격동의 시기를 헤쳐 온 소설 속의 남자, 이풍이 이미 언급한 조용필의 노래를 만든 작자다. 실재하지 않는 인물이 실재하는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이 헛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점잖게 말하면 그 헛소리가 픽션(fiction)이 아니고 무엇인가.

픽션의 역사는 유구하다. 곰이 사람이 되었다, 한 사나이가 지팡이로 바다를 갈랐다, 갓 태어난 아기가 일곱 걸음을 떼었다, 처녀가 애를 낳았다, 죽은 사람이 사흘 만에 부활했다, 고개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아낙네가 돌이 되었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

신화와 전설은 거짓말, 뻥, 구라, 점잖게 말해서 허구(虛構)의 보고(寶庫)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거짓임이 분명한 줄 알면서도 허구에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더 정확히는 이야기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서사(敍事)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본격 소설이 잘 팔리지 않는 현실을 염려하는 문단의 엄살에 불과할 뿐이다. 드라마, 영화, 만화, 게임, 노래, 도처에 이야기는 넘쳐난다. 심지어는 사건의 배후에서 누가 어쨌다더라 하는 음모론도 이야기의 형식을 빌어 전파된다.

미디어의 발달로 도처에 이야기가 넘쳐나는데도 대중들은 이야기의 빈곤을 느낀다. 대체 재밌는 이야기가 없다. 피곤한 음모론 아니면 누가 착한 일을 했더라는 미담들뿐이다.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판에 맞춘 듯 그럴싸한 논리를 갖는다. 음모론조차 앞뒤의 아귀가 맞아야 유통의 자격을 얻는다.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가 황녀가 되었다는 식의 황당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은 ‘병맛’이란 레테르를 붙이고 비주류 시장에서나 거래된다.

최민석의 '풍의 역사'는 전통적인 뻥과 구라의 입담들이 주류시장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판매대의 한 자리를 꿰차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은 희대의 허풍쟁이 `이풍`의 일대기를 그렸다.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풍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베트남전쟁과 박정희 정권, 제5공화국, 서태지 출현까지 전 세계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에 개입해 좌충우돌하는 영웅적(?) 활약을 보여준다.

허구에 마음을 열면 '구라'도 진실이 된다
미국의 프로레슬링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의 쇼를 보면서 저거 사실이야, 라고 묻는 사람은 허구를 즐길 자격이 없다. 영국의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는 독자가 어떤 이야기든 경험하려면 불신을 스스로 유예해야 한다고 했다. 쉽게 말해서 속아줄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적은 의심, 시시콜콜 캐묻는 정신이다.

최민석은 좋아하는 작가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꼽았다.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은 어떤가. 소설의 무대 마콘도에서는 돼지꼬리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기도 하고, 멀쩡한 처녀가 공중으로 솟기도 하지 않던가. “진짜?” 혹은 “리얼리?”라고 묻는 정신은 픽션의 장래를 위해서도 그다지 권장할 태도가 아니다.

최민석의 소설은 주인공 이풍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삶에는 언제나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순간 비로소 진실이 되는 게 있단다"라고. 흥부의 박씨에서 나온 보물도 그런 것이 아닐까. 선을 쌓은 집안에 경사가 난다는 것을 믿는 자에게 '흥부전'은 사실은 아니라고 할 수 있어도 진실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제비의 박씨는 사실은 아닐지언정 가난한 사람의 판타지요 배고픈 자의 진실이다. 허구에 마음을 열면 구라도 진실이 된다.

◇풍의 역사=최민석 지음, 민음사, 280쪽/1만1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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