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사장이 말하는 아깝다! 이책<6>

◇고전이 된 삶=이나미 리쓰코 지음/ 김태완 편역/ 2013/메멘토

원고가 하나라도 들어오면 고이 받들어, 마르고 닳도록 마름질해서 출간하는 것이 1인출판사가 처한 운명. 그렇게 해서 낸 첫 책이 바로 '고전이 된 삶'이다.

이 책은 '사기'를 써낸 사마천부터 중국 리얼리즘 소설의 선구자인 오경재까지, 중국 문학사에서 치열하게 자기를 표현하려고 했던 문장가 열 명의 파란만장한 삶을 추적한 책이다.


옮긴이 김태완은 다양한 장르에 걸친 이들의 대표 문장을 일일이 찾아 번역을 했다. 덕분에 비수같이 날카로운, 울분에 찬, 비감한, 쾌락한, 활달한, 신랄한, 유려한 고전 문장의 진면목을 책에 담을 수 있었다.

처세와 허세, 그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책. 하지만 스스로를 불태워 역사를 기록하고, 삶을 노래하고, 이야기를 창조했던 이들을 만나면서 누군가는 일용할 행복을 얻었으리라 확신한다.




◇북극을 꿈꾸다=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2014/봄날의책

막스 피카르트의 '인간과 말'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등 세계의 산문을 미니멀한 디자인과 단단한 만듦새로 선보이고 있는 봄날의책은 여덟 종의 책으로 이미 열혈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는 1인출판사다.

'북극을 꿈꾸다'는 “존재하는 것들의 심연까지 내려가, 그 본질을 글로 보여주는” 봄날의책 세계산문선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책이다. 문학과 과학, 그리고 인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북극의 대지와 동물, 사람을 그려내는 르포르타주는 이 책의 표면일 뿐. 겹겹이 쌓인 텍스트의 층위 아래에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가 거대한 빙산처럼 숨어 있다.

녹고 있는 빙하처럼 텍스트의 미덕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결코 절멸되지는 않을 터. 촉수를 뻗치고 있는 이들에게 언젠가는 발견되리라.



◇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칠레, 또 다른 9.11
=살바도르 아옌데, 파블로 네루다 공저/ 정인환 역 / 2011 /서해문집

책이 무에 그리 아까우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는 미국의 사주를 받(았을지도 모르는) 피노체트가 일으킨 쿠데타 와중에 망명조차 거부한 채 싸우다 죽어갔는데. 그때 그의 나이 66세. 나는 진정으로 아옌데라는 인물이 인류 역사에서 사라져가는 것이 두려웠다. 참된 인간이 잊히고 거짓된 인간이 기억된다면 그건 인간 세상이 아니라 짐승의 세상일 테니까.

아옌데가 사망한 1973년 9월 11일로부터 정확히 38년 만인 2002년 9월 11일, 뉴욕 한복판에서 수천 명이 죽는 테러가 발생한다. 그러나 기억하는가? 피노체트가 죽인 것으로 확인된 시민만 해도 그 숫자를 능가한다는 사실을. 부자나라 시민의 죽음은 영원히 기억해야 하고, 힘 약한 나라 시민의 죽음은 잊어도 되는가?




◇세계문제와 자본주의 문화: 생산·소비·노동·국가의 인류학
= 리처드 로빈슨 저/김병순 역 | 돌베개 / 2014

812쪽, 4만 원! 게다가 제목은 '세계문제와 자본주의 문화'. 그렇다고 지레 겁먹지 말 일이다. 나는 늙고 병들어 어려운 책은 읽지 못한다. 그러니 내가 재미있다면 그건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두껍다고? 얼마나 좋은가? 잠 안 올 때 손에 잡으면 눈이 스르르 감기고 베개를 따로 찾을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점은 4만 원(아, 할인 받으면 3만 원대다!)으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오늘의 세계를 하루(이건 정신과 다니는 내 경우다), 5일(이건 성실한 독서가인 내 친구의 경우다), 한 달(이건 한글을 막 뗀 내 손주 녀석의 경우다) 만에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본인이 환자인지, 독서가인지, 문맹을 막 벗어난 수준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