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달관세대', "뭘 해서 먹고 살까?"

/그림=김현정 디자이너

'뭘 해서 먹고 살까?'

도저히 해소되지 않을 것 같은 고민을 안고 산다. 고등학교 수업 첫 날, 선배들의 대학입학통계를 내세우며 "너희들도 잘만 따라오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어" 열 올리던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 후로도 3년 내내 '대학을 잘 가야 인생이 편하다'고 세뇌를 당했다.


좋은 학교를 나왔다. 미국 인문대학 4위, 힐러리의 모교로 더 유명한 Wellesley 여대다. 10년 전 선생님들이 주장한대로 ‘좋은 학교 = 성공적인 삶’이 참이었다면 나는 먹고 살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야 했다. 귀국 후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대체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주변을 관찰하며 몇 가지 답을 얻었고, 오답일지도 모를 나의 답을 좇아 오늘의 내가 되었다.

2014년은 내게 격동의 해였다. 일반 회사는 고리타분할 것 같고 혼자 뭔가를 하자니 너무 불안정했다. 이룬 것이라고는 졸업장 한 장 뿐인데 나이는 서른이 코앞이었다. 유학까지 다녀와서 계속 집에 손을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학을 다니며 평생 추구하고 싶은 가치를 발견했다. 웃을 일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에 내가 하는 일이 사람들을 많이 웃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통과 웃음의 가치를 실현하는 최전선이 문화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콘텐츠 제작에 관심이 많았다.

방송국에 가고 싶었지만 1000대 1에 달하는 경쟁률을 뚫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래들은 분기마다 수십 개의 원서를 쓴다는데 나는 뭘 하고 있나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최저임금만 지켜지는 곳이라면 일단 콘텐츠 관련 일을 해보자.’ 그래서 근무하게 된 곳이 서울시 청년허브 영상제작팀이었다.


기대치 않았던 곳에서 기대 이상의 뭔가를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게는 청년허브가 그런 곳이었다. 경제적 안정을 떠나 가치 중심의 삶을 지향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가진 것이 없다고, 준비되지 않았다고 다 놔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살만한 환경을 구축해가는 청년들을 보게 된 것이다.

아무도 쓰지 않는 동대문 신발 상가 옥상에서 파티를 열고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팽이집(청년공동주택)을 늘려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제도권에서 벗어나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관계들 속에서 생겨나는 에너지로 보다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부럽기도 했고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제도권에 잘 순응하며 사는 줄 알았던 몇몇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한숨 쉬기 바빴다. "건너 자리에 앉아 있는 상사가 본인의 20년 후 모습이라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던가, "부품은 없으면 기계에 이상이라도 생기는데 본인은 회사에서 부품 만도 못한 존재"라던가 하는 우울한 말들을 쏟아냈다.

또 대기업 수습기간을 막 마친 친구의 넋두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월급의 50%씩 꼬박꼬박 모아도 서울 시내에 내가 살 수 있는 집이 없어.” 모르던 사실은 아니었지만 친구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위에 적은 일련의 자극들로부터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앞으로 살아내야 할 사회에 안전지대는 없다.'

우리 세대는 30년 근속으로 부를 축적할 수 없다. 안정적인 조직은 사라져가고 제도는 더 이상 어떠한 것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윗 세대까지는 정형화 된 과정을 거치기만 하면 평탄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과거의 시스템에서 빨리 벗어나 나를 다듬어 가는 것이 훨씬 나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다 할 답은 없지만 정규직 30년도 답이 될 수 없는 거라면 둘은 피차일반이다.

어떻게 해서든 제도권에 붙어 있을 것인가, 컨베이어 벨트에서 뛰어 내릴 것인가. 크게 두 가지 옵션이 있었고, 나는 후자를 택했다. 대기업에 입사하여 충성을 다해 정년을 채우면 그 다음은 뭐지? 재벌가의 소모품으로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대기업이라고 안정적일까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저성장 시대에 기업위기론은 새로운 설이 아니다. 사실 작은 회사는 더 하다. 시장의 변화가 너무 빨라 오늘 잘 나가던 회사가 내일 문을 닫기도 하고 어디선가 혜성처럼 새로운 라이벌이 등장하기도 한다. 둘 다 안정적일 수 없다면 최소한 나를 나로 살 수 있게 해주는 일을 해야겠다는 게 글 도입부에서 잠깐 언급한 ‘오답일지도 모를 나의 답’이다.

현재 나는 문화기획사에 다니고 있다. 큰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에 비해 돈은 많이 벌지 못해도 내가 믿었던 웃음과 소통의 가치를 끊임없이 추구할 수 있는 곳이다. 업무 시간 외에는 '날으는 돌고래'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음악을 하고 비디오 작업을 한다. 나름 투잡족인 셈이다.

그리고 현재 책을 쓰고 있다. 출판사에 투고를 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다. 부룬디에 파견 나간 비디오 아티스트 친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나는 배경 음악을 맡았다. 가을에는 미니앨범도 내려고 한다. 한 분야의 장인은 되지 못할 수도 있으나 다양하게 나를 표현하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뚝심 있게 한 우물을 파기 보다는 바다의 수심이 더 깊어지는 것처럼 성장하고 싶다.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소신껏 움직이려 애쓰고 있다. '뭘 해서 먹고 살까?' '밥을 위한 일과 가치를 위한 일의 틈새를 어떻게 줄여갈 수 있을까?' 해소되지 않을 고민도 여전히 안고 산다. 명쾌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삼국지 유비의 말로 대변하며 글을 마친다.

"나무가 오래되면 높이 있는 가지부터 마릅니다. 땅에 가까워 올수록 살아 있는 것들이 늘지만 그 고목의 줄기에서 시작한 가지는 오래잖아 말라 들고 말 것입니다. 뿌리는 의지했으되 땅의 힘을 빌려 새로 돋은 가지는 싱싱합니다. 세월이 지나면 반드시 또 하나의 거목으로 자라리라 믿어집니다. 저는 바로 그런 가지가 되고 싶습니다. 이미 말라 가는 등걸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땅의 힘을 빌려 새로 돋고 싶습니다. 시들어가는 권위에 기대지 않고,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믿음과 사랑에 힘입어 스스로 자라보겠습니다" (이문열, 각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