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외환노조

머니투데이

이병찬 이코노미스트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2012년 2월17일 하나금융은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2.17합의서'라는 이상한 선물(?)을 외환노조에게 안겨 줬다.

그런데 이 '2.17합의서'는 소매금융의 하나은행과 도매금융의 외환은행 간의 합병을 은행간 합병시너지를 제고시키는 최고의 대안으로 바라보던 주주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미 외환은행은 론스타의 과도기적 경영으로 활력을 크게 상실한 상태였기에 추가로 5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길어 보였다.

당시 남유럽에서 촉발된 유로존 재정위기와 달러유동성 경색 등 글로벌 금융위기가 고조되던 상황을 고려하면 하루라도 빨리 통합해서 경쟁력을 키워야 할 판에 피인수은행의 노조를 대상으로 ‘독립인사’ 도 아닌 ‘독립경영’을 그것도 5년간이나 보장했던 배경에는 무조건 성사시키는데만 급급한 합병관련 당사자들의 무책임이 깔려 있었다.

이후 시간 압박의 부담을 느껴오던 하나금융은 2014년 7월 '2.17합의서'를 깨고 조기합병 추진을 선언했고, 급기야 2015년 1월19일 금융위에 합병예비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외환노조는 강력히 반발했고 법원에 합병절차중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 법원은 외환노조의 손을 들어주면서 그 동안 진행되던 합병절차가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다시 3월11일 하나금융은 법원의 합병절차중단 가처분결정에 이의를 제기했고 지난 6월26일에는 기존의 합병절차중단 가처분 결정에 대한 취소결정을 받아냄으로써 합병절차를 재개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확보하게 됐다. 즉, 합의서의 취지는 5년간 외환은행을 독립법인으로 유지한다는 것이지 5년동안 합병작업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며, 급격한 금융환경의 변화로 합의서의 절대적 구속력을 그대로 인정할 경우 명백히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법원이 하나·외환 합병의 절차와 당위성을 명확하게 인정한 것과는 달리 지난 1일 금융위원회 임종룡 위원장은 합병절차와 관련해 애매한 발언을 내뱉었다. 즉, 인가신청이 들어오면 법원취지에 맞게 접수는 하지만 노사합의를 인가판단의 중요한 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했다. 법원이 하나·외환 합병에 대해 거시적으로 접근한 반면, 금융위는 미시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대목이다.

성공적인 합병에 노사합의가 있으면 좋겠지만 노사합의가 선행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노사합의는 합병 후에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외환노조는 론스타가 주인으로 있는 동안 다른 어떤 은행노조 보다도 유리한 혜택을 누렸다고 할 수 있다. 자본차익이 유일한 목적인 론스타로서는 노조와의 분쟁이 매각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노조도 그 점을 십분 활용했다. 임시 주인과 노조의 특수한 밀월 관계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정상적인 투자나 경영혁신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는 일개 은행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산업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했다.

실제 외환은행의 지난 4년간 경영실적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충당금 반영후 영업이익은 2011년 7470억 원에서 2014년 4040억 원으로 50%가까이 급감했고, C/I 비율(판매관리비/일반영업이익)도 2011년 51%에서 2014년 58%로 급등했다. 이런 추세는 2015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 모든 현상이 론스타 시절의 향수가 빚어낸 부작용이다.

게다가 2014년 공시자료에 의하면 전체직원(정규직 5,076명, 계약직 2,296명)의 평균연봉이 8천만 원에 이른다. 기업분석 전문업체 한국 CXO연구소가 1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연봉 8천만 원이면 상위 2.5%수준에 해당된다.

2010년 11월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를 공식선언한 이후 지금까지 다른 은행노조가 겪었던 경영혁신과 구조조정의 치열함을 외환노조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봐서는 안된다. 수많은 고객과 국민이 경제침체와 저금리에 힘들어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최상위 소득층으로 분류되는 전문가 집단이 무리하게 소모적 투쟁을 일삼는 모습은 보기 역겨울 정도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비난의 목소리만 커질 뿐이다.

2012년 2월17일 합의서 이후 이미 3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따라서 외환노조는 합병충격에 따른 복리후생 및 근로지위에 대한 시간적 준비는 충분히 확보했다고 봐야 한다. 현재 '2.17 합의서'의 법적 구속력에 대하여는 법원의 명확한 판결이 나왔으므로 노조가 주장해 왔던 합의서 파기에 따른 금융기관으로서의 신뢰 이슈도 사라졌다. 가장 큰 논쟁거리가 해소된 상황에서 '2.17합의서' 수정안을 제시 한다든지 법원에 항고하는 행위는 몽니에 불과하다.

이 시점에서 전격적인 방향전환으로 분위기를 반전 시킨다면 상실한 명분을 회복하고 실리를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선제적으로 양보하여 합병후 협상의 주도권을 쥐는 방향이 외환노조의 현명한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