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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세에 청산유수 달변…“요즘 현대미술에 저항하는 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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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고금평 기자
  • 2019.04.17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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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3년 만에 개인전 ‘여기, 지금’ 여는 최고령 현역 작가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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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일 작업실에 '출근'하는 103세 최고령 현역 작가 김병기. 그는 "내게 장수비결 묻지 말고 작품 얘기를 하라"며 "장거리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무한 세계를 보여줄 것"이라고 의욕을 내비쳤다. /사진제공=가나아트센터
마주앉은 이는 그의 ‘건강’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는데, 화백은 그런 눈길이 부담스럽다는 듯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맨날 나만 보면 장수 비결 묻는데, (신문기자들) 그거 그만하고 작품 얘기를 하라고.”

올해 103세, 국내 최고령 작가의 일갈은 통쾌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김병기 화백은 3년 작업 끝에 내놓은 자신의 작품들 앞에서 청산유수 설명을 이어갔다.

소리는 쩌렁쩌렁했고, 문장구사력은 철학자 버금갔다. 한번 시작한 설명은 끝날 길 없이 계속됐는데, 그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고 들을수록 구미 당기는 마술 같았다.

그의 작품은 ‘촉지적 선묘’라는 화풍으로 요약된다. 붓글씨 같은 모양의 ‘선’이 촉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이 때론 구상, 때론 추상의 형태로 해석될 여지를 안겨준다.

'산의 동쪽-서사시'(Mountain East-Epic), 2019, Oil on canvas, 162.2x130.3cm. /사진제공=가나아트센터<br />
'산의 동쪽-서사시'(Mountain East-Epic), 2019, Oil on canvas, 162.2x130.3cm. /사진제공=가나아트센터

올해 초 완성한 ‘산 동쪽-서사시’를 설명할 때, 김 화백은 언뜻 보면 개나리로 뒤덮인 풍경 같지만, 추상적 해석으로 보면 화면에 들어찬 흰 틀에서 외부에 둘러싸인 우리나라를 떠올릴 수 있다며 “서정적 풍경과 함께 서사적인 논리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산 동쪽-서사시'(2019), '은유'(2018), '산 동쪽'(2018) 등 개인전으로 낸 작품 20점은 대개 해석의 지평을 확장한 것들이다. 작가는 “그런 면에서 난 포스트모던에 속하는 작가”라고 정의했다.

“1+1=2는 고정 관념이지만, 9도 되고 0도 되는 것이 포스트모던의 핵심이잖아요. 담벼락 같은 그림은 사실은 선이지만, 때론 면도 되는 셈이니까. 제 작업은 추상을 넘고 오브제를 거쳐 원초적인 수공업 상태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전시명이 ‘여기, 지금’(Here and Now)인 것도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은 현재의 시간에서 ‘여기’ 이 공간에 무엇이든 다 되는 세계를 만들어내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김병기 화백. /사진=김고금평 기자<br />
김병기 화백. /사진=김고금평 기자
작가의 변화된 화풍을 읽을 수 있는 단면은 어두운 쪽에서 밝은 쪽(특히 노란색)으로 옮겨간 색조다. 그는 “색채에 대한 욕망이 일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아주 컬러풀한 작품을 선보이겠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나이가 지금 몇인데, ‘앞으로’는 좀…”하며 웃었다.

작가는 1916년 평양에서 서양화가 1세대인 김찬영(1893~1960)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33년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에서 공부하며 추상 미술과 초현실주의 미술을 접했다. 1965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70세를 넘긴 나이에 귀국해 국내 화단에 복귀했다.

반세기는 한국, 반세기는 미국에서 보낸 그는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산하 미술동맹 서기장, 서울대 미대 교수,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등을 맡는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했다.

6살 위인 작가 이상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김환기, 박수근 등 동시대 작가들과 어울렸으며 서양화가 이중섭은 둘도 없는 친구로 지냈다.

작가는 “나만 보면 이중섭 얘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좀 불만”이라며 “나는 나대로 주역이고 100세 넘어서도 작업하는 장거리 선수”라고 재차 자신을 ‘소개’했다.

'메타포'(Metaphor), 2018, Oil on canvas, 162.2x130.3cm. /사진제공=가나아트센터
'메타포'(Metaphor), 2018, Oil on canvas, 162.2x130.3cm. /사진제공=가나아트센터

노구(老軀)의 날카로운 비평은 현대미술 작가에게도 거침없이 향했다. 이를테면 달라진 미술 개념 속에 우후죽순 쏟아진 데미안 허스트 류의 미술이 불러오는 천정부지의 미술 값에 대한 허위성이 그것. 작가는 “요즘 현대 미술의 허위성에 저항하는 나를 발견하고 있다”며 “미술의 원초성은 ‘손으로 그리는 그림’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새벽까지 손흥민의 유럽 경기를 보며 다음날 해설까지 덧붙이는 그의 열정에서 장수 비결 같은 필요하지만 해묵은 질문은 이제 다음 작품을 위해서라도 ‘결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는 1시간이 넘는 간담회가 끝나갈 무렵에도 “또 질문 없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시는 5월 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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