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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의 아포리아]3·1운동과 민족통합의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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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19.05.14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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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민족이란 단어는 1906년 무렵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 지식인들 사이에서 쓰이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널리 퍼졌다. 그러니까 우리의 근대가 처음부터 민족을 말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1898년 만민공동회의 헌의 6조를 보면 민족이 아니라 개인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주장하는 시민적 권리가 중심 내용을 이룬다. 독립신문도 국가 차원보다 개인 차원의 자유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독립이라는 개념을 주로 사용했다. 그러나 외세의 개입과 제국주의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바탕으로 한 근대적 담론들은 급속히 민족주의 담론으로 대체되어 갔다.
 
민족의 신화를 비판하는 학자들은 민족이 오랫동안 지속된 문화인종적 공동체로부터 발전했다기보다 역사적으로 ‘발명된 전통’(invented tradition)이라고 본다. 민족의 연속성이나 문화적 순수성은 민족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일 뿐이며 민족주의가 필요에 따라 민족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민족은 19세기 이후 교육의 확산과 미디어의 역할, 정치적 사회화를 통해 구성된 것이다. 특히 근대 이전 한국 사회는 양반과 노비가 한 민족이라는 의식을 갖기 힘든 수직적 위계질서의 신분사회였고 양반들은 자신을 중국 중심의 세계주의적 문명의 일원으로 생각하면서 평민, 노비와 함께 한민족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근대의 민족과 전근대적 문화인종 공동체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입장에 따르면 공동의 문화와 언어를 갖는 집단은 정치적 주권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근대 민족으로 전환한다. 즉, 한국 민족은 동일한 지역에서 혈연과 언어, 문화를 공유해온 오래된 문화인종 공동체고 현재의 민족은 과거의 문화인종적 공동체의 연속선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가 아니라 오히려 개인이 상상의 산물이고 추상적 실체일 수 있다.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라는 실체를 현실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다. 즉, 개인이 상상과 추론을 통해 태어난 추상적 존재라면 민족은 ‘추상적 개인이 입고 있는 현실의 옷’인 셈이다.
 
민족은 근대 국민국가의 등장과 함께 사회적 통합과 정치적 정당성을 달성하는데 기여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최근 민족주의는 배제의 기제로 작동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즉, 20세기와 21세기 민족주의는 서로 다른 얼굴로 등장한 것이다. 과거의 민족주의가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을 통해 인간 해방을 추구하는 과정에 지렛대를 제공하는 진보적 이념이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민족주의는 사회적 다수가 자신들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점유하기 위해 고립을 정당화하는 이념으로 사용된다. 미국과 유럽의 민족주의 부활 흐름은 세계가 통합을 강조하던 시대에서 고립의 시대로 이행하고 민족주의는 이러한 고립을 부추기는 강력한 배제의 이념으로 역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민족주의의 도전에 의해 다문화주의가 쇠퇴하고 나아가 민주주의마저 후퇴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은 적어도 3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 첫째, 우리가 주로 알아왔듯이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비폭력 민족해방운동의 성격이다. 둘째, 우리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민주공화정에 대한 원칙을 천명하고 임시정부를 통해 구체화했다는 점이다. 셋째, 우리 독립운동은 이념을 중심으로 분열을 보이기 시작한 1920년대 이전 통합된 모습으로 진행된 마지막 운동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100주년을 맞는 오늘의 현실에도 유의미한 함의를 갖고 있다. 사회문화적 소수의 인간 해방을 위해 긍정적으로 기여하던 민족주의 유산을 기억하고 되살리는 일, 민주공화정의 정신과 제도를 구현하는 일, 갈등과 분열로 점철된 우리 현실에서 통합의 원형과 모범을 찾는 일 등은 1919년의 3·1운동이 여전히 우리 현재에 중요한 사건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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