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퍼지는 '아시아 혐오'…밥줄도 끊었다

지난 25일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앞,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끼고 있는 모습. /사진=블룸버그통신.

“바이러스에 미쳐가고 있다”

유럽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 거점이 된 이탈리아를 보고 미국의소리(VOA)는 27일(현지시간)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시작되 경제수도 밀라노까지 덮친 코로나19는 이탈리아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공포는 이내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그리고 아시아인들을 향한 분노와 혐오, 인종차별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현재 북부 10개도시를 봉쇄했는데, 도시에 갇힌 사람들을 자극하듯 가짜뉴스가 SNS에 퍼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인들과 아시아 음식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것.

이달초에는 북부도시 볼로냐에서 15살짜리 중국계 이탈리아 소년이 행인에게 욕을 먹고 얼굴을 맞는 일이 벌어졌고, 지난 24일 카솔라의 한 주점에서는 직원이 중국인에게 “당신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니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하자, 옆에 있던 이탈리아인 손님이 유리잔으로 청년의 얼굴을 내리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독일이나 프랑스 등지에서도 아시아인들을 향해 “바이러스가 지난간다”는 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뉴스 보도가 이어지고 있고, 언론들까지 가세해 이같은 차별적 행위에 동조하고 있는 모양새 입니다.

혐오에 발길 끊긴 식당들…전세계서 휴업 속출

이탈리아 밀라노의 중국 식당 모습. 코로나19 확산으로 이탈리아에선 인종차별과 혐오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잠시 문을 닫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의 한 중식당은 다음달까지 휴업을 결정했습니다. 이달부터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겨 고심했는데 코로나19 확산이 멈출줄 모르자 결국 쉬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평소만 해도 주말에는 50테이블 이상을 받았던 이 식당의 손님은 95% 이상 줄었습니다. 3명의 직원을 둔 주인 부부는 인건비조차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됐습니다. 이탈리아에만 30만명 가량의 중국인 거주하고, 매년 500만명의 중국인이 관광도 오지만, 이탈리아가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한데 이어 내부에서도 혐오 범죄가 빈번해지자 중국인들도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중국 식당 뿐만 아니라 한식, 일식 등 아시아 요리를 내놓는 식당들도 모두 코로나19로 인해 영업에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도 런던 차이나타운내 중식당들 손님이 절반 가까이 줄면서 휴업을 결정하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BBC는 런던의 한 중식당은 매주 주말 매출만 1만5000파운드(약 2350만원)씩 잃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영국에선 그나마 중국인들 몇몇이 중식당을 찾고 있는데 이들은 “여기가 그나마 인종차별로 부터 안전한 곳이기 때문에 왔다”고 답했습니다.

영국 런던 차이나타운의 한 식당 점원이 문밖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 /AFPBBNews=뉴스1

호주 7뉴스에 따르면 30년간 브리스번에 자리잡고 있던 한 중식당도 28일 갑작스레 문을 닫았습니다. 식당측이 휴업하는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은채 “재정비 후 5월에 다시 열겠다”는 공지만 남긴 가운데, 현지 언론은 코로나19 때문이라는 추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다른 식당이 코로나 여파로 매출이 80%나 감소했다며 휴업을 결정했는데 이로부터 2주뒤 또다른 휴업 사례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호주에서도 지난 27일 중국인이 길거리에서 중국어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폭행을 당하는 등 코로나19로 인종차별 범죄가 늘고 있습니다.

7뉴스는 “호주에서도 코로나19 공포로 중국 사업장들이 큰 피해를 보고있다”면서 “제한조치로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했고, 중국인들에 대한 현지인의 히스테리도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트럼프 '국경봉쇄'하자 매출 '곤두박질'

미국 뉴욕의 중식당 모습. /AFPBBNews=뉴스1

미국에서도 중식당은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달초 중국인 입국제한을 실시한 직후 매출이 곤두박질 쳤습니다.

지난 26일 요식업 전문매체 이터(Eater)는 미국 뉴욕부터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보스톤, 락빌, 페어팩스 등 미국 중국음식의 ‘허브’로 불리는 지역내 중식당들이 매출 직격탄을 맞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코로나19 공포가 퍼지면서 각종 인종차별, 아시아인 혐오와 공포가 뒤섞이면서 식당들의 매출이 평균 20~30%, 많게는 50%이상 줄어든 것입니다.

전 주미중국대사관 셰프 출신인 피터 창은 미국 버지니아부터 메릴랜드주까지 아우르는 중국 식당 체인을 운영할 정도로 성공적인 요리사이자 사업가이지만 매출이 반토막 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뉴욕 차이나타운의 한 식당 내부. 코로나19 공포로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 /AFPBBNews=뉴스1

뉴욕 맨해튼에는 입국제한 조치 후 10일만에 매출이 70%나 감소한 사례도 나왔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들을 더 황당하게 하는 것은 가짜뉴스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에그 타르트로 유명한 한 빵집을 운영하는 헨리 창은 어느날 직원 중 한명이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매출이 50% 빠졌습니다. 실제 직원 중 감염자는 아무도 없었지만 막연한 공포심이 가짜뉴스로까지 번지게 된 것입니다.

미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모습. /사진=로이터통신.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지난 27일 중국 여행을 한적도 없고, 감염자 접촉도 없어 감염경로가 불분명한 첫 확진자가 나오면서 중식당을 넘어 아시아 식당들까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ㅑ 있습니다. 지역감염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거센 인종차별과 가짜뉴스가 그림자처럼 따라 붙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존스홉킨스 블룸버공중보건대학의 아메쉬 아달자 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WP)에 “코로나19가 음식을 통해 전파된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지만, 미국에서 중식당을 피하는 비이성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