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총리 측근 '자가격리위반 해명' 오만일까 가족애일까

도미닉 커밍스 총리 수석보좌관. /사진=AFP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최측근인 도미닉 커밍스 총리 수석보좌관이 '코로나19' 관련 자가격리를 위반했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사퇴설을 일축했다.

25일(현지시간) 영국 BBC 등에 따르면 커밍스 보좌관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내가 한 행동은 합리적이고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다. 후회하지 않는다"며 "사퇴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앞서 커밍스 보좌관은 지난 3월 말 자신과 부인이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이자 런던에서 400km 떨어진 더럼의 부모님 댁으로 이동했다. 4월12일에는 그와 가족이 인근 관광지인 바너드 캐슬에 모습을 드러냈고 런던으로 돌아온 뒤 다시 더럼을 재방문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커밍스 보좌관. /사진=AFP

커밍스 보좌관은 존슨 총리의 최측근 참모이자 공공연한 실세다. 존슨 총리는 선출 직후 '총리 수석 보좌관'이라는 자리를 신설해 그를 임명하고 자신의 집무실인 다우닝 10번가에 그의 사무실을 마련했다. 커밍스 보좌관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사실상 주도했을 정도로 막후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브렉시트 반대파에게는 '악마'로도 묘사된다.

커밍스 보좌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혼란과 오해를 풀고 싶다"며 자가격리 중 외출 경위를 설명했다. 커밍스는 "나는 (3월) 27일 저녁 아내와 아들을 태워 더럼까지 운전했고, 부모의 농장 인근에 있는 집에 머물렀다"고 설명했다. 또 더럼으로 갈 때까지 단 한 번의 정차도 하지 않았다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어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도 더럼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두통과 발열 등 증상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한 결과 가족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도 했다.

25일(현지시간) 다우닝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커밍스 보좌관. /사진=AFP

커밍스 보좌관은 지난달 12일 더럼 인근 호수에 차를 몰고 간 것도 인정했다. 그는 "특히 몸이 아픈 내가 운전할 때 시야 확보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아내가 많이 걱정했다"며 "내가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짧은 운전이라도 해보기 위해 호숫가를 30분가량 운전했을 뿐이지 관광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커밍스 보좌관은 이 같은 사실을 존슨 총리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존슨 총리도 코로나19로 힘겨워하고 있었을 때이기 때문에 더럼으로 간 후에야 그와 통화를 했지만 둘다 상태가 좋지 않아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할 수 없다"고 했다. 존슨 총리는 3월26일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린 뒤 한달 뒤인 4월27일 업무에 복귀했다.

25일(현지시간) 런던 자택으로 돌아가는 커밍스 보좌관. 주변에는 커밍스 총리의 자가격리 위반을 비판하는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사진=AFP

하지만 정부가 지난 3월23일부터 국민들을 대상으로 외출금지령을 내린 상황에서 총리실 실세가 자가격리 조치를 스스로 어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커밍스 보좌관도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많은 분노는 사실이 아닌 언론 보도에 기반한 것"이라며 "난 합리적으로 법 테두리 안에서 행동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법이 모든 상황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면서 "내가 처한 상황도 복잡하고 까다로운 경우"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코로나19 기자회견에서 커밍스의 행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국민들의 반발은 이해할 수 있지만 커밍스의 행동은 합리적"이었다고 옹호했다. 그는 또 '커밍스를 무조건 지지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아니다. 어떤 사람도 조건 없이 지지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커밍스의 행동이) 코로나19 대처와 관련한 영국 정부의 메시지를 훼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커밍스를 감쌌다.

야당은 반발했다. 노동당은 "사과를 원했던 사람들은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자유민주당 대표 대행 에드 데이비 의원도 "그가 사과할 품위를 가지지 않은 것은 우리 모두에게 모욕"이라면서 "그것은 그의 엘리트주의적 오만함 중 최악"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