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한 '새끼곰'…철창 말곤 돌아갈 곳이 없었다

경기 여주서 농장을 탈출했다가 다시 철창으로 돌아간 새끼곰./사진=동물자유연대

8일 저녁쯤이었다. 새끼곰 한 마리가 철창을 탈출했다. 경기 여주 소재 한 사육곰 농가서 벌어진 일이었다. 녀석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잠시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다 농수로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다.

119 구조대가 출동했고, 올가미로 새끼곰을 포획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도, 새끼곰도 피해가 없었다. 이 녀석은 여주시청 환경과를 거쳐, 농장주에게 되돌아 갔다. 원래 있었던, 좁다란 철창으로 간 것이다.


애석하게도, 새끼곰이 돌아갈 곳이 '철창' 외엔 국내에 없단 점에서, 사육곰들이 처한 현실이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1평 철장 속, 사육곰의 삶
동물권행동 카라에 따르면, 사육곰이 국내에 많이 들여온 건 1980년대였다. 정부가 농가 소득을 늘리기 위해 사육곰 수입을 장려했다. 번식시켜 해외에 수출하란 거였다.

정부가 1993년 곰 수입을 금지키로 했지만, 이미 들여온 사육곰이 많았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고, 현재는 전국 30개 농가에 430여마리의 사육곰이 갇힌 것으로 전해졌다.


곰의 평균 행동권역은 약 100㎢(가로x세로 각각 100km 크기)이지만, 사육곰 대다수는 1평 남짓한 철창에 갇혀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자유연대는 이들의 삶에 대해 "지금 이순간에도, 뜬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고통스러운 삶을 연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물권행동 카라도 "지난해 봄, 강원도 사육곰 농가를 조사한 결과 20마리 모두 뜬장에서 살고 있었고, 하루에 한 번 지방 많은 돼지고기 한 덩이가 나왔으며, 다른 농가에선 개 사료나 음식물 쓰레기를 급여하기도 했다"며 고발했다.

이에 사육곰이 좌절감과 스트레스로 인해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카라는 "한 농가의 경우 모든 사육곰이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거나 좁은 보폭으로 왔다 갔다 했다"며 "일부는 앞발을 입에 물고 씹는 모습도 보였다"고 했다. 일종의 정신적 장애로, 쇠창살서 갇힌 무료함 등으로 인한 것이다.

사육곰 '생츄어리(보호소)', 대안은 있지만…
대안은 있다. 사육곰들을 위한 '생츄어리'다. 생츄어리는 야생성을 잃어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야생동물들을 돌보기 위한 보호소다. 오랜 시간 자연성을 회복 못하면 그 곳이 평생 살 집이 되고,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다면 재활을 위한 중간 기착지가 된다.

중국 청도와 캄보디아 프놈타마오 동물공원, 베트남 땀다오 등엔 사육곰을 위한 생츄어리가 조성돼 있다. 이 곳에서 사육곰들은 자연사 할 때까지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엔 사육곰을 포함한 중대형 포유류를 위한 생츄어리가 단 한 곳도 없다. 이에 동물자유연대 등이 지난해 150마리를 수용할 수 있는 생츄어리 건립을 추진했었다. 건립비 73억5000만원, 운영비 연 11억 정도였다.

중국 청도 생츄어리 전경./사진=동물권행동 카라

국민 여론도 긍정적이었다. 동물자유연대가 전국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8월 조사한 결과, 응답자 79.3%가 "사육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부실 예산안을 제출했고, 기획재정부는 단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아 무산됐다. 생츄어리 건립이 언제 이뤄질지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동물자유연대는 "40년 전 잘못 끼운 사육곰 산업을 종식하고, 사육곰들이 고통을 끝내도록 종합적인 야생동물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불법 증식을 막고 열악한 사육 환경을 개선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