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이라 하면 '극단적 선택'이 줄어들까

10일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가 마련돼 있다./사진제공=서울시

지난 10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사망한 이후 수많은 보도가 쏟아지면서, 그의 사인이 '자살'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두고 국내 언론들은 대부분 '극단적 선택'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고, 주요 외신은 'suicide'(자살)이라고 보도했다. 왜 이 같은 표현의 차이가 있는 걸까.

'자살' 표현 안 쓰는 이유…권고 기준 "자살 표현 피해라"
17일 박 전 시장의 사망을 다룬 기사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기사가 자살이라는 직접적 표현 대신 '사망', '극단적 선택' 등의 표현을 쓰고 있다.


국내 언론이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이유는 보건복지부·중앙자살예방센터·한국기자협회 등이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권고기준에 따르면,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의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사인을 자살로 밝히는 것을 피하고, 구체적인 자살 방법을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 언론의 자살 보도가 자살 실행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즉 자살 예방을 위해 '극단적 선택', '스스로 목숨 끊다' 등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자체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대부분 언론들은 사실 전달을 위해 비교적 완곡한 표현인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상태다.


'자살 보도' 다른 나라들은?

미국 자살 예방 기관인 SAVE 등이 제작한 '자살보도 권고사항'/사진=자살보도 권고사항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박 전 시장의 사망과 관련,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대부분 'suicide'(자살)라는 직접적 표현을 사용해 국내 언론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예를 들어 미국 3대 일간지인 뉴욕타임스는 기사 본문에 'Mr. Park was found dead, presumably by suicide'(박 전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됐으며 자살로 추정된다)고 썼다.

미국 자살 예방 기관인 SAVE 등이 제작한 '자살보도 권고사항'을 살펴보면, 'suicide'라는 단어에 대한 규제는 없다. 오히려 사망을 자살로 보도하되, 세부적인 자살 방법 및 이유 등을 설명하지 말라고 써있다.

현재 자살 보도와 관련해 나라마다 다른 보도 기준이 있는 상태다. 영국의 경우 자살을 뜻하는 다른 단어인 'commit suicide'라는 표현을 쓰지 말자는 합의가 돼 있다. 'commit'(범하다)와 같은 단어들이 자살을 범죄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또 핀란드나 오스트리아는 자살 보도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자살률 1위 국가' 불명예…"용어 순화해서 사용해야"

한국 자살률 추이/사진=통계청

대부분의 언론이 자살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있지만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자살률은 OECD 평균의 2배가 넘는다. 2018년 기준 자살자는 1만3670명으로 인구 10만명당 자살사망자수가 26.6명에 이른다. 미국에 비해 엄격한 자살보도 기준을 따르고 있지만, 자살률은 더 높은 셈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장 효과가 없어 보여도 용어를 순화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살 관련 뉴스 보도가 후속 자살 발생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전 세계적으로 학계와 언론계에서 동의하고 있는 부분이다.

중앙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이) '자살'이라는 단어에 노출이 덜 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인 이화영 순천향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반인들에게는 어떤 용어를 쓰든 별 영향이 없지만, 힘든 상황에 처한 분들에게는 그 '자살'이라는 단어가 확 들어온다. 그러면서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며 보도에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