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차벽’ 그때는 위헌이고, 지금은 아니다

보수단체가 개천절 집회를 예고한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일대가 펜스와 차벽으로 둘러 쌓여있다. 경찰은 보수단체가 신고한 차량을 이용한 '차량시위'(드라이브 스루)를 대부분 금지 통고하고 행정법원이 허가한 강동구 일대 9대 이하 차량시위만 허용했다. /사진=뉴스1

‘개천절 불법집회’를 막기 위해 설치했던 차벽을 두고 위헌 논란이 거세다. 2011년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집회(2009년) 당시 서울광장 주변에 등장한 차벽을 위헌이라고 판단해서다. 일부에서는 이를 근거로 최근 경찰의 차벽 설치가 위헌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생긴 상황에서 차벽 설치는 불가피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코로나19 감염 또는 확산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찰이 선택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도 SNS를 통해 "2020년 경찰 차벽의 위헌 여부는 사상 초유의 '코로나 위기'라는 또 다른 상황을 전제로, 그리고 직전 광화문 집회의 파장을 고려해 판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9일 한글날 집회에서도 차벽 설치를 검토 중이다.

2009년과 2020년의 차벽 상황2009년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경찰은 시민분향소를 찾은 사람들이 서울광장에서 불법·폭력집회를 개최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경찰버스로 서울 광장을 둘러싸는 차벽을 설치했다. 경찰은 노제 열린 5월 29일 하루를 빼고 6월 4일까지 차벽을 유지했다.

2020년
2020년 10월 3일 경찰은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등 도심 한복판에 경찰버스 300여대를 동원해 약 4㎞ 길이의 차 벽을 만들고 출입을 통제했다. 중로구와 중구는 집회금지 지역이었고, 경찰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관련 집회에 모두 금지 통고를 내린 상태였다.

2011년 헌법재판소와 2020년 경찰의 판단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엔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둘러싸 시민들의 광장 출입을 봉쇄,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는 적합성, 최소 침해의 원칙 등을 위배했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 사진=차벽

①차벽 설치가 적합한가


2011년 헌재
전면적이고 광범위한 집회·통행금지(차벽)는 집회금지․해산으로 방지할 수 없는 급박·중대·명백한 위험시 최후수단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모였다거나 폭력시위(4일 전)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당일까지 이러한 조치가 필요했다고 보기 어렵다.

2020년 경찰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한 접촉 차단 목적상 차벽 외에 다른 적정하고 효율적인 수단이 없다. 해산명령 등 조치는 다수가 이미 모여 감염병 확산 위험이 현실화된 이후의 사후적 수단이기 때문에 감염병 예방이라는 목적 달성에 적합하지 않다.

②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했는가

2011년 헌재
전면적·광범위한 통제의 필요성이 있다 하더라도 통행로 개설, 집회 가능성이 적은 시간대에 통제를 푸는 등 침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당시 경찰은 2009년 5월 23일부터 6월 4일까지 차벽으로 통행로를 통제(29일 노제 당일 제외)했다.

2020년 경찰
집회 신고시간(오전 5시~오후 6시)을 감안해 다수가 운집할 가능성이 있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일시적으로 차벽을 설치했다. 광화문 인근 거주자·상인 등과 일반차량은 통행을 보장했고, 집회 참가자만 선별해 막았다.

③차벽 설치로 얻을 수 있는 공익이 더 큰가

2011년 헌재
보다 덜 침익적인 수단을 찾아 법익 균형성을 충족하지 않았다. 통행제지행위로 얻어질 공익의 정도가 일반 시민들이 서울광장을 이용하지 못해 입게 되는 불이익에 비해 결코 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비례원칙에 위배돼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했다.

2020년 경찰
차벽 설치를 통한 ‘코로나19 감염 예방 및 확산 방지’ 라는 공공복리가 집회의 자유 제한으로 인한 불이익보다 크다. 서울시도 집회를 금지했고, 법원에서도 경찰 금지통고의 적법성을 인정했다. 차벽설치는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집회 시도’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서울시 관계자들이 펜스를 연결하고 있다. 오는 9일 한글날에 일부 보수단체가 개천절에 이은 추가 집회를 예고하고 당국은 이를 차단하겠다고 밝히면서 보수단체와 경찰의 강대강 충돌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오는 9일 서울 도심 집회를 신고한 단체는 12개로 인원은 1만 명에 이른다. 경찰과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한글날 집회를 원천 봉쇄할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사진=뉴스1

헌재 "차벽 통한 통행 제지는 위헌"...경찰 "차벽설치 자체가 위헌은 아니다"2011년 헌재
2009년 6월 3일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들로 둘러싸 청구인들의 통행을 제지한 행위는 청구인들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으로서 위헌임을 확인한다.

2020년 경찰
‘차벽설치 자체’를 위헌이라고 한 것이 아니며 ‘비례의 원칙을 위반한 과도한 차벽설치’로 통행을 제지한 행위를 위헌이라고 본 것이다.

추가. 차벽 운용 지침과 2017년 대법 판단은?차벽운영 지침에 부합
차벽운용지침상 차벽은 경찰통제선·경찰인력만으로 집회시위 참가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경우 설치할 수 있다. 개천절 집회에 다 수의 참가자들이 모일 경우 감염병 확산 위험이 있어 차벽운용지침에 부합한다. 차벽이 아닌 경찰력으로 다수인의 집결 차단을 시도할 경우 경찰관의 감염 우려도 있다.

2017년 대법 "차벽 설치 위법 아냐"
2017년 대법원은 2015년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와 관련해 경찰의 차벽 설치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는 원심의 판결을 유지했다. 원심에서 법원은 경찰이 차벽 외에 손해발생의 위험을 제지할 다른 수단이 없었고, 시위대의 도로 점거 등 불법행위가 종료된 지점에서 신속하게 차벽을 해체했다는 이유로 합법하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