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사건에 '성별'이 중요합니까?

"위 사건은 본사 디자인실 디자인 소장(여성 가해자)과 디자인팀 팀원(여성 피해자)간 업무 중 일어난 사건입니다."

유명 요가복 브랜드 A 회사에서 또 다시 불거진 성추행 문제를 두고 밝힌 신모 대표의 공식 입장. 여기서 신 대표는 가해자-피해자라 언급하는 대신, 굳이 '여성 가해자-여성 피해자'라 명시했다. 동성간 사건이란 걸 강조해 밝힌 셈이다.


사건을 설명하자면, A 회사 디자인실 디자이너 B씨가 디자인 소장 C씨에게 성추행 당했다고 주장해 검찰 수사 중이다. 경찰은 지난 6월 C씨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전문가 "동성 강조한 의도는…"
이 같은 의도에 대해 범죄 심리학자(프로파일러)인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남성 가해자-여성 피해자인 사건보다 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분석했다.

피해자 관점이 아닌, 사건을 무마·수습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는 것. 오 교수는 "성추행했으니 가해자를 퇴사시키는 등 세게 가는 게 아니라, 동성 사건이나 가해자에게 아이가 있다는 걸 고려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그렇게 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과연 그렇다고 문제가 덜할까. 오 교수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성추행 사건이면 다른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예컨대 남성이 남성에게 당했어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가 더 치욕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법이 바뀌어도…'사회 통념'은 여전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이를 '사회 통념' 문제로 접근했다.

그에 따르면 옛날엔 성폭행 자체를 피해자를 여성, 가해자를 남성인 측면에서 주로 접근했다. 그러나 형법 제260조에선 성을 규정하지 않고 '사람을 강간한 자'로 바꿨다. 강제 추행에 대한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의 발전 덕분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사회 통념'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단 것. 승 연구위원은 "여성과 여성 간에도 성추행이 일어날 수 있는데, 여전히 젠더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이 강하다"며 "이를 뭔가 새로운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생각이 통념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 분석했다.

실제 국민참여재판에서 일반적인 무죄 판결율은 2.4%에 불과하지만, '성폭력 범죄'에 있어선 무죄 판결율이 18.8%에 달한다. 무려 7.5배가 더 높다. 대중들 입장에선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생각이 있어서다.

승 연구위원은 "여성과 여성, 남성과 남성 사이에서도 당연히 범할 수 있단 생각으로, 사회 분위기가 성숙돼야 한다"며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이분법적 생각은 지양돼야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A 회사 측은 "굳이 여성 대 여성이란 점을 강조하려 한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초 언론 보도에서 성별을 안 쓴 곳이 있어서, 남성인줄 알고 문의가 엄청 많이 달렸다"며 "그래서 보도가 안 된 부분들을 회사 입장문을 통해 알리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자든 남자든 이런 문제는 발생하면 안 된다는 게 입장"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