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단골 질문 "동성애 반대?"…표득실에 "네" or '침묵'

(서울=뉴스1) 황덕현 기자 = 지난 2019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 2019.6.1/뉴스1

성 소수자 인권 이슈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화두'로 던져졌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퀴어축제를 도심에서 보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면서다.

여야 후보는 상대방의 입장을 묻거나, 논란이 될만한 발언을 하거나, 언급을 피하는 등 정치적 득실을 계산하며 고민에 빠졌다. 선거 때마다 성 소수자 이슈가 후보자 간 공방의 소재로 매번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철수 "퀴어축제 '안 볼' 권리"안 대표는 지난 24일 MBC라디오에서 퀴어문화축제의 도심 개최와 관련해 "(퀴어축제의) 신체 노출이나 성적 표현 수위가 높은 그런 장면, 그다음에 성인용품 판매 때문에 아동·청소년이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걸 걱정하는 시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그가 지난 18일 '제3지대' 단일화 토론회에서 "(퀴어축제의 도심 개최를) 원하지 않는 분도 계신다"는 발언으로 시작됐다. 안 대표는 또 "성 소수자 혐오발언을 한 적 없다"면서 "오히려 대표적인 혐오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동성애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라며 화살을 돌렸다.

보궐선거 주자들도 논쟁에 참전했다. 국민의힘 나경원·오세훈·오신환·조은희 후보와 부산시장에 도전하는 이언주 예비후보까지 일제히 "반대할 자유" 등을 언급하며, 퀴어축제를 보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반면 김진애 열린민주당 후보는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 퀴어축제는 모두 도심에서 열린다"며 안 대표와 각을 세웠다.
대선 토론서…홍준표 "동성애 반대?", 문재인 "반대"성 소수자 이슈는 주요 선거 때마다 등장한다. 2017년 4월 당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는 "군 동성애는 국방전력을 약화시킨다, 동성애에 반대하느냐"고 질문했고, 문 대통령은 "반대한다"고 답했다.

성 정체성을 찬반 가능한 이슈로 취급한 두 사람의 대화는 인권단체를 비롯한 진보진영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 토론 현장에서도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곧바로 "동성애는 찬반을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정체성이다. 저는 이성애자지만 성 소수자의 인권과 자유가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성 소수자 혐오 논란은 정치권에서 민감하게 쓰이는 카드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는 퀴어축제를 두고 "저질이고 음란한 축제"라 비난했다. 더욱이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회에서도 후보자를 향한 '동성애 찬반' 질문이 나왔다.

주로 해당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보수 개신교계의 여론을 의식한 공방이다. 보수진영에 기반을 둔 후보로선 퀴어축제 등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해 개신교계의 지지를 얻고, 반대로 교계 여론을 무시하기 힘든 진보성향 후보에게는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이런 상황은 국내 정치에 국한되지 않는다. 성 소수자 인권문제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미 상원은 2일(현지시간) 성 소수자인 피터 부티지지 교통장관 지명자를 인준했는데, 그는 미국 최초의 '커밍아웃' 장관으로 기록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성 소수자 친화 정책을 공언한 바 있다.
보수 개신교계 '의식'해…박영선·우상호, '피하는 게 답'많은 정치인들은 성 소수자 이슈를 '침묵'으로 대응한다. 특히 진보성향 유권자들에 기댄 현재의 여당 정치인조차 그렇다. 선거 국면에서 말해봤자 득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가능한 언급을 피하거나 '원칙론'에 그치려 한다. 박영선·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도 마찬가지다.

박 후보는 퀴어축제의 도심 개최에 대해 "이런 모든 문제는 서울 시민과 공감대를 형성해 추진해가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며 찬반 논란을 피해갔다. 우 후보 역시 "구체적으로 검토해본 바 없지만, 시장이 된 뒤 최선의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두루뭉술한 답변을 내놓았다.

퀴어축제를 서울광장으로 끌어들인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오히려 정치권에선 이례적인 경우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그가 시장으로 재임하던 2015년 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규모도 커졌다. 새로 뽑힐 시장의 손에 당장 올해 축제의 존폐가 정해질 수도 있는 셈이다.

논란의 당사자들은 정쟁 거리가 된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측은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몇 번의 선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퀴어축제가 선거판의 이슈가 되고 있다"며 "축제를 선거판의 정치적 제물로 삼지 말라"고 비판했다.

배복주 정의당 비대위원은 "안 대표의 발언은 성소수자 시민을 부정하고 차별하는 것이고 혐오에 동조하는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나 안 대표나 성소수자 시민을 부정하는 것은 동일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