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로 돈 되나' 듣고도 춤추는 이유는…" 진짜 '스트릿 우먼'을 만나다

피치스 댄스크루 멤버들 /사진=피치스 댄스크루 제공

스우파에 나오는 댄서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수많은 여성 댄스 크루들이 현재의 댄스 씬을 받치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만난 피치스댄스크루(피치스), 4X4크루(4X4)도 그들 중 하나다.

댄스 크루 피치스는 2021년 역주행의 주인공 브레이브걸스의 '운전만해' 안무를 짠 크루다. 여자 8명, 남자 2명, 디렉터 2명 총 12명으로 구성됐다. 취재진이 만난 또 다른 댄스크루 '4X4크루(4X4)'는 모모랜드 등 아이돌 뮤직비디오 감독을 지낸 김종한 감독(26)이 만든 팀이다.


남성·여성댄서 간극 좁아져…성희롱은 오래된 고충

4X4크루 댄서들. 왼쪽부터 차례로 신설아, 김소희, 박다원, 김수빈 /사진=김성진 기자

여성 댄서들은 최근 들어 성별 때문에 활동에 제약을 받았던 적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피치스 강방빈씨(36)는 "각자 표현하는 방법이나 콘셉트에 따라 필요한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불리한 측면이 있는 건 모르겠다"며 "요즘은 남자춤, 여자춤이라는게 나뉘어 있지 않기도 하다"고 했다.

4X4 크루 박다원씨(20)도 "과거엔 '남자 댄서는 비보잉, 여자 댄서는 걸리시(girlish·여자아이 같은)'로 영역이 확실히 나눠졌는데 최근엔 비보이 추는 여성 댄서, '걸리시' 추는 남성 댄서도 많아져서 업계에서도 용어를 '코리오(안무)'로 고치는 추세"라 설명했다.


다만 여성 댄서가 겪는 고통 중 하나로 성희롱은 있다. 공연 중 남성 관객이 신체 주요부위를 확대해 영상을 촬영하는 일이 있고 SNS를 통해 자신의 신체부위 사진을 보내는 일도 있다.

김 감독은 지난 8월 여성 댄서들과 지방 공연을 떠났을 때 남성들이 '성매수하겠다'고 해 항의한 기억이 있다. 김 감독은 "오늘도 성희롱 댓글에 대응하느라 변호사를 만났다"고 했다. 피치스 천지연씨(23)도 "직접 겪진 않았지만 신체를 노출하고 찍은 춤 영상들이 불법 사이트에 퍼진다는 걸 듣고 충격을 받았었다"고 했다.

4X4크루 /사진=4X4크루 제공

성별에 관계없이 현장의 어려움도 있다. 고정된 수입이 없는 경우가 많고 저작권의 개념도 명확하지 않아서다. 최 단장은 "음악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듣거나 방송에 나올 때마다 사용료를 받는데 춤은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경제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요즘은 우리가 짠 안무를 커버하는 사람들을 보며 감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COVID-19)로 인한 타격도 컸다. 4X4 김수빈씨(21)는 고등학생 때 댄스팀에 합류해 지난해까지 홍대에서 길거리 공연을 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공연이 끊기며 댄스팀 멤버 대부분이 댄서를 그만뒀다. 김씨는 "주변에서 '댄서로 돈 벌 수 있겠나'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며 "심적인 타격이 있지만 춤추는 내 모습을 보면서 댄서의 꿈을 이어간다"고 말했다.

히트 친 아이돌 곡을 보면 이면엔 잘 짜인 안무가 있다. 주목을 덜 받아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에 댄서들은 '그림자'에 자신을 비유했다. 4X4에서 안무를 짜는 박다원씨는 "댄서의 역할은 아이돌의 안무와 무대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엔 되레 팬들이 댄서에 관심을 갖는 경우도 늘었다. 피치스는 브레이브걸스가 역주행 했을 당시 유튜브 구독자수가 7배 뛰었다. 강방빈씨는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내 가수의 안무를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 화제가 되고 어떤 댄스 팀이 가수 뒤에서 함께 춤을 추는지 팬 분들이 궁금해 한다"고 전했다.
스우파 인기에 감사…"그래도 춘다"

피치스댄스크루 댄서들. 왼쪽부터 차례로 심연수, 강방빈, 최유리 단장, 천지연 /사진=조성준 기자

스우파 열풍이 댄서들은 반가우면서 신기하다. 4X4 신설아씨는 "대중들이 아이돌만 덕질했는데 이젠 우리를 보면서 '누구 좋다' '춤 잘 춘다'고 해 인지도가 높아진 게 실감된다"고 했다. 응원하는 마음도 크다.

최 단장의 경우 스우파 출연진 중 학교 동료와 제자가 있다. 그만큼 업계가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일 정도로 좁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 단장은 "배틀을 치르느라 심리적 부담감, 피로감이 심할 텐데 그런 걸 견디며 댄스씬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춤을 배우고 싶다는 전화도 크게 늘었다. 피치스 심연수씨(26)는 "예전에 일주일에 2~3개 정도의 수업을 진행했다면 일주일에 스케줄을 꽉 채워 수업을 열어야 할 정도"라며 "커플, 모녀 등 다양한 분들이 문의한다"고 했다.

댄스크루를 구성하는 방법에 정해진 매뉴얼이 있는 건 아니다. 학교, 학원 강사의 주도 하에 크루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고, 프로젝트나 공연을 같이 준비하다 마음과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팀을 꾸린다.

대학에서 실용무용을 가르치는 최 단장은 멤버를 직접 섭외하기도 한다. 최 단장은 "팀워크가 중요하니 성격, 성향이 잘 맞아야 오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4X4는 코로나19로 무대를 잃은 댄서들에게 김 감독이 '유튜브 무대'를 열어주고 싶어 결성했다. 결성된 날짜도 국내 코로나 첫 확진자가 발생한 날이다. 김 감독은 "공연도 없는데 댄서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춤추려는 것에 감동했다"고 했다.

다만 댄서들은 좋아서만 이 일을 할 순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강방빈씨는 "몸이 한계치에 다다라도 연습해야 하고, 유명한 댄서가 되지 못해 주목받지 못해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도 있다"고 했다. 피치스의 최유리 단장은 "무대가 간절하다보니 정당한 페이를 받지 못하고 춤을 추는 적도 많다"며 "하지만 그럼에도 춤을 사랑하기에 계속 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