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빈도, 김태현도 법정서 "후회한다"…'반성'하면 얼마나 형이 깎이나

"마약 투약 부분에 대해서는 유죄를 모두 인정하겠다."

집행 유예 기간 중 마약을 다시 투약한 혐의를 받아 재판에 넘겨진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씨는 1심 재판을 받을 때 혐의를 전부 부인했던 입장을 뒤집고 지난달 18일에 열린 2심 재판 중 혐의를 인정하며 '반성한다'고 말했다. 검사는 놀란 눈치였다.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도 혐의를 부정하지 않았나. 거짓말 한 건가"라 따지자 황씨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며 "(마약 투약한 점을) 후회하고 부끄럽다. 다신 마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반성한다'는 입장은 결과적으로 황씨에 유리하게 적용됐다.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보다 유죄의 범위를 넓게 보고도 황씨에 징역 1년 8개월형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가 내린 징역 2년형보다 4개월 감형된 것이었다. 황씨가 2심에서 반성한 점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이처럼 재판 과정에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형량을 낮게 받은 사례는 많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한 양형 기준에 따르면 '진지한 반성'은 '처벌불원', '형사처벌 전력 없음'과 함께 범죄 감경요소에 해당한다. 황씨처럼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재판부가 형벌을 낮출 수 있는 셈이다.
"마음에 비가 내린다" 조주빈과 김태현, 법정에서 모두 '반성'했다

텔레그램에서 여성들을 성 착취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지난해 3월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조주빈은 재판을 받으며 1심에서 10번, 2심에서 32번 반성문을 제출했다. /사진=뉴스1

법정에서 피고인의 상당수는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피고인의 반성은 형법상 작량감경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텔레그램에서 아동·청소년을 성착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은 1심에서 징역 45년을 받았다가 2심에서 징역 42년으로 감형받았다. 2심 재판부는 "교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힘든 점 등을 감안했다"며 감형한 이유를 설명했다. 조주빈은 1심에서 10번, 2심에서 32번 반성문을 제출했다.


조주빈 말고도 서울 노원구에서 세 모녀를 연이어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태현도 1심에서 검사 측이 구형한 사형보다 낮은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점도 감형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반성문을 수차례 제출한 점, 유족과 피해자에 사죄의 뜻을 밝힌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김태현은 재판을 받으며 반성문을 14번 제출했다.

16개월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모 장모씨도 2심 재판부에 반성문을 17차례 제출한 끝에 1심 무기징역에서 2심 징역 35년으로 감형받았다.

'노원구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25)은 지난 4월9일 서울 도봉경찰서 유치장에서 검찰로 송치되며 무릎을 꿇고 유족에 사죄했다. 김태현은 재판 과정에서 반성문을 14번 냈다./사진=뉴스1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가 불리한 형량을 받은 사례도 있다.

2013년과 2018년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한어총)의 임원직을 맡을 당시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로비를 제공한 혐의를 받은 김용희 전 한어총 회장은 지난 3일 열린 1심에서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별다른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우동형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만일 판사가 보기에 혐의가 명백한데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한다면 '태도가 부적절하다'며 가중처벌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반성 여부에 따라 형량이 바뀌자 피고인들은 대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려 한다.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 21살 고등학교 친구를 감금한 후 가혹행위를 저질러 숨지게 한 20대 남성 두명 모두 "다시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고(故)황예진씨를 10여차례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이모씨도 변호인을 통해 "백번이라도 사과할 마음이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 "피고인이 진심으로 반성하는지 판사가 어떻게 가려내나"

마약 투약 혐의와 절도 혐의를 받는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씨. 황씨는 1심 재판에서 혐의를 모두 부인했지만 2심 재판에서 일부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징역 2년형에서 징역 1년 8개월형으로 감형받았다./사진=뉴스1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반드시 감형받는 것은 아니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살인과 상해처럼 피해자가 있는 범죄는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피해자를 향한 사과와 피해 회복이 있어야 한다"며 "반성하는 모습만으로 감형을 받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검사는 법정에서 피고인의 반성이 진심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한다. 황하나씨 재판에서 검사는 "집행유예의 선처를 한번 받았는데 유예 기간 중 범행을 또 저지른 점을 볼 때 재범 위험이 높다"며 "반성하는지 의문"이라 했다. 오피스텔에서 친구를 감금·살해한 20대 남성 2명의 재판 결심공판에서도 검사 측은 "수사 단계에서 피고인들은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피고인이 진심으로 반성했는지 가려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반성문을 쓰는 피고인 혼자 '난 반성하고 있다'고 착각하는데 실제로는 반성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피고인 스스로 마음을 모르는데 판사는 피고인의 반성이 진심인지 어떻게 알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