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 명절에는 극장 아닌 OTT?

'지금 우리 학교는', 사진제공=넷플릭스

설 명절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대목’이라 손꼽힌다. 연휴 기간 동안 TV 프로그램, 영화, 공연 등 콘텐츠 소비가 부쩍 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모든 풍경을 바꿔 놓았다. 더 이상 ‘명절=TV’ 혹은 ‘명절=극장’이란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비대면 사회로 접어들면서 ‘명절=OTT’라는 새로운 공식이 보편화됐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네번째 명절을 보내며 적응기를 가진 대한민국의 콘텐츠 소비 풍속도는 분명 달라졌다.



#초토화된 극장가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업계는 극장이다. 밀집된 장소에 불특정 다수가 2시간 이상 함께 있어야 한다는 불만감이 팽배하며 2020년 4월에는 전년도에 비해 관객수가 94% 가량 감소하기도 했다. 이후 조금씩 회복기를 거쳤지만 예전과 같은 호황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설의 경우 닷새 간의 긴 연휴인 데다, 대작이라 불릴 만한 영화 ‘해적:도깨비 깃발’과 ‘킹메이커’가 나란히 개봉돼 쌍끌이 흥행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막상 받아본 성적표는 참담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해적:도깨비 깃발’은 1월29일∼2월2일 64만9389명을 모았다. 개봉 후 누적 관객수도 3일 기준, 아직 100만 명을 넘지 못했다. ‘킹메이커’는 같은 기간 35만8001명을 동원해 2위에 올랐다. 긴 연휴를 보냈지만 누적 관객수는 48만4461명에 그쳤다.


지난 10년 간 설 연휴 극장 흥행작을 살펴보면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진다. 2012년 개봉됐던 ‘댄싱퀸’은 나흘 간의 연휴 기간 100만 관객을 모았고, 2013년 ‘7번 방의 선물’(117만 명), 2014년 ‘수상한 그녀’(217만 명), 2015년 ‘조선명탐정’(194만 명) 등이 호시기를 누렸다. 2016년 설에 개봉된 ‘검사외전’은 닷새 간의 연휴 동안 무려 478만 명을 동원했고, 2019년 ‘극한직업’(525만 명), 2020년 ‘남산의 부장들’(263만 명) 등이 대박을 냈다. 지난해에는 외화에 주도권을 내주기는 했으나 ‘소울’이 273만명을 모으며 일말의 회복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하지만 올해는 원투 펀치라 할 수 있는 두 영화의 관객을 합해야 겨우 100만 고지에 닿을 수준이다.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고령화된 TV


젊은층이 TV를 외면하는 세태 속, 이번 명절에도 중장년층을 겨냥한 콘텐츠가 TV에서 강세를 보였다.


지상파, 종편 등은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과 파일럿 예능으로 출사표를 냈다. 이 중 두각을 보인 프로그램은 지난 1월31일 방송된 KBS 2TV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였다. 국내 최고령 방송인인 송해의 일대기를 뮤지컬 형식으로 꾸민 이 프로그램은 전국 시청률 12.7%(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TV조선 ‘미스터트롯’ 출신인 영탁, 이찬원, 정동원 등이 대거 참여해 중장년 팬덤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냈다.


2월1일 방송된 KBS 2TV ‘조선팝 어게인 송가인’ 역시 6.7%로 준수한 성적표를 받았다. ‘트로트 가수’ 송가인보다 ‘국악인’ 송가인에 방점을 찍은 이 프로그램은 정통 국악부터 트로트, 국악을 새롭게 편곡하는 등 다채로운 무대를 꾸미며 ‘명절에 걸맞은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외에도 KBS ‘자본주의 학교’, SBS ‘판타스틱 패밀리-DNA싱어’, MBC ‘얼음과 돌의 노래-컬링 퀸즈’, MBN ‘아트싱어’ 등 다양한 파일럿 예능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시청층이 중장년에 집중되는 것은 방송사들의 고민일 수밖에 없다. 한 방송 관계자는 "높은 시청률을 내기 위해서는 TV를 자주 찾는 중장년층을 겨냥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경우 ‘노쇠화된 플랫폼’이라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올드 매체로 분류되는 TV의 고민은 이번 설에도 재차 증명됐다"고 말했다.


#명절엔 OTT다?


연휴 시작과 동시에 선보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공개 하루 만에 글로벌 흥행 순위 1위에 올랐다. 지난 30일 정상을 밟은 이후 4일 현재까지 엿새 째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외신들도 들썩였다. 영국 가디언은 "한국의 좀비쇼가 당신을 놀라게 할 것"이라며 "‘지금 우리 학교는’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어두운 실존주의 작품이다. 비록 ‘오징어 게임’ 같은 엄청난 성공을 반복하긴 쉽지 않지만, 영화 ‘부산행’을 본 사람이라면 한국이 좀비물 이야기를 전하는 데 세계 최고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평했고, 미국 영화매체 버라이어티는 "‘오징어 게임’과 마찬가지로 악몽 같은 공간적 배경을 최대한 활용했다"며 "다른 세상에 있는 듯 현기증 나는 효과를 줬다"고 칭찬했다.

사진제공=티빙

향후 한국의 명절에 맞춘 킬러 콘텐츠 공급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9월 추석 명절에 맞춰 공개된 ‘오징어 게임’이 신드롬이라 불릴 만한 글로벌 인기를 누린 데 이어 설 명절에는 ‘지금 우리 학교는’이 재차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외신들도 한국의 명절에 맞춘 콘텐츠 수급을 눈여겨 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토종 OTT인 티빙도 맞불을 놓아 재미를 톡톡히 봤다. 연휴에 맞춰 공개된 가수 이효리 출연 예능 ‘서울 체크인’이 티빙 전체 콘텐츠 중 유료 가입기여 1위를 기록했다. 연휴 기간 티빙 이용자도 3배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명절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TV를 보거나 극장 나들이를 하던 시대는 지났다.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고 원하는 콘텐츠를 골라보고 있다"면서 "파편화된 가족 관계를 탓할 것이 아니라, 그런 변화에 발맞춘 콘텐츠 제작 및 공급 전략을 짜야 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