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후 15년..."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10일 오후 2시 외국인보호소 고문사건 대응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5주기' 집회를 열고 법무부를 규탄했다. 사진은 지난해 3월부터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뒤 독방 구금과 '새우꺾기' 결박 등 가혹행위 피해를 입은 모로코 국적의 A씨가 발언문을 낭독하는 모습. /사진=홍효진 기자

"자유와 정의를!"

10일 오후 2시. '보호외국인'이란 글귀가 적힌 갈색 헤드기어(머리 보호대)를 쓰고 줄로 상반신을 묶은 한 남성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 서서 이렇게 외쳤다. 이 남성의 정체는 모로코 국적의 A씨. 체류기간 연장 신청을 놓쳐 지난해 3월부터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됐다. 법무부 산하 출입국관리소에 설치된 외국인보호소는 강제퇴거명령 대상인 불법체류 외국인을 추방 전까지 보호하는 기구다. 현행 출입국관리법상 외국인이 곧장 국외로 나가지 못할 경우 송환이 가능할 때까지 보호할 수 있다.


A씨는 보호소 측이 자신을 수차례 독방에 감금하고 수갑·포승줄로 손과 발을 뒤로 묶어 이른바 '새우꺾기' 자세로 결박하는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며 같은 해 6월 진정을 냈다. 관련 조사를 진행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인권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며 법무부에 제도 개선과 A씨 보호 일시 해제 등 조치를 권고했다. 법무부는 "A씨가 자해 시도를 하고 폭력성을 보였다"면서도 인권 침해 행위를 인정하고 지난 8일 오후 A씨의 구금을 일시 해제했다.
"15년 전 철창에 갇혀 죽음 맞은 희생자들… 개선은 없어"외국인보호소 고문사건 대응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이날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5주기' 집회를 열고 법무부를 규탄했다.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는 2007년 2월11일 오전 4시쯤 전남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내 외국인보호소 3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다. 당시 인권위는 보호소 측의 초동 대응이 미흡해 사태를 키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날 집회는 당시 사망한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 묵념으로 시작됐다. 이후 정지윤 화성외국인보호소시민방문모임 '마중' 활동가, 피해자 A씨,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 등 참가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현장에 모인 40여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영어로 '자유와 정의'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은 마스크를 쓴 채 회관 계단 위에 자리를 잡았다. 일부 참가자들은 'NO ONE IS ILLEGAL(아무도 불법이지 않다)'이라 적힌 철창 모양의 검은색 도화지를 들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법무부를 향해 적극적인 인권 침해 재발 방지 노력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지윤 화성외국인보호소시민방문모임 '마중' 활동가는 "15년 전 열리지 않는 철창 안에서 희생자들은 보호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며 "참사 이후 불타버린 건물은 깨끗이 새로 지어졌지만 한국 정부와 우리 사회가 새롭게 개선한 것은 없었다. 외국인보호소라는 이름의 강제 수용소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3월부터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뒤 독방 구금과 '새우꺾기' 결박 등 가혹행위 피해를 입은 모로코 국적의 A씨가 은색 손톱깎이를 들어보이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홍효진 기자

특히 가장 최근인 지난해 피해를 입은 A씨는 "그곳(화성외국인보호소)는 우리가 매일같이 노예 의식을 치른 곳이다. 밧줄과 발수갑은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고 인간성을 잃게 만드는 고문도구"라며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재판도 없이 무려 342일 동안 비인간적인 환경의 고등 보안 감옥에 갇혀 지냈다"고 주장했다.


발언을 마친 A씨는 준비해 온 은색 손톱깎이를 들어보이며 "하나의 손톱깎이를 갖고 (외국인보호소) 수용자 모두가 나눠 쓴다. 이게 대한민국이 말하는 (코로나19) 방역인가"라고 덧붙였다. A씨는 직접 몸을 묶고 있던 줄을 풀어헤친 뒤 머리에 쓰고 있던 헤드기어를 던지며 "자유와 정의!"라고 외쳤다. A씨의 구호에 맞춰 옆에 서 있던 집회 참가자들도 같은 말을 반복해 소리쳤다.

집회에선 법무부의 인권 침해 재발방지 노력이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법무부는 지난해 11월1일 A씨의 인권침해 사실을 인정하며 향후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지만 인권단체와 아무런 소통도 없었다"며 "이젠 교도소에서 사용하는 전신 결박용 의자와 침대 등 장비 13가지를 도입하려 한다고 한다. 이게 재발방지 대책인가"라고 주장했다.

이날 약 2시간 동안 이어진 집회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청와대까지 행진하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은 손에 들고 있던 하늘색과 흰색 종이 비행기를 날리며 자유를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외국인보호소 인권 침해 반복… 전문가 "내부 규정 투명하게 공개"

10일 오후 2시 외국인보호소 고문사건 대응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5주기' 집회를 열고 법무부를 규탄했다. /사진=홍효진 기자

외국인보호소 내의 인권 침해가 반복되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출입국관리과 내부 규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단법인 두루 최초록 변호사는 "법무부 출입국관리과 내부 규정이 내부적으로만 확인되고 외부에선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내부 지침에 근거해 장비를 사용했다고 해도 과도한 인권 침해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외국인의 기본권을 극도로 침해할 수 있는 규정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내부 규정을 외부에서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수용자가 폭력성을 보여 피해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면 신체적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물론 있다"면서도 "관련 규정에 규정된 구속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돼야 하고 (A씨 사례처럼) 기본권을 침해할 만큼 과도하다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법무부가 전국 외국인보호소 구금 외국인을 대상으로 전신 결박용 의자, 조끼형 포승 등 13종의 장비를 새로 도입하는 내용이 담긴 출입국관리법 외국인보호규칙 개정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인권 침해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와 관련 법무부 관계자는 "시행규칙 개정에 대해 인권위 등 각 부처 기관들에 지난 7일까지 의견을 받았고 곧 검토 보고서를 제공받을 예정"이라며 "여러 의견을 검토한 뒤 수정을 거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