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3조원짜리 러시아 자회사 '17원'에 내놨다…왜?

/로이터=뉴스1

프랑스 자동차 제조업체 르노가 국제사회의 대(對)러시아 제재에 합류하는 탈(脫)러시아를 선언한 가운데 자산가치 22억유로(약 2조9522억원)에 달하는 러시아 자회사 지분을 단돈 '1루블(약 17원)'에 현지 국영기업에 넘기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은 르노가 러시아 자회사 아브토바즈 지분 68%를 러시아 국영 자동차연구개발(R&D)센터(NAMI)에 매각하는 방안을 러시아 정부와 협상 중이라고 보도했다. 1918년에 설립된 NAMI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사용하는 리무진 등 러시아 자동차, 트럭 등의 설계와 제작을 후원하는 국영기관이다. 아브토바즈의 나머지 지분 32%는 러시아 최대 방산기업인 국영 로스텍이 보유하고 있다.


데니스 만투로프 러시아 산업장관은 러시아 현지 언론을 통해 르노와의 매각 협상 사실을 알리며, 모스크바에 있는 르노 공장 지분이 모스크바시 당국으로 이관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르노가 매각한 지분을 5~6년 안에 재매입할 수 있는 '바이백(Buy-back)' 옵션이 인수 조건에 포함됐다고 덧붙였다. 르노의 최대 주주(지분율 15%)인 프랑스 정부는 매각 협상 관련 논평을 거부했다.

만투로프 장관은 "(르노) 인수는 러시아 정부의 계획에 없고, (아브토바즈를) 국유화할 생각도 없다"며 이번 매각이 르노가 러시아 사업부를 러시아 정부에 수탁하는 형태로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백 옵션 가격은 NAMI가 아브토바즈를 관리하는 동안 투자한 금액에 따라 책정될 예정이다. 국제사회 제재로 공장 가동 중단을 발표한 르노의 자회사를 '1루블'에 매입해 대신 관리해주고, 향후 5~6년 안에 르노가 러시아 시장으로 복귀하면 그때 NAMI가 그간 투자했던 금액으로 되팔겠다는 얘기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르노 자동차 공장 /AFP=뉴스1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을 두고 러시아가 르노에 러시아 시장 복귀 문을 열어준 것이라며 국제사회 제재에 어려움을 겪던 르노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르노가 지금은 국제사회 제재로 인한 공급망 차질에 어쩔 수 없이 공장 가동 중단 등 사업철수를 결정했지만, 상황이 좋아지면 사업을 재개할 만큼 러시아가 르노에 비중이 큰 시장이라는 이유에서다. 르노는 그간 수십억 유로를 투자하는 등 러시아 시장에 집중했다. WSJ에 따르면 지난해 르노의 러시아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30%에 육박했다. 러시아 매출은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했고, 아브토바즈에서 얻은 수익률은 8.7%에 달했다.

또 러시아 정부의 국유화 작업이 진행되기 전에 사업 관리권을 넘겨 현지 자산몰수를 막을 수도 있다. 크레디트스위스(CS)는 "러시아 자동차 시장이 언제 반등하고, 지정학적 위기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르노가 러시아로 복귀할 수 있는 문을 (러시아 정부가) 열어 놓은 것"이라며 이번 협상이 러시아의 외국기업 국유화 문제 해결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러시아 국가두마(하원)는 현재 자국에서 철수하는 외국기업의 자산을 국유화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관료회의에서 "러시아 내 생산을 멈추는 기업들에 대해 단호하게 행동해야 한다"며 탈러시아를 선언한 외국기업 자산을 국유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러시아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은 기업 파산 방지와 일자리 유지를 위해 러시아 시장 철수를 선언한 외국기업의 현지 자산을 몰수해야 한다며 관련 법안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