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의 양보도 없다…'원구성 협상' 여야 '폭로전' 불사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여야 원 구성 협상이 22일 '폭로전'과 진실게임' 양상으로 치닫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협상 조건으로 대선 국면에서 이뤄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고소·고발 취하를 요구했다고 밝혔고 민주당은 "얼토당토 않다"며 사과를 촉구했다.

법제사법위원장직,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운영,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진상조사 등 주요 현안 관련 한 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여야의 협상 태도가 갈등의 핵심이다. 4주째 국회의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지면서 유류세 인하 등 여야가 공감하는 민생 정책 역시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권성동 "이재명 살리기에 정략적"…박홍근 "사과 안하면 안 만나"
권성동 원내대표는 2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공부모임 '내일을 바꾸는 미래전략'의 세미나에서 "대선 과정에서 고소·고발을 취하하라는데 전부 우리가 한 건 이재명 후보에게 한 것"이라며 "이재명 살리기 위해 정략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 구성 협상 조건으로 당시 이재명 후보에 대한 고소·고발 취하를 들고나왔다는 주장이다.

전날 진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의 발언에 대한 맞불 성격으로 풀이된다. 진 원내수석은 전날 여야 원내수석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이) 서해에서 피살된 공무원 진상조사 특위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며 "그것이 원 구성 협상과 무슨 관련 있냐고 했더니 민주당도 원 구성 관련 없는 사안을 협상 조건으로 들고나온 것 아닌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진 원내수석은 이날 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권 원내대표 발언에 "전혀 그런 적이 없다"며 "이재명 이름조차 거론한 적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 구성과 무관하게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양당이 정치적으로 고발한 것들이 있으니 서로 신뢰회복 차원에서 취하하는 게 어떠냐는 의사 타진을 한 적 있다"며 "선거가 끝나면 늘 그래왔지 않느냐 식의 공감도 상대 수석이 나타낸 바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이 의원만 고발한 게 아니고 대변인단의 많은 분들이 고발 당했다"고 했다.

이날 오후 예정된 여야 협상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사실 왜곡하는 것에 대해 바로잡아 주시고 사과하지 않으면 오늘 중 만남은 갖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22일 오전 인천 연수구 테크노파크로 송도센트럴파크 호텔에서 열린 ‘국민의힘 인천시당 제9대 지방선거 당선인 워크숍’에서 권성동 원내대표로부터 자리를 안내받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법사위원장직 이어 한국형 FBI…여야, 양보는 없다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여야 '강 대 강' 국면이 끝내 폭로전과 진실게임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당초 법제사법위원장직을 두고 국민의힘은 김기현·윤호중 전 원내대표 간 합의 이행을, 민주당은 후반기 원구성 협상 주체의 원점 논의를 주장하며 맞섰다. 그러나 지방선거 패배 후 민주당 일각에서도 법사위원장직에 몰두하는 데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며 협상 공간이 열릴 것이란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산 넘어 산'이었다. 사개특위 등 다른 현안 관련해서도 여야는 접점을 찾지 못했다. 민주당은 지난 4~5월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의 후속 조치로 국민의힘이 사개특위에 참여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사개특위에서 '한국형 FBI(미국 연방수사국)'으로 불리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가칭)을 출범하고 정부가 시행령 개정 등으로 사실상 검찰의 직접수사권 허용하는 방안 등을 저지한다는 구상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같은 입법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악법'이라며 '악법' 완성을 위한 사개특위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고 받아친다. 검수완박 입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취하해달라는 민주당 요구 역시 단칼에 거절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권한쟁의심판이란 국가기관 상호 간 등에서 권한 다툼이 있을 때 헌법재판소가 가리는 절차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與 원구성 협상만 vs 野 여야 관계 회복해야
원 구성 협상의 성격을 두고서도 여야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전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 및 관행에 따라 법사위원장직을 여당이 맡고 11대 7로 상임위원장직을 배분하면 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반면 민주당은 국회 정상화와 여야 관계 회복이 핵심이라며 이같은 현안 논의가 원 구성 협상과 별개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권 원내대표가 지난 4월 박 원내대표와 검수완박 중재안에 합의한 직후 파기했다는 사실도 재차 강조한다.

문제는 국회 공전으로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한 정책조차 논의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야는 고물가 대책으로 유류세 탄력 운영을 위해 교통·에너지·환경세(교통세) 조정 범위를 '100분의 30'에서 '100분의 50' 등으로 하는 데 대체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통·에너지·환경세법에 따르면 유류세를 구성하는 교통세는 리터당 475원(휘발유 및 대체유류)인데 현재 탄력세율을 적용해 이보다 소폭 높은 리터당 529원을 적용하고 있다. 탄력세율 대신 법정세율을 적용하고 탄력세율 조정 범위도 최대 '100분의 50'으로 확대하면 교통세는 237원대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그 한마디에 삐지면 되나"라며 "사과할 것이 뭐가 있나"라고 말했다. 이어 "자신들이 다 '까놓고서는'(공개했다)"라며 "진 수석이 다 '까발렸는데'(공개했는데) 그래서 우리도 대응했을 뿐인데 삐지면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권 원내대표가) 정말 얼토당토 않은 발언을, 이 살얼음 협상 상황에서 찬물 끼얹는 말씀을 하셔서 기가 찬다"며 "지금 협상 상대로서 할 이야기인가"라고 말했다.

정부가 고유가를 잡기 위해 유류세 인하폭을 30%에서 37%까지 확대하기로 하고 화물·운송업계에 대한 유가연동보조금 지원폭을 늘리기로 했지만 기름값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인하 체감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 사진제공=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