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문화재·산더미 쓰레기…100만 명 다녀간 청와대 '몸살'

청와대 개방 행사 이틀째인 1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관람객들이 오가고 있다. 2022.5.11/뉴스1

금단의 영역에서 국민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청와대가 연일 인산인해다. 청와대 문패가 '대통령'에서 '국민'으로 바뀐 지 44일 만에 100만 명이 몰리며 코로나19(COVID-19) 이후 부활을 노리는 광화문 역사·관광·문화벨트의 꼭짓점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연일 수 만 명이 발도장을 찍는 청와대를 향한 시선이 곱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버투어리즘(수용 가능범위를 넘어선 과잉관광)에 시달리는 청와대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높아진다. 치밀한 준비 없이 개방이 이뤄진 탓에 문화유산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단 지적도 나온다.
44일 만에 경복궁 1년 관람객 채워

청와대 개방 44일째인 지난 22일 청와대 대정원에서 열린 ‘100만 번째 청와대 관람객’ 기념행사에서 100만 번째 관람객으로 선정된 김영순 씨(두 번째 줄 왼쪽 세 번째) 일행이 축하 홍보물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27일 문화재청 청와대개방추진단에 따르면 지난 22일 청와대 누적 관람인원이 1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달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에 맞춰 개방한 지 44일 만이다. 매일 평균 2만2727명이 찾은 셈인데, 구체적으로 △청와대 국민개방 특별행사 기간(5월10~22일) 37만7888명 △청와대 국민개방 연장기간(5월23일~6월11일) 43만9264명 △청와대 상시개방(6월12~22일) 18만2848명이 다녀갔다.


광화문 대표 관광명소인 경복궁의 작년 방문인원(108만5188명)을 따라잡았다. 경복궁 관람객이 코로나19 거리두기로 급격히 쪼그라든 영향도 있지만, 청와대 역시 원활한 운영을 이유로 하루 3만~4만명대로 입장을 제한하고 있단 점에서 한 달 반만에 달성한 100만 관람객의 의미가 상당하단 게 문화재당국의 설명이다.

청와대 관람수요는 당초 예상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앞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청와대 개방 후 연간 314만명이 찾을 것으로 내다 봤는데, 현 추세라면 반 년 내로 관람객 300만명을 채울 전망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방문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지만 다음달 단체관람 예약이 한 달 전에 마감되는 등 관람열기가 현재진행형이란 점에서 내년 5월까지 600만명 이상 찾을 수 있단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개방과 연계한 '2022 봄 궁중문화축전'이 열린 지난달 15일 경복궁을 찾은 시민들이 맑은 날씨속에 휴일을 보내고 있다. /사진=뉴시스

청와대 개방효과는 광화문 일대로 확산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에서 분석한 결과 청와대가 있는 서울 종로구의 지난달 외래 방문자는 1247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32.6% 증가했다. 특히 70세 이상 여성 방문자가 60% 늘어나는 등 수도권, 청년층 중심의 방문자 유형이 지방, 중·장년 단체관광객으로 넓어졌다. 청와대 100만번째 관람객도 충북 충주시에서 간만에 서울 나들이를 온 73세 여성이었다.

청와대는 광화문광장·경복궁(관광)~삼청동(미술)~한양도성(등산)을 잇는 도심 여가·관광루트를 만들고 있다. 이달 초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과도 시너지를 냈다. 한 관광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방한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콘텐츠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유산 가치 지킬 수 있나' 섣부른 개방 우려도

청와대 본관 내부 일부 및 관저가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지난달 27일 청와대 녹지원 일부 시설물이 관람객들에 의해 훼손돼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청와대 100만 관람객을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단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연일 구름인파에 시달리는 청와대가 '오버투어리즘'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단 우려에서다.


실제 청와대 개방 직후 경내 문화재 시설을 관람객이 훼손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경내 시설 화장실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등 여기저기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 관람객 불법주차로 주민 불편이 커지자 서울시가 신속히 보행환경 개선에 나선 것도 전형적인 오버투어리즘이 낳은 현상이다.

대통령 취임에 맞춰 개방을 서두르다 벌어진 일이란 지적이다. 운영방향과 향후 발생할 문제에 대한 관련 부처간 면밀한 검토와 논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물리적 의미의 개방만 이뤄져 잡음이 생기고 있단 것이다. 최근 헌법재판소장 공관 앞 등산로 폐쇄논란으로 개방 의미가 일부 퇴색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문화재계에선 청와대가 갖는 역사적 가치와 공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관람객부터 받은 데 대한 아쉬움도 적지 않다. 면밀한 연구·조사가 이뤄지긴 커녕 청와대가 아직 문화재 지정도 되지 않은 상태란 점에서 문화유산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단 점에서다. 당장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사항을 조사·심의하는 문화재위원들의 답사도 개방 한 달을 훌쩍 넘겨서야 이뤄졌다.

이현경 한국외대 연구교수는 최근 열린 건축학회 포럼에서 "청와대 개방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청와대 의미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땅만 밟고 돌아간다면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라며 "단순한 개방이 아니라 문화유산 공간으로 보호할 부분은 구분 짓고, 시민이 청와대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활용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