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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순신을 아는가?…30년의 집념, 묵직한 질문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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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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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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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터뷰 : ZZINTERVIEW 아카이브]23-③ 김세랑 작가 인터뷰

[편집자주] '찐'한 삶을 살고 있는 '찐'한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누구든 '찐'하게 만나겠습니다. '찐터뷰'의 모든 기사는 일체의 협찬 및 광고 없이 작성됩니다. '찐터뷰 아카이브'는 인터뷰 전문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왼쪽은 김세랑 작가의 이순신 6분의1 크기 미니어처(2013년작). 이순신의 5대손 이봉상, 7대손 이달해의 초상화를 참고했다. 이순신의 삶의 궤적과 고뇌를 얼굴에 담았다. 오른쪽은 2019년 무렵 이순신의 초상화라는 주장이 나왔던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의 '무인 초상화'. 키스가 1919~1936년 사이 국내에 들어와 이순신 사당 같은 곳에서 특정 그림을 모사한 작품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을린 피부, 깊은 주름, 치켜뜬 눈, 깐깐해보이는 인상 등 공통점이 많다.
왼쪽은 김세랑 작가의 이순신 6분의1 크기 미니어처(2013년작). 이순신의 5대손 이봉상, 7대손 이달해의 초상화를 참고했다. 이순신의 삶의 궤적과 고뇌를 얼굴에 담았다. 오른쪽은 2019년 무렵 이순신의 초상화라는 주장이 나왔던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의 '무인 초상화'. 키스가 1919~1936년 사이 국내에 들어와 이순신 사당 같은 곳에서 특정 그림을 모사한 작품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을린 피부, 깊은 주름, 치켜뜬 눈, 깐깐해보이는 인상 등 공통점이 많다.
"맑다. 새벽에 토악질을 하다가 몹시 아파 인사불성이 되었다. 밤을 앉아 새웠다."(난중일기, 1597년 8월21일자)

명량해전(1597년 9월16일) 약 한 달전부터 이순신 장군은 이같은 기록들을 숱하게 남겨놨다. 매일같이 토를 하고, 너무 아파서 배를 못탈 지경에 빠진다. 12척의 배로 왜군 133척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가 매일같이 기록된 짧은 문장 하나하나에 배어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영화·드라마에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평면적이다. 백의종군 후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정신적으로는 굳건하다. 어떤 상황에서든 흔들림이 없다. 사람이 과연 저럴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인간이라기 보단 신선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순신 장군 콘텐츠가 나올 때마다 주인공인 이순신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였다. 성웅(聖雄)이라는 호칭 속에 그의 이미지는 박제됐다. 그가 인간적으로 어떤 고뇌를 했고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보다는, 어떻게 호쾌하게 왜적을 쓸어버렸는지에 더 큰 관심이 쏠렸다.

영화 '한산:용의 출현' 개봉 이후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상황 속에서, '박제된 이순신' 이미지를 깨부쉈던 피규어 하나가 떠올랐다. 2013년 미니어처 아티스트 김세랑 작가가 발표했던 이순신 장군 피규어(6분의1 크기). 그을린 피부, 깊게 파인 주름, 이글거리는 눈빛,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충격을 줬던 그 작품이다.
김세랑 작가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김세랑 작가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그 누구보다 생생한 '이순신 제독'을 부활시켰던 경험이 있는 그로부터 '진짜 이순신'이 현대사회에 갖는 의미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김 작가가 오는 10월쯤 선보일 4분의1 크기의 이순신 피규어를 제작하고 있는 시점이기도 했다.

30년 동안 장군을 연구해왔다는 예술가로의 그의 삶 역시 궁금했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한결같이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가 그의 삶에 담겼다고 생각했다.

'찐터뷰'는 김세랑 작가를 지난 2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다음은 김 작가와의 인터뷰 전문을 요약·정리해본 것이다.

- 미니어처 아티스로 1991년부터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교육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었다. 프라모델 모형 콘테스트를 통해서 처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91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모형 전문 잡지가 생겼다. 거기서 작품을 만들고, 그걸 기사로 작성하는 필진으로 데뷔를 했다. 그게 내 미니어처 커리어의 시작이다."

- 첫 작품이 기억나나.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 메카닉, 로봇, 이런 것들로 처음 시작했다."

- 인물을 만들기 시작한 계기는.
▶"서양화를 전공하다보니 인물에 관심이 많았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관심도 있었다. 이후 내 팬덤이 좀 생겼는데, 그때부터는 취향껏 만들 수 있게 됐다.."

- 처음으로 만든 역사 인물은 누구였나.
▶"이순신 장군이다. 내가 한 인물을 두 번 안 만드는데, 이순신은 지금까지 5~6번 만든 것 같다."

- 이순신에 끌린 이유가 뭔가.
▶"내가 1972년생이다. 반공 교육을 받고 산 세대다. 이순신을 우상화하는 움직임이 박정희 정권 때 있었잖나. 그걸 그대로 흡수하고 영향을 받았다.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도 '성웅 이순신'이란 작품으로 기억한다."
김세랑 작가의 이순신. 검게 그을린 피부, 깊게 파인 주름, 신경질적인 눈매. /사진=김세랑 홈페이지
김세랑 작가의 이순신. 검게 그을린 피부, 깊게 파인 주름, 신경질적인 눈매. /사진=김세랑 홈페이지
-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인가.
▶"그건 또 아니다. 결정적으로 이순신에 빠져들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 난중일기를 읽은 다음이다. 위인전에서 읽었던 것들과 완전히 다른 내용들이 있더라. 그때 완전히 눈이 트였다."

- 어떤 점에서 그렇게 생각했나.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모든 기존 이미지가 다 깨진다. 이순신의 기존 이미지는 국가표준영정 속에 있는 푸근하고 온화한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한산섬 수루에 앉아 시를 읽다가, 번뜩 깨닫고 '학익진을 펼쳐라' 외치는 딱 그 수준이다."

- 이순신의 기존 이미지가 '신선' 처럼 평면적이긴 하다.
▶"이순신은 전혀 그런 인물이 아니다. 엄청나게 신경질적이고 다혈질이다. 욕도 잘한다. 거기에 몸이 굉장히 아팠다. 그런데 임금과 나라와 백성에 대한 충성, 그거 하나는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꼬장꼬장한 노인네의 모습이라 보면 된다. 고정관념 속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순신을 아느냐'고 물으면 모두가 '안다'고 답하지만, 사실은 잘 모른다."

- 그런 이순신의 진 면모를 반드시 피규어로 만들어보겠다 다짐한 것인가.
▶"실제 이순신의 모습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책, 기사, 잡지 등을 다 스크랩했다. 전국의 박물관을 다 돌았다. 역사적 장소를 모두 발로 뛰며 답사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예술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 30년째 이렇게 이순신에 사로잡힌 이유는.
▶"이순신은 '내추럴 본 히어로(natural born hero)'가 아니다. 슈퍼맨이 아니다. 처음부터 비범하지 않았다. 남들이 모르는 전략을 갑자기 하룻밤 안에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불완전한 캐릭터다. 그런 그가 자기가 가진 능력치 안에서 최대한 노력했다. 그리고 자신을 극복해서 위대한 일을 해냈다. 이순신의 영웅 서사는 이래야 한다."

- 이순신의 이미지를 바로 잡고 싶었던 것인가.
▶"난중일기를 봐보자. 이순신은 매번 끙끙 앓는다. 지금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지지 않을 수 있나,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나를 밤새 고민한다. 잠을 자지 못한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토하고 열이 난다. 다 그런 내용이다."
김세랑 작가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김세랑 작가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그럼 이순신은 어떻게 전승 신화를 세웠나.
▶"명량해전에 나가기 직전에 이분은 거의 인사불성 상태였다. 감당이 안 되는 거다. 자기한테 주어진 상황이 능력 밖이었던 거다. 아무리 온갖 꾀를 짜내 봐도 이게 방도가 없는 거였다.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신경쇠약에 걸렸다."

- 그걸 극복한 것인가.
▶"자기가 가진 지혜와 용기를 최대한 짜낸다. 자기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쥐어짠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덕을 최대한 발휘해서 부하들을 다독인다. 자기가 가진 냉철함을 최대한 꺼낸다. 탈영한 부하들이 불쌍하지만, 군기를 위해 결국 베어버린다. 그렇게 쥐어짜고 쥐어짜서 출전해서 승전을 이뤄낸다. 이게 정말 위대한 것이다."

- 그런 부분들을 미니어처를 통해 부각시키는 것인가.
▶"국가표준영정에 불만이 뭐냐면, 그분의 인생과 고뇌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깨야 한다. 그걸 깨뜨려야지만 이순신의 실체, 즉 본질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갈 수 있다. 참이라고 믿고 있던 이미지가 다 허상이라는 점을 일종의 충격 요법으로 알리고 싶었다."

- 오는 10월에 나오는 4분의1 크기의 이순신 미니어처에서는 무엇이 바뀌나.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다. 2013년 작품은 평상시 모습이었는데, 그 점이 달라진다."

- 왜 명량해전의 이순신인가.
▶"무장 이순신의 강인함이 가장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신체적으로 가장 취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정신력이 극도로 분출된 시기였다. 평범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그 순간을 표현하고 싶다. 쇠약한 한 명의 인간이 자신을 극복하고 결과적으로 무신(武神), 전쟁의 신이 된 것이지 않나."
김세랑 작가는 '활' 등 전통무기들과 관련해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사진=김세랑 페이스북
김세랑 작가는 '활' 등 전통무기들과 관련해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사진=김세랑 페이스북
- (제작 중인 피규어를 본 후)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는 표정인데.
▶"1차원적 분노가 아니다. 억지로 참고 있던 분노가 표출되기 직전인 상태를 표현하려 한다. 어떻게 보면 고통이나 슬픔 처럼도 보인다. 그래야 명량해전 당시의 이순신이 표현된다. 백의종군, 병으로 악화된 건강, 선조의 질투, 원균의 뻘짓…이 모든 상황을 아우르는 감정을 표현하려 한다. 이 사람이 겪었던 고뇌와 고통이 함께 녹아있는 모습을 만드려 한다."

- 고증 작업도 중요할 것 같은데.
▶"내가 2013년에 만든 이순신 피규어를 보면 거의 8등신에 가깝다. 조선시대 성인 남성 키는 160cm를 겨우 넘는다. 하지만 사료를 보면 '무관'들은 달랐다. 무과에 응시하려면 당시 평균키 보다 훨씬 컸어야 했다.

- 조선시대 무관의 기본 조건이 '피지컬'인 것인가.
▶"그렇다. 특히 조선시대에 이름난 무장이 되려면 뛰어난 신체 조건이 전제돼야 했다. 무과 시험 중에는 일반화살 5배 가까운 무게의 육량전을 쏘는 게 있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2~3배의 근력이 있어야 쏠 수 있다. 이순신 정도의 위치에 가려면 그 당시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특출나야 할 거 아닌가."
※ 김세랑 작가는 전통 활과 궁술과 관련한 국내 최고 전문가이기도 하다. 국궁문화연구회 사무국장이고, 대한궁도협회 공인 5단이다.

- 얼굴은 이순신의 5대손인 이봉상의 초상화를 참고한 것인가.
▶"안타깝게도 이순신 초상화가 남은 게 없다. 그래서 5대손인 이봉상 초상화를 기준으로 참고했다. 날카로운 눈, 오똑하고 긴 코, 단단한 입매…그런데 이순신은 이봉상과는 또 다른 삶을 살아온 분 아닌가. 그걸 거기에 녹였다. 그게 내가 표현한 얼굴이다. 임진왜란 당시 고뇌와 고민, 그리고 성품이 어우러져 드러나길 바랐다."
이순신의 5대손 이봉상의 초상화(왼쪽)와 7대손 이달해의 초상화. 얼굴형태에 비슷한 점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순신의 5대손 이봉상의 초상화(왼쪽)와 7대손 이달해의 초상화. 얼굴형태에 비슷한 점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 2013년 작품의 갑주는 18~19세기 것을 적용했다 했는데.
▶"그때는 용모 하나를 바꾸는 것도 부담스럽던 시절이다. 그래서 16세기 갑주를 적용하면 그 누구도 '이순신 피규어'로 안 볼까봐 걱정했다. 그래서 18~19세기 두정갑을 참고해서 갑주를 제작했다. 오는 10월 공개할 작품에는 조선 전기의 붉은색 두두미갑을 입는 것으로 할 것이다."

- 붉은색 두두미갑은 어떤 옷인가.
▶"이순신이 어떤 갑주를 입었는지는 100%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조선 전기의 갑주를 참고했다. 국조오례의 갑주편을 봤을 때 두두미갑이 충무공 이순신에게 적용하기 가장 합당한 갑주라고 판단했다. 백은과 황동 두정을 번갈아 교차해 박은 화려한 갑주다. 그중 최고위급은 홍색, 그 아래는 청색이었다. 이순신은 종2품 삼도수군통제사로 당상관(정3품 이상)이었다. 당연히 붉은색 두두미갑을 착용한 것으로 묘사하는 게 가장 근접한 방식일 것이다. 국내외에 현존하는 거의 모든 갑주 유물을 분석하고 참조해 미니어처로 재현할 것이다."

- 미니어처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힘든 점이 있나.
▶"나라나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기가 너무 어렵다. 공식 자료, 유물, 기록에 수시로 접근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굉장히 불리하고 어렵다. 주류 학계도 연구를 하고 있지만, 나는 직접 발로 뛰면서 연구를 하고 있다. 실제로 활쏘기 등을 해보면 이런저런 해석이 가능 하다는 지점들을 볼 수 있다."

- 예술가의 입장에서 치열한 고증과 연구를 반복해온 점이 인상적이다.
▶"내 작업의 핵심 키워드가 인간의 양면성, 혹은 다양성이다. 입체적이지 않은 해석의 인물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파고 들어가면,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면과 그 뒤에 있는 또 다른 면이 있다라고 생각한다."

- 이순신도 마찬가지인 것인가.
▶"이순신은 그렇게 봐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얼굴을 표현할 때 그런 모습을 담고 싶었다. 그분의 캐릭터, 살아온 궤적이 얼굴에 드러나길 바랐다."
김세랑 작가의 이순신 미니어처(2013년 작품)/사진=김세랑 홈페이지
김세랑 작가의 이순신 미니어처(2013년 작품)/사진=김세랑 홈페이지
김세랑 작가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김세랑 작가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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