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없는 지구 온난화, 정상적 농사 힘들어져"…29세 농부의 한숨

/사진=임종철 디자인 기자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 이젠 진짜 현실이다. 바나나가 자람. 이제 대구에서도 바나나 자연 수확 가능함."

폭염이 몰아치던 지난 2017년 6월 페이스북 페이지 '대구는 지금'에 이같은 글과 함께 사진이 올라왔다. 대구의 일반 가정집 앞마당에 바나나가 열린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점점 '아열대화'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어디어디 지역에 바나나가 열렸다'는 소식들은 여름철 단골 뉴스가 됐다. 이번 여름에도 강원도에 바나나가 열렸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국산 바나나' 농사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산하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전국에 총 45곳의 바나나 농가가 위치해있다. 전체 면적은 21헥타르를 조금 넘을 정도지만, 점점 전국으로 퍼지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경기도에서도 바나나가 본격 재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관계자는 "바나나 농사가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것을 '지구 온난화' 하나의 이유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온난화' 보다는 '농업 기술 발전'의 영향이 크다고 언급한다. 바나나는 자연 상태에서 한국의 겨울을 날 수 없는 작물이다. 국내 기후상 바나나를 노지에서 재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기도 안성의 비닐 하우스에서 2019년부터 바나나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12월 첫 출하에 성공한 청년 농부 김재홍씨(29세)는 "내가 바나나를 키우는 것은 사실 지구 온난화랑 전혀 관계가 없는 얘기다. 노지에서 바나나를 재배하는 게 아니고 시설(비닐 하우스) 안에서 재배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경기도에서 바나나 재배를 어떻게 하느냐. 난방비가 안 맞는다'는 말들을 들었지만 "안 될 게 없다"는 생각으로 바나나 농사를 추진했다고 한다. 난방비는 기존 오이 농사를 지을 때보다 10% 정도 더 나가는 수준이라고. 그가 재배한 바나나는 수입산 보다 두 배 정도 비싸지만,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이어서 급식, 임산부용 동으로 팔리고 있다.

2017년 대구의 한 가정집 앞마당에 심은 바나나 나무에 열린 바나나./사진=페이스북 '대구는 지금' 페이지

그렇다고 지구 온난화가 농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고령화에 따른 인구소멸, 코로나19에 다른 인건비 상승 등과 함께 지구 온난화는 우리 농촌을 위협하는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다. 김재홍씨만 해도 최근 여름에 흐린 날이 급격히 증가하고 비가 많이 내림에 따라 생강이나 기장 농사를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이번 여름 뿐만이 아니다. 작년에는 또 괜찮았는데, 그 전년도의 경우 올해와 비슷했다"며 "흐린날이 계속되면서 햇빛이 안 나면 사실 농부 입장에서는 답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있는 안성만 해도 남부 지방 특산물이었던 '양파' 농사를 짓는 곳이 엄청나게 늘었다고 한다. 김씨는 "10년 전만해도 '우리 동네에서 양파를? 안 될 걸?'이런 분위기였는데 이젠 완전히 변했다"며 "양파 생산 가능 지역이 점점 올라오고 있다. 강원도 철원에 있는 친구도 양파를 심기 시작하더라"고 말했다.

김씨는 경북 문경에서 우엉 농사를 짓는 지인의 얘기도 전해줬다. 원래 우엉을 3월에 심어서 10월에 수확해왔는데, 여름이 너무 더워지고 비가 많이 와서 우엉 농사를 기존의 10% 수준으로 줄였다고. 우엉 농사의 경우 하우스 안에서 10월에 심어, 6월에 수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김씨는 "농산물 한 품목, 한 품목 자체가 정상적이고 정석적인 방법으로 재배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자연의 힘에 의존해서 재배할 수 없게 되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의 역할과 도움 없이는, 농민들이 이제 정말 힘든 상황에 직면한 것 같다"고 밝혔다.

청년 농부 김재홍씨가 지난 24일 경기도 안성 다릿골농원에 핀 바나나꽃을 들춰보고 있다./사진=최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