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음악에 묻혀버린 외침…소음이 참사 키웠다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을 찾은 한 시민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이태원···죠. 숨이···막혀가지고···"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참사가 일어났던 지난달 29일 밤엔 옆사람과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소음이 심했다. 그날 밤 10시12분쯤 걸려 온 119 신고 전화도 그랬다. 신고자가 '숨이 막힌다'고 했지만 주변 소음으로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신고는 '끊김'으로 종결 처리됐다.


이태원에서 15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난 가운데 '소음'이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건 당일 가게들이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둔데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소음을 내는데도 통제가 되지 않아서다. 결국 소음 탓에 위험 상황 인식과 대처는 더욱 늦어졌다.

8일 경찰청에 따르면 참사 당일 오후 6시부터 밤 10시15분까지 접수된 112 신고 93건 가운데 3건이 소음 신고였다. 두 명의 신고자가 "매장 음악 소리가 너무 크다"고, 또 한 명이 "옥상에서 사람들이 술 마시고 시끄럽게 떠든다"고 신고했다. 신고 이후에도 소음은 이어졌다.

이태원 참사는 좁은 골목에 다수의 사람이 몰리고 "밀지 말라" 등의 외침이 뒤편까지 닿지 않으며 일어났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참사 당일 밤 10시15분부터 이튿날 오전 12시56분까지 '압사'를 직접 언급한 19건의 119 신고가 접수됐다.


당시 신고 전화엔 거리의 소음과 사람들의 비명, 울부짖음이 뒤섞였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깔렸어요", "다 넘어지고 밟히고 난리 났어요", "밀지마세요", "밀지마! 밀지마!", "살려주세요", "빨리요". 비명과 신음 사이로 "여기 사람 죽어요" 라는 말만 남기고 끊긴 전화도 있었다.

이태원역 인근은 평소에도 소음이 심했다. 국가소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태원역 3번 출구 인근은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평균 소음이 71.54dB(데시벨)이었다. 이는 '전화벨 소리' 등 귀에 거슬리는 소음 정도다. 번화가 특성상 주말 밤의 소음은 더욱 심했을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골목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도시지역 중 준주거지역으로 분류된다. 이곳에선 낮 시간대 소음이 50데시벨, 밤 시간대 소음이 40데시벨을 넘어서는 안 된다. 도로변이라도 낮 시간대 65데시벨, 밤 시간대 55 데시벨을 넘기면 안 됐다.

그러나 참사 당일 소음 수준은 더욱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골목이 많은 사람으로 붐볐고 여러 업소가 외부 스피커로 음악을 틀었다.
사고 당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공유된 영상을 보면 구급차가 지나가는데도 거리의 시민들은 주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합창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용산구가 상권 활성화를 위해 '객석에서 춤을 추는 행위가 허용되는 일반음식점의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영향도 있었다.

단속 권한이 있는 용산구청이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서 소음 특별점검에 나섰으나 효과는 없었다. 이에 소음이 인명 피해의 환경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구청이 선제적인 예방 조치를 시행해 소음 관리에 나섰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원배 초당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사고에서) 소음으로 위기 상황 인지가 어려워지면서 인명 피해가 확산했다"며 "구청에서 소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변 업소에 공지하거나 행정 지도하는 등 선제적인 예방 행정을 해야 했는데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