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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힌남노가 할퀸 고로 다시 끓는다…옛 모습 되찾는 포항 밤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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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항(경북)=김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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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05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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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맞선 K-기업들] 4(끝)-철강 ①

[편집자주] 새해가 밝았지만 경제 상황은 어느때보다 어둡다. 퍼펙트스톰(복합 경제 위기) 앞에 소비, 투자, 생산, 수출 모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던 대한민국이다. 그 선봉에 기업들이 있다. 희망의 2023년, 산업 현장을 찾아 위기 극복의 해법을 모색한다.
포항제철소 2고로 출선장면 /사진=포스코
포항제철소 2고로 출선장면 /사진=포스코
포스코 포항제철소 2고로(용광로)의 덮개가 열렸다. 시뻘건 쇳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30~40미터 떨어진 기자의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매서운 바닷바람도 다시 돌기 시작한 고로의 강렬한 열기를 식히지 못했다.

철의 녹는점은 1538도다. 1500도를 넘나드는 고온의 고로 앞에 방열복·방열화 차림으로 중무장한 작업자가 다가섰다. 쇳물의 불순물을 확인하기 위해 긴 장대를 휘두를 때마다 쇳물이 크게 튀어 오르길 반복했다. 사진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고로는 멈추지 않는다. 쇳물 생산을 멈추는 순간부터 고로가 식어가기 때문이다. 보수를 위해 한시적으로 가동을 멈추는 휴풍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1주일을 넘기질 못한다. 이마저도 세계 최고 수준의 휴풍 기술력을 갖춘 포스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1973년부터 고순도 쇳물을 24시간 만들어 철강 제품을 생산하고 자동차·건설·조선업 부흥에 일조했던 포항제철소가 지난해 9월 처음으로 멈췄다. 태풍 힌남노가 포항 지역을 할퀴면서 집중호우가 내렸고, 냉천이 범람해 제철소 내 주요 공장들이 침수됐기 때문이다.

여의도 면적 3배에 달하는 포항제철소 내에서 냉천과 가장 먼 곳에 고로가 위치했던 점은 천우신조였다. 주요 공장 가동이 중단돼 쇳물 수요가 크게 줄었지만 고로 가동을 멈출 순 없었다. 포스코는 쇳물 생산량을 최소화하며 대응했다. 고로의 안정적인 가동을 위해서라도 복구가 시급했다.

완전 복구까지 1년 넘게 걸릴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지난해 연말부터 포항제철소 전 제품 생산·출하가 재개됐다. 일부 공정의 복구작업도 이달 말께면 끝난다. 침수 이전과 같이 전체 제철소가 제 기능을 찾게 되는 것이다. 복구가 빨라지면서 고로의 생산량도 빠르게 늘었다. 현재 포항제철소 고로의 쇳물 생산량은 힌남노 이전 수준의 95%까지 회복했다.

포항제철소 정상화는 철강업계뿐 아니라 자동차·조선 등 전방산업에도 반가운 소식이다. 선박 건조에 필수적인 후판 생산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 2고로에서 나왔다. 차를 타고 이동하려는데 고로 앞 철도건널목 차단기가 내려왔다. 쇳물을 가득 실은 거대한 항아리 모양의 용선 운반차가 지나가고 있어서다. 고로에서 생산된 쇳물은 이 같은 방식으로 주요 공장으로 보내진다. 2후판 공장도 그중 하나다.

포항제철소 2후판 공장 /사진=포스코
포항제철소 2후판 공장 /사진=포스코

후판(厚板)은 이름 그대로 두껍고 단단한 판재다. 견고함이 중요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전차부대가 연합군보다 높은 전력을 과시할 수 있던 것도 후판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당시 독일은 후판으로 전차를 제작했다. 화포를 맞아도 쉽게 부서지지 않고 전장을 누비며 연합군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2후판 공장도 침수로 상당 기간 가동이 중단됐던 곳이다. 현재는 완벽하게 복구가 이뤄져 정상적인 제품 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공장에 들어서자 때마침 가열로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쇳물을 이용해 만들어진 직육면체 모양의 철 덩어리 '슬래브'가 나오는 소리였다. 두껍고 짧은 슬래브가 롤러 위에 얹힐 때 울리는 사이렌은 후판 생산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롤러 위에 실린 슬라브는 후판이 되기까지 6개 단계를 거치게 된다. 특정 공정을 머무를 때마다 롤러 위에서 전·후진을 반복하면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고객사가 요구하는 적절한 두께·길이로 성형된다. 슬라브의 온도만 600~700도에 이르기 때문에 롤러의 마모를 막기 위해 매 공정마다 거센 물줄기가 뿌려진다. 슬라브에 닿는 물이 하얀 수증기로 기화하는 소리가 공장 안을 채운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두꺼운 쇳물 덩어리가 얇고 긴 판재가 되고 마지막으로 냉각과 후처리 과정을 통해 후판이 된다. 생산된 후판은 조선사에 보내져 선박을 건조하거나 대형 풍력발전기 구조물 제작에 사용된다. 최근 선박 시장의 호황으로 후판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 침수 복구 당시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은 소방펌프, 고압세척기, 발전기 등을 제공하며 빠른 정상화에 힘을 보탰다.

현장에서 만난 포스코 관계자는 "구성원들의 헌신과 고객사·지역사회 등의 도움을 바탕으로 빠른 정상화를 이룰 수 있었다"면서 "18개 압연공장 중 15개 공장이 정상 가동되고 있으며, 비율로 따지면 95% 정도 완료된 상황"이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이달 말까지 전체 제철소 복구를 자신했다. 아직 복구가 진행되고 있는 나머지 공장들도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라고 전해진다.

포항의 상징이던 포항제철소 야경도 과거와 같은 자태를 되찾을 전망이다. 수전변전소가 침수되고 전력공급이 차단된 그 날부터 해안가를 따라 포항제철소를 비추던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아직 켜지지 않고 있다. 완전 정상화가 이뤄지면 그간 밤하늘을 밝힌 조명들도 다시 점등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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