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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작은 역할도 보석으로 만드는 연기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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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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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0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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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사진제공=준필름
이정은, 사진제공=준필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배우도 자신에게 주어진, 어쩌면 그냥 스쳐지나갈지도 모를 기회들을 하나둘 부여잡으면서 지금의 입지로 올라온다. 그 길이 때론 너무 길고 지루해 한숨이 날 정도지만, 그렇게 우직하게 차근차근 하나의 길을 따라온 이들의 연기는 그 눈빛을 한 번 봐도 누구에게나 잊히지 않는 순간을 선사한다.


최근 막을 내린 OCN의 드라마 ‘미씽:그들의 있었다2’(이하 미씽2)에 출연한 배우 이정은도 마찬가지다. 연기를 시작한지는 32년이 지났지만 누구하나 과거의 기억 속에서 그의 모습을 쉽게 찾아내는 이는 없다. 그는 실제로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TV에서 연기를 시작했으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이전 집사 국문광의 연기를 한 것이 2019년이었다. 그 전까지 이정은은 누구의 친구이거나 누구의 엄마 또는 이모, 고모였다.


‘미씽2’는 오랜만에 이정은의 편안한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는 실종된(실제로는 거의 죽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영혼마을 3공단에서 마을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일을 모두 챙겨주는 ‘강선장’ 강은실 역을 맡았다. 보통 사후세계라고 하면 전생의 업이나 한이 남아 비참한 모습들을 떠올리지만 ‘미씽2’ 속의 세계는 모두가 오순도순 엉기는, 마치 따뜻한 느낌의 필터로 보이는 세상과 같이 훈훈했다.


'미씽2', 사진제공=CJ E&M
'미씽2', 사진제공=CJ E&M


그 안에서 이정은은 귀엽고 바지런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마음속의 응어리도 맺힌 인물을 편안하게 소화해냈다.


따지고 보면 요즘 굉장히 바쁜 이정은의 필모그래피는 한 작품씩 다 뜯어봐도 총천연색으로 다채롭다. 지난해부터로 따져도 넷플릭스 ‘소년심판’에서 꼬장꼬장한 원칙주의자 나근희 판사를 연기했고, tvN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청춘의 로망을 아직도 담고 사는 억척스러운 제주 싱글 정은희를 연기했다.


티빙 ‘욘더’의 냉정해 보이는 세이렌, 애플TV플러스 ‘리틀 아메리카 시즌 2’의 이민자 숙자, ‘미씽2’의 강은실까지 그의 연기는 하나의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작품에 따라 다르고, 또 인물에 따라 다르다.


언제는 ‘오 나의 귀신님’의 서빙고 보살이었다가, 또 언제는 ‘미스터 션샤인’의 함안댁으로 눈길은 모았지만 이름이 없는 ‘무명(無名)’이었던 배역들은 조금씩 이름을 얻기 시작했고, 그의 이름 역시 드라마나 영화의 앞부분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되는 데까지 도합 32년이 걸린 셈이다.


'우리들의 블루스', 사진제공=CJ E&M
'우리들의 블루스', 사진제공=CJ E&M


그가 다져오던 필모그래피와 별개로 그의 이야기들도 이정은의 캐릭터를 더욱 공고하게 하는데 이바지했다. 1991년 연출 공부로 연극을 시작했다 도망간 연출자 대신 작품을 떠맡아 제작비를 구했는데, 신하균이나 지진희, 우현 등의 동료 배우들에게 돈을 빌린 후 그 이름들을 품고 다닌 사연, 봉준호 감독의 ‘옥자’ 속 슈퍼돼지의 목소리를 연기하기 위해 거절을 뚫고 돈사를 찾아 돼지의 습성을 연기했던 사연 그리고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제주 사투리를 완벽하게 해내고자 1년 전부터 제주에 터를 잡고 겸사겸사 쉬기도 하고 시장도 돌아다닌 사연 등이 지금의 이정은, 연기에 대한 진심을 만들었다.


그는 무엇보다 스쳐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쩌면 늘 그렇게 하는 모습 속에서 몇 작품씩이 도드라졌는지도 모른다. ‘오 나의 귀신님’ 서빙고 보살 역은 그의 생활연기 진가를 알렸고 이는 자연스럽게 ‘미스터 션샤인’ 함안댁이나 ‘타인은 지옥이다’ 엄복순, ‘동백꽃 필 무렵’의 조정숙으로 이어졌다.


그의 그런 평범한 매력이, 상황에 따라서는 더욱 극적이고 심지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봉준호 감독이었다. ‘기생충’을 다 본 사람끼리의 이야기지만 어느 정도 극 중 가족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려던 찰나 비오는 이선균의 대저택에서 이정은이 우비를 쓴 채 기이한 표정으로 인터폰을 들여다보는 장면을 본 사람은 그 장면부터 시작된 진짜 이야기를 저릿저릿할 만큼 기억하고 있다.


'기생충', 사진제공=CJ E&M
'기생충', 사진제공=CJ E&M


이렇게 다양한 쓰임새가 필요한 캐릭터에서도 힘을 내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주연으로 그리고 다채로운 캐릭터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모습은 곧 공개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로 또 변주될 예정이다. 여기서는 수간호사를 연기하는데 ‘미씽2’의 강선장보다 더욱 든든하면서, ‘소년심판’ 나근희 판사처럼 원칙을 지키고, ‘우리들의 블루스’ 정은희처럼 속정이 깊은 인물이 될 예정이다. 이제 어떤 작품에서 신뢰를 주는 연기자의 이름으로 이정은의 이름을 빼놓기는 쉽지 않아졌다.


물론 그가 연기에서 보이는 신뢰도 신뢰지만, 그 자체의 역사가 진정성과 노력, 열정의 이름이기에 우리는 다시 한 번 그에게 열연을 부탁할 수 있는 셈이다. ‘미씽2’에서도 이정은은 많은 후배 연기자들에게 본보기가 되며 신예들의 열정에 불을 지피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대기만성(大器晩成)’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 이정은의 32년을 어쩌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다. 그가 포기하지 않았기에 이렇게 누릴 수 있는 그의 연기 성찬은 우리가 앞으로 그를 포기하지 않고 찾아주면서 더욱 값지게 이어질 기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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