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을 당장 해야 하는 이유[광화문]

농어민연금이 1995년 도입되면서 아버지도 국민연금 대상자가 됐다. 첫해 소득의 3%를 갹출했다. 아버지는 전답 여남은 마지기가 터전이었다. 소득이 최저 수준으로 추산돼 연금 납입금이 몇천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50대에 가입해 10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 불입하고 20년 넘게 연금을 받고 있다. 현재는 매달 18만4000원이 나온다. 그동안 받은 연금을 합하면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기여금의 수십 배는 될 것이다.

연금 개혁이 지급 개시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단계적으로 늦추고(1998년) 소득대체율을 50%에서 40%까지 낮추는(2007년) 방향으로 이뤄지면서 지금의 나는 아버지 세대보다 연금 받는 게 불리해졌다. 그렇다고 내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버지가 연금 기여금을 덜 내서 아낀 돈으로 부자가 되진 못했다. 그 돈은 아마 내 대학 등록금이나 기숙사비로 사용됐을 것이다. 지금 부모님이 받는 국민연금은 50만원 상당의 기초연금과 함께 늙은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나의 어깨를 가볍게 한다. 직접적인 수혜는 아버지 세대의 것이지만, 그 수혜의 상당분은 결국 내 세대로 귀착되니 세대간 형평성을 논할 바가 못 된다.


저출산 고령화가 극심해지면서 연금 개혁이 발등의 불이 됐다. 정치권이 미적대는 사이 국민연금이 바닥날 시점은 재깍재깍 다가오고 있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지금보다 더 내고 덜 받게 한다는 모범답안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답안지를 작성해 제출하는 것을 주저한다. 경제학교과서에 나오는 말로 설명하자면 '누구에게도 손해가 가지 않게 하면서 한 사람 이상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변화'를 뜻하는 '파레토 개선'이 불가능하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전 연령층이 달가워하지 않는데, 특히 청년세대의 불만이 크다.

하지만 연금개혁은 좀 더 긴 호흡으로 보면 '부담'에 초점을 둘 사안이 아니다. 세대간 부담의 귀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국민연금은 아버지가 더 수령한다면 결국 나의 부양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내가 기여금을 덜 내게 되면 결국 아이 학원비에 그 돈을 보탤 것이다. 세대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연결돼 있다. 세대간 수평적 연대를 중시하는 정치적 목소리가 많지만, 한 가족의 구성원인 우리는 사실 수직적 연대가 훨씬 자연스럽다.

중점을 둬야 할 것은 사회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우리 경제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이라는 준조세는 조세와 마찬가지로 부담이 커지면 노동할 동기를 떨어뜨린다. 월급이 3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줄어든다고 하면 일하려는 의욕도 줄어드는 게 세상의 이치다. 그러면 우리경제의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다. 그렇게 세금이나 부담금 때문에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감소해 없어지는 사회 후생을 경제학에서는 '사중손실(deadweight loss·초과부담)'이라고 한다. 강제가입인 국민연금도 세금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선택에 개입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비효율을 동반한다.

세금 부과에 따른 사중손실을 설명하는 그래프./ 출처=위키피디아

수요공급곡선을 그려보면 사중손실은 삼각형 면적으로 표시된다. 중요한 것은 세율이 2배가 되면 이 삼각형의 밑변과 높이가 2배가 돼 결국 '사중손실'은 2배가 아닌 4배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금이나 부담금은 한 번에 급격히 늘리는 것보다는 조금씩 나눠서 걷어야 사회적 후생 손실이 최소화한다.

연금개혁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30년 뒤 연금지급액 30만원이 필요하다면 30년째 되는 해에 30만원을 거두는 것보다 매년 1만원씩 거두는 것이 경제적 효율성을 덜 해친다는 얘기다. 연금이 고갈됐을 때 세금을 더 거둬 지급하면 된다는 연금개혁 반대론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이기도 하다. 세금이나 연금기여금이나 국민의 부담이긴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그동안 연금개혁을 게을리했던 역대 정부가 우리 경제의 잠재력을 얼마나 낭비되게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차피 더 거둬야 하는 거라면, 이번 정부에서만큼은 속도감있게 연금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