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기사에 "사표 쓰라"며 열쇠 회수…대법 "해고 의사로 봐야"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버스 기사에게서 회사 버스 키를 회수하고 '사표를 쓰라'는 취지로 여러 차례 권고한 경우 해고라고 볼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는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2020년 1월 전세버스 회사에 취직해 한 회사 통근버스 운행을 담당했다. 입사 후 A씨는 같은 해 1월30일, 2월11일 두 차례 무단결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회사의 관리팀장은 A씨의 근태를 지적하며 말다툼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사표를 써라' 등 발언이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날 오전에는 A씨에게서 버스 키를 회수했다.

A씨는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았고 이후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2020년 5월1일 전남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 신청을 했다.


그러나 전남노동위원회는 "해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A씨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자 "재심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회사 측은 "A씨를 해고한 적이 없다"며 그해 5월18일 A씨에게 보낸 '무단결근에 따른 정상 근무 독촉 통보'를 근거로 들었다.

회사 측은 해당 통보에서 "관리팀장과 관리 상무가 귀하(A씨)의 근무태도를 질책하는 말투로 출근하지 말라고 한 것이지만 성실 근무를 해달라는 의미였지 해고의 의미가 아니었다"며 "정식 해고를 회사가 서면으로 표시하거나 대표가 승낙한 사실이 없다"며 A씨 해고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은 회사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사표 쓰라'는 우발적 표현이며 A씨가 사직서를 제출한 적도 없고, 관리팀장에게 A씨를 해고할 권한도 없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관리팀장이 회사의 관리 상무를 대동한 상태에서 A씨에게 버스 열쇠의 반납을 요구하고 회수한 것은 근로자의 노무를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평가할 수 있다"며 "그와 동시에 사표를 쓰고 나가라는 말을 반복한 것은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하고자 하는 의사표시를 A씨에게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관리팀장이 A씨를 해고할 권한이 없었더라도 당시 관리 상무를 대동했으므로 적어도 관리 상무의 일반적 지위·권한에 해고 권한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밝혔다.

또 "A씨가 3개월 동안 출근하지 않았는데 아무런 출근 독려도 하지 않다가 A씨가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한 직후 갑자기 정상 근무 독촉 통보를 한 점을 고려하면 이미 회사 대표가 묵시적으로 해고를 승인했거나 적어도 추인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다시 2심을 열고 A씨를 해고한 게 맞는지 다시 심리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