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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들이 곧 밥줄…"1000만원 줘도 면허 반납 못해" 노인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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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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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운전대 못 놓는 노인들(上)

[편집자주] 전북 순창에서 70대 운전자가 조작 미숙으로 큰 사고를 냈다. 사상자가 20명이나 된다. 최근 이 같은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가 늘어나고 있다. 대책 마련에 분주한 당국과 산업계, 당사자인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민연금 40만원 받고 못 살아"…핸들 못 놓는 어르신들 속사정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고령 운전자와 이들이 일으키는 교통사고가 빠른 속도로 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일 전북 순창군 구림면에서 1톤 트럭이 주민을 덮쳐 사상자 20명이 발생한 사고도 70대 고령 운전자의 조작 미숙이 사고 원인으로 파악됐다.

14일 경찰청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운전면허를 보유 중인 만 65세 이상 고령자의 수는 약 402만명이다. 2017년(280만명)과 비교하면 5년 사이 43% 증가한 수치다. 영업용 차량을 운전하는 고령 운전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일반화물차주 운전자 평균 나이는 53.7세다. 60대는 25.8%로 50대 이상 연령이 전체의 70.5%를 차지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총 16만4452명의 개인택시 기사 중 70대는 3만3283명, 80대는 1323명이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발생한 전체 교통사고 103만9748건 중 61세 이상 운전자가 일으킨 사고는 24만3947건으로 전체의 23.4%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1~60세가 낸 교통사고는 2017년 16만513건에서 2021년 14만2798건으로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61세 이상이 일으킨 사고는 4만3088건에서 2021년 5만419건으로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고령 운전자들의 사고를 줄이기 위해 일정 나이가 지나면 면허를 반납하는 제도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 고령 운전자들은 "나이를 기준으로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건강 관리 정도에 따라 충분히 안전하게 운전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일 오후 1시20분쯤 서울 양천구 서부 터미널에서 택배 화물차 기사 박정혁씨(가명·73)가 화물차에 탑승하고 있다./사진=김지은 기자
지난 10일 오후 1시20분쯤 서울 양천구 서부 터미널에서 택배 화물차 기사 박정혁씨(가명·73)가 화물차에 탑승하고 있다./사진=김지은 기자

화물차 기사 박정혁씨(가명·73)는 "운전자 스스로 자신의 몸 상태를 안다"며 "청력, 시력에 문제가 생겨 운전에 피해를 줄 정도면 알아서 운전대를 놓는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 86세 운전자를 본 적도 있다"며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계속 운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택시기사 윤자문씨(84)는 80대의 나이에도 매일 팔굽혀펴기 100개, 5~8㎞ 걷기 등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건강을 유지해 운전대를 오랫동안 잡기 위해서다. 택시기사 한경희씨(73)는는 "자기 관리를 어느 정도 했는지가 중요하다"며 "인지 능력을 유지하려고 등산을 비롯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영업용 차량을 운전하는 고령자들은 일자리 선택지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개인 택시기사 전모씨(76)는 "택시를 관두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내가 인터넷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이 나이에 새로운 직업을 알아보는 것도 혼자서는 힘들다"고 말했다.

한경희씨는 "매달 받는 국민연금 30~40만원으로 공과금 내면 남는 게 없다. 자녀들한테도 부담 주고 싶지 않다"며 "운전을 관두면 무슨 일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윤자문씨도 "40년 넘게 택시기사 했는데 이 일마저 안 하면 인생 끝나는 기분이 들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 나이에 다른 일을 뭘 하겠냐"며 "집에만 있으면 적적할 거고 다른 일을 어디서 알아보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루에 6~7시간씩 일하는 윤씨의 하루 수입은 8만원 정도다. 국민연금은 매달 18만원쯤 받고 있다.

일을 통해 얻는 성취감을 포기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기업 출퇴근 버스를 운행하는 성민국씨(가명·74)는 "운전을 하면서 건강과 성취감을 얻는다"고 했다. 박정혁씨도 "보통 60살이 넘어가면 할 직업이 없다"며 "사람이 일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차 없인 밭일도 병원도 못가"…도시사람은 모르는 노인 운전의 현실



14일 오전 경기 평택시 포승읍 희곡1리 주민 김재섭씨(82.왼쪽)와 이대헌씨(80)가 운전면허증을 보여주고 있다./사진=정세진 기자
14일 오전 경기 평택시 포승읍 희곡1리 주민 김재섭씨(82.왼쪽)와 이대헌씨(80)가 운전면허증을 보여주고 있다./사진=정세진 기자

"주변에서 자꾸 비료 사러 가자, 농약 사러 가자 하니까 어쩔 수 없잖어."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희곡1리에 사는 이대헌씨(80)는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두고 트럭을 운전할 때가 부쩍 늘었다. 농사물품을 사러 인근 안중읍 시장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 차 타는 시간만 왕복 2시간 가까이 걸리지만 트럭을 운전해 다녀오는 데는 왕복 20여분,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까지 합해도 1시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길바닥에서 보내야 할 시간을 생각하면 운전을 포기할 수 없다.

이씨 외에도 희곡1리 주민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이다. 평택시에서 만 65세 이상 고령운전자를 대상으로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면 10만원 상당의 지역 상품권을 지급한다고 홍보하지만 희곡1리 주민 중 면허를 반납한 이는 한사람도 없다. 14일 희곡1리에서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은 고령운전자 면허 반납제도를 두고 "농촌에서는 불가능한 제도"라고 입을 모았다.

고령 운전자 사고 문제의 해법으로 정부가 면허반납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좀더 세심한 안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별, 직종별로 다양한 여건에 따라 대책을 마련해야 고령 운전자 사고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현재 시행 중인 고령운전자 면허 반납 제도에서 자진반납률은 매년 2% 수준에 그친다. 농·어촌 지역에서는 반납률이 더 떨어진다.

농·어촌 지역에서 고령자의 운전면허 반납률이 특히 낮은 이유는 "차 없인 사실상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꼽힌다. 농사를 짓자면 하루에도 수차례 논밭을 오가야 하고 비료나 퇴비가 떨어지면 읍내 시장에 다녀와야 한다. 1포대에 20㎏인 비료를 사 들고 버스나 택시를 타기도 어렵다.

14일 오전 경기 평택시 포승읍 희곡 1리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있다. 이마을에 면허를 자진반납한 운전자는 없다. /사진=정세진 기자
14일 오전 경기 평택시 포승읍 희곡 1리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있다. 이마을에 면허를 자진반납한 운전자는 없다. /사진=정세진 기자

이대헌씨는 "밭에 가면 고구마나 감자라도 캐서 와야 하는데 버스를 타고 어떻게 물건을 옮기겠냐"며 "논까지 트랙터나 경운기를 실어 옮길 때도 화물차가 필요한데 면허를 반납하라는 것은 농사를 짓지 말라는 것이나 같다"고 말했다.

황건무 희곡1리 이장도 "요즘이 지게로 짊어지고 나르던 시대도 아니고 마을에서도 60대 후반이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데 차 없이 비료, 농약, 퇴비를 옮길 수 있냐"고 말했다. 희곡1리에서 젊은 축에 드는 박인숙씨(66)는 "1000만원을 준다고 해도 면허가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으니 반납을 못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을 가기도 쉽지 않다. 이재하씨(83)는 "94세인 작은어머니를 모시고 버스를 타려면 15분 걸어 나가야 하는데 세번은 쉬어 가셔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의 작은어머니 서정자씨(94)는 "조금만 걸어도 쉬었다 가야 한다"며 "(인근 안중읍에 위치한) 병원이 멀어도 너무 멀다"고 말했다. 차군자씨(77)는 "시골에선 차가 없으면 친구가 죽어도 장례식에 못 간다"며 "나이가 들면 무릎이 아파 버스 타러 가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지자체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해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운전'을 대체하기는 충분치 않다. 평택시의 경우 마을회관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거리가 400m 이내에 있는 마을 거주자를 대상으로 공공형 천원택시를 운행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9시~오후 5시 사이에 호출방식으로 1인당 편도 2회(왕복 1회)에 한해 이용할 수 있다. 택시요금은 1회당 편도 1000원이다. 현재까지 리단위 마을 56개가 천원택시의 혜택을 본다.

평택시 관계자는 "거리 기준을 더 낮추면 해당하는 마을의 이동수요를 모두 감당할 수 없어 콜을 불러도 택시가 안 온다는 민원을 야기하고 마을 버스 운행에 차질을 준다"며 "현재 천원택시 혜택을 못 받는 마을은 마을버스가 하루에 12번 정도 들어가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운전면허를 반납하지 않겠다고 해서 고령운전자들이 운전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희곡1리 주민 김모씨는 "점점 더 운전하기가 힘들어 밤에는 운전은 안 하려고 한다"며 "평택시내나 서울시내로 나가지도 않고 조심해서 운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주민은 "어쩔 수 없이 운전하는 것이지 나이 들어서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말했다.

최문혁씨(70)는 "농사를 짓거나 농촌에 거주하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속도를 제한한 차량을 운행하도록 하는 등 조건부 면허를 도입해야 한다"며 "무조건 면허를 반납하라고 하면 손발이 묶인다"고 밝혔다.



진단서에 사고경력까지 따진다...세계는 지금 '고령 운전' 규제중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령자의 운전할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도로 위 안전을 담보할 방안을 찾는 것은 한국의 문제 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숙제다. 고령 운전자로 분류하는 나이 기준은 65세부터 79세까지 국가별로 다르지만, 운전면허 갱신 주기에 맞춰 신체 기능을 따져보거나 운전 실기평가 등 별도 규제를 마련해 적용하는 흐름은 비슷하다.

◇ 건강진단서·사고경력 따지는 미국

미국은 주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대부분 고령 운전자 안전 규제(Senior Drivers regulation)가 있다. 의사가 작성한 건강 진술서를 제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운전할 수 있는 신체 상태라는 사실이 명시돼야 한다. 신체 일부분이 불편하거나 손실됐는지, 기억력이나 유연성에 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면허증 갱신 전 1년간 발작 이력이나 장애 이력 등도 확인한다.

사고경력도 따져본다. 65세 운전자가 6~9개월 동안 3번 이상 교통사고를 낼 경우 서면과 면접 평가를 받아야 한다. DMV(차량관리국)는 고령 운전자의 신체 상황에 따라 면허증에 운전 가능한 별도의 조건을 표기한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 운전 제한 △차량에 신체기능 일부를 보완해줄 특수장치 △추가 사이드미러 부착 등을 명시하는 것이다.

텍사스주는 79세 이상 운전자부터 면허증 갱신 여부를 별도로 심사한다. 시력 검사와 병력 내용, 건강 상태 등을 전문가 진술을 토대로 주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이 심사를 통과하면 79~84세까지는 최대 6년짜리 면허증을 받을 수 있다. 85세부터는 2년마다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일리노이주의 경우 75~80세 사이의 운전자는 4년마다, 81~86세는 2년마다, 87세 이상은 매년 운전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해당 운전자는 도로주행시험을 의무적으로 받고, 평가에 따라 일반면허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운전 시간대나 지역이 제한된 한정면허로 교체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71세부터 3년마다 면허 갱신하는 일본

일찌감치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지난 2004년부터 고령자 운전 관련 다양한 대책에 골몰했다. 현재 70세 이상 운전자부터는 고령자 강습을 수강해야 하고, 75세 이상은 인지기능 검사를 받아야 한다. 71세 이상은 면허 갱신 기간을 3년으로 단축했다.

지난해부터는 비상제동 장치 등이 탑재된 차량(서포트카)용 한정면허도 신설했다. 최근 3년간 도로교통법 위반 경력을 확인해 '인지기능 저하 우려' 항목이 포함된 사람은 별도의 운전기능 검사를 받도록 하고 이를 통과해야 면허증을 갱신해주는 방식으로 바꿨다. 치매 우려가 있는 고령 운전자의 면허를 취소하거나 정지하는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 의료진 평가 도입하려는 유럽연합(EU)

EU는 2016년부터 고령 운전자와 관련한 보고서를 통해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회원국가들이 국내법과 제도에 맞게 적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오는 2050년엔 65세 이상 인구가 1억4700만명으로 EU 전체의 26%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고 도로안전규칙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현재는 회원국 간 고령 운전자의 면허 중지나 운전 제한 등을 명시한 통일된 협정 체결이 제안된 상태다. 의료진의 평가와 운전기능 시험 도입, 별도의 노인 운전자 대상 교육프로그램 강화 등에 대한 내용이 핵심이다. 또 경찰이 고위험 운전자를 식별하고, 운전능력 테스트할 수 있는 방식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 1~2년마다 운전 적합성 평가하는 호주·뉴질랜드

두 나라 모두 75세 이상 운전자에 대한 별도의 검사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는 75세 이상부터 매년 운전 적합성에 대한 의료 평가 및 운전 실기평가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운전 실기평가를 받지 않은 고령자의 경우 장거리 운전이 제한되고 지역 내에서만 운전 가능한 수정면허를 발급받을 수도 있다.

뉴질랜드는 75세부터 2년 주기로 면허를 갱신받도록 했다. 이 때 의사의 운전면허용 진단서를 첨부해야 한다. 의사 판단에 따라 의학적으로 운전에 문제가 없더라도 안전 운전 능력을 담보하지 못할 경우 도로안전시험(On-road safety test) 통과 조건을 명시하기도 한다. 특정한 조건이 제시된 진단서를 발급받은 고령자에게는 한정면허가 발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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