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45일 끌었나…경제성·원칙 두토끼 놓친 전기요금 당정

머니투데이

김훈남 기자

정부와 여당이 15일 전기·가스요금의 소폭 인상을 결정했다. 지난 3월말 공공요금 인상을 잠정보류한 지 45일만이다.

당정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고통분담이 필요하다"며 공공요금 인상을 미뤘는데 한달반 동안 양대 에너지공기업의 적자를 방치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국제 에너지 가격 등 생산 원가를 고려해 정부가 결정하도록 한 요금 결정 구조에 정치적 해법을 들이대며 공공요금의 수요조절 기능을 훼손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정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협의회를 열고 16일부터 적용하는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각각 ㎾h(킬로와트시)당 8원, MJ(메가줄)당 1.04원 올리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올해 전기요금은 1분기 인상분을 합쳐 ㎾h 21.1원, MJ 가스요금은 1.04원 올랐다. 지난해 한전과 가스공사가 국회에 제출한 경영정상화를 위한 요금인상분(51.6원·10.4원)에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다.

정부는 지난 3월말 2분기 적용 전기·가스요금을 결정할 방침이었으나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자구책 등 고통분담이 필요하다는 여당 지적에 전기요금 결정을 보류했다. 지난해 말 1분기 전기요금을 ㎾h당 13.1원 인상하며 예고했던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45일 지연된 셈이다.

공공요금 인상 지연으로 2분기의 절반이 기존 소비자 가격이 적용됐다. 전기요금 기준 도매가인 SMP(계통한계가격)와 소매가격의 차이는 15원 가량이다. 한전은 한 달 반동안 ㎾h 판매당 15원의 적자를 쌓은 셈이다. ㎾h당 13.1원 인상 이후인 1분기에만 한전이 6조2000억원 가까운 적자를 낸 점을 고려하면 이미 조단위 적자가 추가로 쌓였다는 추정이 나온다.

가스요금은 지난해 10월 MJ당 19.69원으로 1년새 5.47원 인상된 이후 이날까지 동결이었다. 소비자 요금 동결로 인한 올해 1분기 가스공사 미수금은 직전분기대비 3조원 증가했다. 겨울철이 지난 3월 이후 난방수요가 줄어든 데다 원가에 직접 영향을 주는 LNG(액화천연가스) 가격이 지난해 12월 톤(t)당 1255.24달러에서 올해 3월 916.15달러로 하락한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요금 결정 과정에서의 잡음도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행 전기사업법과 도시가스사업법상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의 결정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업무다. 산업부가 한전과 가스공사의 요청과 심의를 거친 뒤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통해 결정하는 정부의 업무다.

이번 전기·가스요금의 주도권을 쥔 것은 여당인 국민의힘이었다. 전기·가스요금 결정을 위한 당정협의회는 지난 3월31일 요금 인상을 보류하고 한전과 가스공사에 자구책을 요구했다.

인상된 전기·난방 고지서를 받아들 국민이 납득할 만한 고통분담이 있어야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전과 가스공사는 2026년까지 부동산과 자산매각을 통해 각각 14조원씩 총 28조원 규모 자금을 마련하는 자구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정부, 에너지 공기업 사이 온도차는 40일 넘게 좁혀지지 않았다. 추가 자구안 요구가 집중된 것도 한전이었다. 가스공사의 미수금에 비해 한전의 지난해 적자규모가 큰 탓도 있었지만 관가와 업계 안팎에선 정승일 현 사장이 문재인정부 시절 임명된 점도 여당 공세의 배경으로 들었다.

당정 논의를 이끈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여러차례 공개적으로 "부실·방만 경영의 책임을 져야한다"며 정승일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결국 한전이 자회사를 포함한 총 25조원대 자구책 제시하고 임기를 1년여 남긴 정승일 사장이 사의를 밝히고 나서야 이번 요금 인상을 결정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과 교수는 "3분기 여름철 수요증가, 4분기 총선 준비 등을 고려하면 향후 전기요금 조정 가능성이 낮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h당 8원을 올린 것은 너무 적은 금액"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대부분 국가가 별도의 위원회를 통해 공공요금을 결정하고 주요국 가운데 이처럼 정치가 직접 요금결정에 개입하는 사례는 없다"며 "부족한 전기요금 인상과 설비투자 축소로 올 여름철 국지적 정전이 발생하면 정권으로서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