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스요금 45일만에 '찔끔'…임기 내 공기업정상화 '안갯속'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3.5.1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부가 이달 16일부터 적용하는 2분기 전기요금을 ㎾h(킬로와트시)당 8원 인상했다. 가스요금은 MJ(메가줄)당 1.04원 올려 이로 인한 가구의 공공요금 부담은 한달에 7000원 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이날 당정의 결정으로 지난달 3월31일 인상 보류 이후 45일간 지연됐던 2분기 전기·가스요금 논의가 마무리됐다. 요금을 지나치게 소폭을 올린 데다 3분기 여름철 수요증가, 4분기 총선 준비 등으로 향후 공공요금 조정가능성이 낮은 만큼 정부가 목표로 내걸었던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양대 에너지공기업 경영정상화에 '적신호'가 켜졌다.


당정, 45일만에 2분기 전기·가스요금 결정…취약계층 지원 확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2분기 전기·가스요금 조정안 및 취약계층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16일부터 적용하는 전기요금을 ㎾h당 8원 인상한다고 밝혔다. 가스요금은 MJ당 1.04원 인상했다. 정부는 이날 발표에 앞서 여당인 국민의힘과 당정협의회를 열고 이같은 전기요금 인상분을 결정했다.

앞서 정부는 올해 3월말 2분기부터 적용하는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인상폭을 결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가스요금 인상분이 겨울철 난방고지서에 반영된 '난방비 폭탄 대란'이 올해 초 발생하자 공공요금 결정을 잠정보류했다. 대신 전기·가스 공급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자구책을 요구했고, 정승일 한전 사장이 임기 만료 1년을 앞두고 자진 사의를 밝히면서 공공요금 인상을 결정했다.

이 장관은 "에너지공기업의 재무여건 악화가 지속될 경우 안정적인 전력 구매 및 가스 도입에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한전과 가스공사는 위기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간부직원 임금인상분 반납과 서울소재 핵심자산 매각 등 재정건전화 방안을 포함한 고강도 자구계획안을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두 에너지공기업의 적자구조와 국제에너지 가격을 고려할 때 자구책과 무관하게 요금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이 장관의 설명이다.


이번 전기·가스요금 조정으로 인한 가계부담은 한달 4인 가구기준 7400원 가량이 될 전망이다. 한전과 가스공사에 따르면 4인 가구 월평균 사용량 기준 전기요금은 3020원, 가스요금은 4431원 증가한다. 대신 △장애인 △국가(상이1∼3급)·독립유공자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3자녀 이상 대가족·출산가구 등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요금 인상분 적용을 1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농사용 전기요금에 대해서도 1분기와 마찬가지로 인상분을 3년에 걸쳐 분할적용하고 에너지바우처와 캐시백 확대등을 통해 요금인상에 따른 가계 부담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45일간 늦은 요금인상…한전·가스공사엔 재무부담을, 정부엔 '정책목표 상실' 상처 남겼다 당정이 45일동안 2분기 전기·가스요금 결정을 미루면서 양대 에너지공기업의 적자를 방치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공공요금 인상 지연으로 2분기의 절반이 기존 소비자 가격이 적용됐는데 전기 도매가인 SMP(계통한계가격)와 소매가격의 차이는 15원가량이다. ㎾h당 13.1원 인상 이후인 1분기에만 한전이 6조2000억원 가까운 적자를 낸 점을 고려하면 이미 조단위 적자가 추가로 쌓였다는 추정이 나온다. 가스요금은 지난해 10월 MJ당 19.69원으로 1년새 5.47원 인상된 이후 이날까지 동결이었다. 소비자 요금 동결로 인한 올해 1분기 가스공사 미수금은 직전분기대비 3조원 증가했다.

윤석열정부의 임기 내 양대 에너지공기업의 경영정상화 목표 달성도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말 '2023년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 현 정부 임기인 2026년까지 한전과 가스공사의 누적 적자·미수금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상고하저'(上高下低)식 요금인상을 단행해 하반기 에너지 소비 감소를 이끌겠다는 복안이었다. 지난해 자본시장 부담요인이었던 한전채·가스공사채 발행도 대폭 축소하겠단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기·가스요금 인상으로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구조가 개선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요금 인상 이후 한전의 소비자 판매가격은 ㎾h당 160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기준 SMP가 164.86원인 점을 고려하면 전력 도매가가 떨어지지 않는 한 한전의 적자는 불어날 수밖에 없다. 가스공사 역시 2026년 미수금 해소를 위해 올해에만 MJ당 10.4원 요금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2분기 절반이 지나서 겨우 필요 인상분의 10분의 1을 올리는 데 그쳤다.

하반기 추가 요금인상도 불투명하다. 3분기 본격적인 여름철이 시작되는 데다 일정 사용량을 넘기면 요금단가가 오르는 '누진제'의 특성을 고려하면 3분기 요금 인상 시 가계 부담이 급증한다. 사실상 '22대 국회의원 총선거' 준비에 돌입하는 4분기에 공공요금 인상을 만지작거리기 쉽지 않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과 교수는 "3분기 여름철 수요증가, 4분기 총선 준비 등을 고려하면 향후 전기요금 조정 가능성이 낮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h당 8원을 올린 것은 너무 적은 금액"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대부분 국가가 별도의 위원회를 통해 공공요금을 결정하고 주요국 가운데 이처럼 정치가 직접 요금결정에 개입하는 사례는 없다"며 "부족한 전기요금 인상과 설비투자 축소로 올 여름철 국지적 정전이 발생하면 정권으로서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이만희, 한무경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3.5.1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