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관심 갖는 소아과 의사들…"살길 찾아아죠"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3월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던 중 생각에 잠겨 있다. 임 회장은 이날 "동네 소아청소년과 의원들은 직원 두 명의 월급을 못 줘서 한 명을 내보내다가 한 명 남은 직원의 월급마저도 못 줘서 결국 지난 5년 간 662개가 폐업하고 있는 상황이다"면서 "지금 상태로는 병원을 더 이상 운영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2023.3.2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소아청소년과 부족에 '오픈런' 현상까지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800여 명의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모여 다른 진료과목으로의 전환·겸업 방안을 모색하는 장이 마련됐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11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소아청소년과 탈출(노키즈존)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를 열었다. 소아청소년과를 포기하거나 다른 진료를 시도하려는 회원들에게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이날 행사는 고지혈증부터 △보툴리눔 톡신(보톡스) △비만·당뇨병 △성인 천식 △국내 의료 서비스의 해외 진출 전략 △하지정맥류 등 소아청소년과 외 진료영역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강의 내용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모여 해당 과 탈출 길을 모색하는 모순적 상황은 전방위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아청소년과의 현실이 배경이다. 저출산 현상 속 턱없이 낮은 수가와 의료사고 및 배상 등 의료진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보호장치 부재, 보호자에 대한 감정 노동 등이 핵심이다. 의사회에 따르면 전국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90%가량이 1년 이내 문을 닫거나 진료과목을 바꿀 예정이다. 의료진들은 한계에 다다른 경영난을 이유로 꼽는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현재 소아청소년과의 유일한 수입원은 진료비인데 30년째 동결된 수준이고, 내년에 210원 오른다고 한다. 운영될 수가 없다. 지난 10년간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수입이 25%나 줄었다"며 "소아청소년과에 미래가 사라지는데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최근 기상 악화로 괌에 고립됐던 한국 관광객들은 현지에서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받을 때 1000달러(약 129만원)를 지급해야 했다. 1만2000원 수준인 국내와 약 100배 격차다. 동남아 국가와 비교해도 10%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에 대다수 소아청소년과의원이 수익 보전을 위해 성인을 대상으로 한 진료 비율을 높이는 고육책을 펼치고 있다.

수익성 악화 누적은 병원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소아청소년과 병·의원 617곳이 개업했고, 662곳이 폐업했다. 올 1분기 말 기준 전국 의원 수는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2019년 4분기 3만2491개 대비 8.4% 늘었지만, 소아청소년과 만은 2227개에서 2147개로 3.6% 줄었다.

의료진 기피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상반기 61개 대학병원 레지던트 모집 결과, 필수진료과목 가운데 전공의 부족이 가장 심각한 과는 소아청소년과로 모집정원의 20%만 충원됐다.

이날 행사에 대한 의료진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지난 4월 28일부터 참여 신청을 받은 지 이틀 만에 350명이 등록한 뒤, 일주일이 지난 지 않아 500명을 넘어섰다. 이날 행사에 사전 등록한 회원들은 719명이다. 당일 현장 등록한 인원들을 합치면 800여 명이 몰린 것으로 추산된다. 의사회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회원 3200여 명 가운데 4분의 1가량이 주말임에도 현장을 찾은 것이다.

이날 학술대회에 참석한 수도권 소재 개원의 A씨는 "제약사들조차 수익성 때문에 생산을 중단한 급여 소아 약이 많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없어 소아 환자를 아예 받지 않는 대학병원들도 있다"며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아청소년과 운영 유지를 위해 행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