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 당한 게 아니다…'전랑외교' 중국, 보복의 역사

시진핑

중국 늑대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소위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의 본 모습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의 3연임 이후 중국의 전랑외교는 더욱 거칠어졌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도발적 발언을 둘러싸고 한중 정부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자 일각에선 2016년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벌인 대대적인 경제 보복이 재현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나온다. 시진핑 체제가 들어선 이후 중국은 특정국과의 갈등 국면이 벌어질 경우 외교적 수사에 의존한 입씨름 정도를 넘어 실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무력 시위와 경제보복을 단행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14일 외교당국과 외신 등에 따르면 전날 중국 외교부는 싱하이밍 대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치' 요구를 거부했다. 싱 대사는 지난 8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관저로 초청해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며 한국에 경고성 발언을 한 바 있다. 해당 발언은 결국 한·중 양국 대사의 '맞불 초치'로 번졌고 한·중 사이에선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중국 내부에선 한국을 향한 경제보복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관변 논객으로 활동하는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은 이달 1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한국은 중국 관련 문제에서 '제2의 호주'가 된 듯한데 정작 호주는 대중국 관계를 빠르게 개선하고 있다"고 썼다. 사실상 한국을 상대로 호주에게 가했던 것과 같은 경제보복을 위협한 것이다.

이처럼 외교적 갈등을 거칠게 다루는 중국의 방식을 외교가에선 '전랑외교'라 부른다. 늑대처럼 힘을 과시하며 주변국을 압박한다는 뜻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특수부대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특수부대 전랑'에서 유래했다. 외교당국자, 관변언론인들의 거친 외교적 수사를 특징으로 한다. 여기에 단순히 공격적인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군사적·경제적 압박과 보복에 나선다는 점에서 중국의 전랑외교는 사실상 구시대적 패권주의 행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전랑외교는 수년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은 특히 세계 1위 무역 강국이라는 이점을 활용해 상품에 대한 수출입 규제를 무기로 삼아 전횡을 일삼고 있다. 여기에 사회주의 특성상 집단적 통제가 용이한 만큼 여행제한과 함께 중국 내 불매운동도 주요 보복 수단이다.

사진 한 컷 추가 배치된 사드 7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골프장 사드기지로 사드 발사대 4기가 반입됐다. 이날 성주 주민과 단체들의 저지속에서 추가 배치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지난 3월에 들어온 발사대 2기가 함께 6개월 만에 총 6개 발사대, 1개 포대가 완성됐다.2017.9.7/뉴스1 /사진=뉴스1

2016년 주한미군 사드 배치 논란으로 중국 정부가 자국 내 중국인들에게 대한민국에서 제작한 콘텐츠 또는 한국인 연예인이 출연하는 광고 등의 송출을 금지하도록 한 한한령(限韓令)이 대표적인 중국의 경제보복 사례다. 한한령 초반엔 CF(광고)나 영화, 한중 합작 드라마에 나오던 한국인 모델 및 연예인들을 하차시키거나 한국 작품의 수입금지 조치까지 이뤄졌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국가안보를 위해 사드 성주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은 중국 당국의 주요 표적이 됐다. 중국 선양시와 청두에 건축하고 있었던 롯데월드 공사가 압력에 의해 중단됐고 중국 내 롯데마트 55개 점포가 무더기로 영업 정지 처분을 받았으며 롯데 계열 제품들은 중국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2010년 9월엔 일본을 상대로 한 희토류 수출을 막아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힌 전력도 있다. 당시 중국은 분쟁 지역인 센카쿠열도 인근에서 일본이 자국 순시선을 들이받았다는 이유로 중국인 선장과 선원 등 15명을 억류하자, 첨단제품에 주로 사용되는 희토류 수출 제한에 나섰다. 직접적으로 수출을 중단하지는 않았지만 통관절차 지연 등의 수단을 총동원했다. 희토류 공급이 끊기자 일본은 단 3일 만에 구속하고 있던 중국인 어부를 풀어줬다.

같은 해 10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중국의 반체제 지식인 류샤오보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자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중단했다. 당시 중국 연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했던 노르웨이산 연어는 중국인의 식탁에서 거의 자취를 감출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중국의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 중단은 2016년까지 이어졌다.

호주도 중국의 경제보복의 타깃이었다. 2020년 말 당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코로나19 기원을 조사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하자 중국은 호주산 석탄과 쇠고기, 와인 등 10여개 품목의 수입을 막았다. 관변매체인 환구시보는 당시 호주를 '신발 밑에 붙은 씹던 껌'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세계 2위 석탄 수출 대국인 호주는 당시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25%에 달할 정도로 높았다.

한중관계 경색이 장기화할 것에 대비해 중국의 경제적 보복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국제관계연구실장은 지난달 31일 발표한 '윤석열 정부 출범 1년과 한·중 관계'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미·중 경쟁 심화와 한국의 선택에 따라 '압박' 및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단계별 예상 시나리오와 선제적 대응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현재도 한한령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희토류 등 자국의 독점적 공급망 우위를 활용한 소재들을 활용한 추가적인 경제보복을 가능한 사례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