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기저귀도 못 사, 마통으로 버틴다"…생활고 겪는 전공의 증가

서울시내 은행 대출창구에서 시민이 상담을 받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 일부가 생활고를 호소하고 있다. '무노동·무임금' 원칙에 따라 월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 조치로 병원 재취업까지 막힌 '진퇴양난'의 처지의 전공의가 상당수로 파악된다. 여기에 시중은행이 판매한 의사 전용 대출 상품의 '자격 요건'도 불안해 질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자신의 SNS에 "온라인으로 분유와 기저귀를 신청한 전공의가 100명을 넘었다"고 최근 밝혔다. 병원과 계약을 포기하거나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1만1980명)의 약 1%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그는 며칠 전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전공의를 위해 자비를 털어 분유와 기저귀를 후원하고 있다.


노 전 회장은 SNS를 통해 일부 전공의의 신청 사연을 소개했다. 한 전공의는 "곧 아이가 태어나는데 수입이 없어 마이너스 통장으로 버텨야 한다"며 "실질적인 도움을 줘 감사하다"는 메모를 남겼다. 또 다른 전공의는 "당장 3월부터 외벌이하게 됐는데 작금의 상황이 생겨 가장으로서 심적인 부담과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겼다"며 "은혜를 잊지 않고 후배·동료 의사에게 갚아 나가겠다"고 했다.

박민수(가운데) 보건복지부 차관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집단행동 중앙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22차 회의에 참석해 이상민 장관 발언을 듣고 있다./사진=[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전공의들의 경제적 불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월급은 대부분의 전공의가 정상적으로 지급받았지만 이번 달부터는 병원도 경영난에 직면해 월급을 지급하지 않은 곳이 많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일 "병원은 진료 현장을 벗어나 근로를 제공하지 않은 전공의에게 해당 기간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음을 알린다"는 내용의 공문을 전국 수련병원에 발송하며 '무노동·무임금'을 원칙적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수련병원 외 타병원에 취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진료유지명령과 업무개시명령을 잇달아 내렸다. 이들이 제출한 사직서는 수리되지 않아 전공의 신분이 유지되고 있다. 사직 처리가 안 된 전공의는 전문의 수련 규정에 따라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고, 수련병원 외의 다른 의료기관에 근무하거나 겸직해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길 시 전공의를 고용한 개원의도 형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

의사를 대상으로 한 전용 대출 상품 '닥터론'의 대상자와 한도·금리 소개문./사진=대한병원의사협의회

여기에 은행권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의 불안한 신분을 두고 '닥터론' 만기 시 일반상품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나간 대출의 회수는 사실상 어렵고, 만기 연장 시 '재직 여부'가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닥터론은 의사나 의대생, 전공의(인턴, 레진던트) 대상의 전용 대출 상품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와 최대 4억원에 달하는 높은 한도가 부여돼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의사로서 소속 기관과 소득을 감안하는 상품인데 '출근은 하지 않고 월급도 받지 못하는 상태'의 전공의가 대출 자격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변수"라며 "소속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대출 만기 연장 상황에서 기존 조건으로는 갱신이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