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총수 지정제, 이젠 고쳐야"…계속된 건의에도 정부·국회 '잠잠'

(C) News1 장수영

산업계에서 '대기업집단 및 동일인(이하 총수) 지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달아 나온다. 제도가 시행된 1980년대에 비해 경영환경이 크게 변했는데 규제는 그대로라 기업 성장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정부·국회가 관련 법 개정에 소극적이라 제도 보완은 아직 요원하다.
"핵심기업 중심으로 기업집단 정해야"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9일 홍대식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의뢰해 작성한 '기업의 지배구조 자율성 확보를 위한 공정거래법상 대규모기업집단 규제 개선 방안'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통상적으로 기업집단은 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인 대기업집단을 의미함) 범위 설정 기준이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총수'에서 시작하는 점을 지적했다. 과거 창업주 개인이 순환출자 등을 활용해 기업집단을 운영하며 경영권을 승계했던 폐해를 억제한다는 취지의 기준인데, 자율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강조되는 현재의 경향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자연인을 총수로 지정하는 대신 최상위 회사 등 '핵심기업'을 중심으로 기업집단 범위를 획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공정거래법상 '총수 관련자 중 친족'의 범위(총수 배우자, 4촌 이내 혈족 및 3촌 이내 인척)가 지나치게 넓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최근 친족 간 유대가 약해지는 점 등을 고려해 친족의 범위를 '총수 배우자, 직계 존비속 및 동거 친족'으로 한정할 것을 제안했다.
계속된 지적에도 개선 없어..."사회적 비용 줄여야"기업집단 및 총수 지정제도 개선이 필요하단 목소리는 매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정부에 총수의 법률 용어인 '동일인' 명칭부터 변경할 것을 건의했다. 원래 동일인이라는 명칭은 기업집단 소속 회사(계열사)가 사실상 동일한(same) 한 사람에 의해 지배된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대한상의는 현재 총수가 2개 이상 기업의 CEO(최고경영자)를 맡는 경우가 흔치 않고 대부분 전문 경영인 체제를 갖춰 현실과 괴리가 크다고 했다.

한경협은 올해 2월 정부에 제출한 '공정거래 분야 20대 정책과제'에서 총수 지정제도가 도입 취지를 이미 상실했으며, 자연인을 총수로 지정하는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또 지정자료 제출 시 단순 자료 누락, 오기만으로도 총수가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어 규제가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집단과 총수에 대한 규제가 1980년대에는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과도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제도 개선 건의가 수차례 정부에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국회의 움직임은 더디다. '대기업 봐주기'로 오해받을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쟁법 전문가들은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홍 교수는 "기업집단 규제를 총수 등 개인에 대한 제재보다는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본래의 목적에 맞게 초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제 대응, 지배구조 전환 등을 위해 기업이 투입하는 인력·예산 등은 모두 사회적 비용"이라며 "이런 비용이 생산적인 업무와 혁신에 투입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