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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와 '금자씨'에 담긴 코드

[패션으로 본 세상]'철학과 메시지'만큼 중요한 '비주얼과 이미지'

패션으로 본 세상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입력 : 2005.09.12 12:51|조회 : 18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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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패션 컨설팅 회사인 '말콤 브릿지'(Malcom Bridge)를 운영하는 김소희 대표가 새로이 패션 칼럼을 선보입니다. 김 대표는 이 칼럼에서 패션 트렌드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이슈들을 분석하는 글을 싣게 됩니다. 김 대표는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한 뒤 그동안 국내 유수 의류업체에서 패션 컨설팅을 수행했으며 현재는 (주)엘지패션 'TNGT'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올드보이'와 '금자씨'에 담긴 코드
해외여행이 자율화된지도 어느 덧 20년을 바라본다. 어쩌면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과거엔 아무나 해외에 나갈 수 없었단 사실을 믿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친숙해졌다면 친숙해진 것이 해외여행인데, 아직도 영 친숙해지기 어려운 것이 바로 '드레스코드'(Dress Code)문화다.

만약 해외에서 저녁파티에 참석할 일이 생긴다면 '드레스코드는 포멀 블랙(formal black)입니다' 따위의 문구가 없는지 미리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블랙의 턱시도 차림을 한 신사들 틈에 혼자만 반바지를 입고 서 있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드레스코드는 복장의 통일성에 대한 정중한 부탁이다. 파티의 주인은 자신이 제시한 드레스코드를 방문객이 지켜줄 때, 이 파티가 존중받고 있음을 느낀다. 만약 드레스코드가 블랙이라면, 하다못해 블랙의 소품이라도 챙기는 것이 초대받은 자의 예의다.

예를 갖추고 파티에 참석해 본 사람들은 이것이 나름대로 아름다운 문화임을 깨닫게 된다. 하나의 통일된 비쥬얼(Visual)을 모두 함께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묘한 감동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때 서로의 붉은 티를 보며 느끼던 동질감이나 일체감 같다고나 할까.

한국에선 손님을 초대할 때 조건을 내거는 일이 거의 없다. 자신을 낮추어 접대하는 것을 예의로 여기는 우리로서는 드레스코드의 문화란 참으로 낯설다. 도대체 드레스코드는 어떤 연유로 생겨난 것일까.

유럽의 역사는 드레스코드가 그들에게 얼마나 뿌리깊은 문화인지 알려준다. 유럽에서는 중세부터 왕들이 파티에 참석하는 귀족의 옷을 시시콜콜이 규정했던 예가 허다하다. 조금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그들은 사소한 것에도 칙령이나 법령을 선포하곤 했는데, 어떤 왕은 손수건은 반드시 직사각형이 아닌 정사각형을 소지해야 한다고 칙령을 내리기도 했다.

또한 이것은 모두 '왕들이 보시기에 좋더라'라는 단순한 이유에서 비롯됐다. 나폴레옹은 궁정에서 남녀가 입어야 할 옷을 조목조목 지시하고 직접 해 입을 재료를 내리는가 하면, 누구도 자신 앞에는 같은 복장으로 두 번 나타날 수 없다고 포고한 기록까지 남아 있다.

이 같은 비쥬얼의 중시는 우리의 전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의도적인 비쥬얼이이란 모름지기 어떤 ‘의미’를 담기 위해서 연출된다. 누군가 돌아가셨을 때(흰옷), 혹은 갓 결혼하였을 때(초록 저고리에 붉은 치마) 표현되는 비쥬얼은 있지만 단순히 시각적 유희를 위해 비쥬얼을 연출한다는 건 아무래도 상상하기 어렵다.

이같은 시각의 차이 때문에 우리는 색다른 경험을 하곤 한다. 특히 최근 우리를 놀랍게 하는 요소로 '박찬욱'이란 감독을 빼놓을 수없다. 그의 영화는 국내에서 큰 빛을 보지 못했다. '올드보이'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을 때, 우리는 솔직히 무언가 소홀했으며, 그에게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차기작 '친절한 금자씨'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지만, 문제는 이번에도 영화가 무언가 뜨뜻미지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금자씨'는 이번에도 베니스에서 기립박수를 받았으며, 비공식 3관왕 수상이라는 영예를 기록했다.

트렌드 분석가의 입장에서 볼 때 해외에서 주목하는 박감독의 매력에는, 그의 뛰어난 비쥬얼 감각이 한 몫을 한다고 보여진다. ’친절한 금자씨‘는 매우 패셔너블한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마치 방문객 모두가 완벽하게 드레스코드를 맞춰 입은 근사한 파티와도 같다.

그가 올드보이에서 보여준 펜트하우스의 인테리어와 유지태의 최첨단 옷장을 떠올려보라. 또한 금자씨에서 보여준 초반부의 유려한 오프닝과 앤티크한 의상, 흥미있는 포스터들을 떠올려보라. 비쥬얼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그의 영화는 한층 매력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비쥬얼에 대한 평가를 언제나 철학과 메시지 다음의 것으로 두는 경향이 있다. '웰컴투 동막골'처럼 철학과 메세지에 공감하는 영화라면 '팝콘 눈'과 같은 비쥬얼에서 아름다운 감동을 느끼지만, 일단 정신적인 부분에서의 공감이 유발되지 못하면 비쥬얼은 크게 중요시되지 않는다.

바로 우리의 오랜 전통, 자연스러움과 여백을 중시하는 소박함의 철학이 자리하는 까닭이다. 무엇이 옳다고 말하려는 생각은 없다. 차이는 그저 차이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디지털 시대를 지나면서 점차 좁혀져 가고 있는 듯 하다.

얼마 전 발표된 제일기획의 PDG(Post Digital Generation) 관련 보고서는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 들의 특징을 논하면서 ‘시각적 라이프 스타일(Anti literality)’을 언급한 바 있다. 비쥬얼과 이미지를 중시하고, 이모티콘과 같은 이미지형 신조에 집착하는 그들에게 더 이상 드레스코드는 낯선 것이 아닐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박찬욱의 영화 역시 철학과 메시지에 공감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영화’라는 점 하나 만으로 보다 많은 이들의 갈채를 아우를 때가 올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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