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구인가 도박인가…나가수의 빛과 그늘

'보는 음악'이 아닌 '듣는 음악'에 대한 관심은 그간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MBC '우리들의 일밤' 코너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이를 방증한다.

'가수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기본적 물음에서 출발한 '나가수' 덕에 대중은 그간 잊고 살았던 명제 하나를 깊이 인식했다. 역시 가수는 노래하는 사람이다.


'나가수' 열풍은 가수들 뿐 아니라 음악의 원곡자, 편곡자 등 '올드' 멤버들에게도 제2의 전성시대를 열어주고 있다.

그러나 시청률에 목을 멘 방송국이 가수들의 예술적 자존심을 '서바이벌'이라는 도마 위에 올렸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나가수는 오디션과 같은 일반인들의 '자발적 참여'와는 거리가 먼 가수들의 '생존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쎄시봉'에서 분 복고열풍…음악 다양화 기회

지난 8일 방송 직후 박정현이 부른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의 음원은 멜론, 소리바다, 벅스 등에서 1 등을 휩쓸었다. 포털사이트 다음 TV팟에 공개된 미공개 영상은 10일까지 조회수 600만건을 넘어섰다.


'나가수'는 재도전 논란이 PD교체로 이어지고 출연자가 하차하는 등 프로그램이 존폐위기에 몰렸었다. 그러나 3주 동안 두 차례의 경연을 통해 탈락자를 정하고, 청중평가단도 1인 3선제를 통해 공정성을 높이면서 시청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임재범, 김범수, 박정현 등은 가창력이 뛰어나지만 좀처럼 TV에서 만나기 힘든 가수들이었다. 지난 몇 년간 한국 대중문화계는 아이돌 그룹이 TV 예능, 가요 프로그램D을 싹쓸이하면서 노래만으로 승부하는 가수들은 설자리를 잃었다.

올해 초 시작된 '쎄시봉' 열풍은 변화를 몰고 왔다.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쎄시봉'의 아날로그 음악은 20~30대 디지털 세대를 뚫으며 음악이 세대 간 화합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세시봉' 콘서트 매진은 숨어있던 중장년 파워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특히 '나가수'는 1960~70년대 명곡들을 새롭게 재해석해 세대 간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최근 박정현 임재범이 부른 곡은 조용필과 남진의 대표곡이다.

황규완 YG엔터테인먼트 실장은 "아이돌 가수가 대세였던 가요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기성 가수들이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는 긍정적인 통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수 임재범의 고백도 가요계의 어두운 단면을 알려주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임재범은 "월 100~200만원의 저작권 수입만 받고 살았다"며 "6~7년 동안 무기력한 남편의 모습으로 지냈다"고 털어놨다.

생존권 건 도박…'참여' 본질 훼손 지적도

'슈퍼스타K'로 시작된 일반인들의 서바이벌 열풍에 정상급 가수들을 몰아넣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다. 케이블 오디션 붐을 탄 방송국이 시청률을 위해 '참여'의 본질을 훼손하고 가수들의 '생존권'과 '자존심'을 내걸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가수는 아마추어들의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한 '서바이벌 오디션'프로그램과는 거리가 멀다.

쟁쟁한 가수들이 나와 순위를 위해 경쟁하는 탓에 음악의 '질'도 높아지고, 시청자들이 맛보는 긴장감도 극도로 높아진다. 처음엔 순위구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가수들도 폭발적인 인기를 실감하면서 순응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가수들이 생존을 위해 자신 예술적 가치를 '순위'와 '점수'에 내맡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영남과 같은 원로 가수들이 '최악의 프로그램'이라고 비난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같은 비난을 의식한 듯 제목을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에서 '나는 가수다'로 변경했다. 탈락자와 순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 노래 본연의 감동에 집중하겠다는 제작진의 속내였다.

가수를 평가하는 잣대도 시간이 지날수록 '파격'이나 '퍼포먼스'에만 쏠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작사의 수익기반은 더욱 악화되고, 한류를 이끄는 아이돌 가수시장의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음반 제작자는 "현재 음원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는 나가수 음악의 경우, 유통사와 방송사가 대부분의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라며 "방송사가 제작사 몫을 가져가는 패턴이 이어질 경우 음원 매출에 있어서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