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트루맛쇼'로 본 리얼리티 방송의 허상

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가 1개월여 만에 방송을 재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가수 임재범이 출연해 부른 '너를 위해' 무 편집 영상은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조회 수가 500만건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나가수'의 방영을 일시 중단시켰던 1개월 전 논란이 무색하다. 당시 최하위를 기록한 김건모가 재도전을 하는 형식으로 탈락을 기피했고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이 시청자와의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 논란의 내용이었다.


네티즌은 김건모의 파이널 무대와 한 달 만에 다시 시작된 '진짜 노래를 잘하는 가수'들의 무대에 열광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반응은 오히려 김건모의 재도전에 명분을 부여해줬고 논란을 조기에 잠재웠다.

그렇다면 애초 '나가수'를 둘러싼 논란은 왜 그토록 시끄러웠던 걸까? 발단은 인터넷에서 확산된 '조작설'이었다. 김건모가 탈락이 결정된 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자 제작진이 순위를 조작하려 시도했다는 내용이다.

김건모가 '재도전'으로 탈락을 피하는 내용이 방송되자 앞서 유포된 조작설과 맞물려 제작진을 질타하는 여론이 급물살을 탔다. 결국 MBC는 제작 책임자를 교체하고 방송을 한 달간 쉬는 강수를 둬야했다.



◇끊이지 않는 조작논란…고발영화 '트루맛쇼'까지 등장

'나가수'를 둘러싼 논란은 리얼리티 형식의 기존 방송 프로그램들이 수없이 반복해 겪어왔던 '조작논란'의 연장선에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공연내용 외적인 요소가 심사결과에 영향을 주는지가 끊임없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1박2일'과 같이 연예인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보여주는 리얼한 반응을 담는 프로그램들도 연출설이 따라다닌다. 과거 '연애편지' 'X맨' '산장미팅' 등 연예인이 출연하는 짝짓기 프로그램도 인위적인 설정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급기야 방송사의 '조작'을 고발하는 영화까지 등장했다. 지난주 폐막한 전주국제영화제(JIFF)에 출품된 영화 '트루맛쇼'가 그 주인공이다. 전 방송사 교양PD 출신 김재환 감독이 기획 연출한 이 영화는 인터넷에서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몰래카메라로 실제 맛집 소개 프로그램의 제작과정을 보여준 이 영화는 TV에 등장하는 이들 프로그램이 짜여진 각본대로 만들어진 '가짜'라고 고발한다. 브로커가 음식점 업주에게 돈을 받고 방송출연을 시켜주는가 하면, 방송용으로 가짜 메뉴를 만들거나 출연한 손님도 가짜가 등장한다.

◇설정 혹은 조작…"어라, 이 프로그램도?"
맛집 소개 프로그램은 이 영화를 통해 뒤늦게 '조작설'이 불거졌지만 이와 유사한 설정 혹은 조작이 가미되는 프로그램들이 부지기수다. 단지 시청자들이 아직 모를 뿐이다.

과거 MBC 'TV특종 놀라운세상'의 인기 코너였던 '스타 전생체험'에는 수많은 연예인들이 출연해 최면 상태에서 자신의 전생을 들려줬다. 최면사가 최면을 걸때 외치는 '레드썬'은 시청자들에겐 최면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을 정도다.

그러나 실제 출연자들 중 상당수는 최면에 걸리지 않았고 방송 컨셉에 맞춰 눈을 감은 채 미리 설정해둔 상황을 읊었다. 탤런트 A씨는 멀쩡한 정신에 양파를 사과처럼 씹어먹어야 했고 B씨는 자신이 원하는 전생 스토리를 직접 써가기도 했다.

당시 제작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녹화할 때 분위기가 어수선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할 때보다 최면 성공률이 현저히 떨어진다"면서 "몇 차례 시도해도 안되면 방송은 나가야하니 즉석에서 전생이야기를 설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 SBS '비법대공개'의 '스타비법' 코너는 연예인이 자신만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주로 몸매나 피부관리 방법이 등장하는데 이중 일부는 제작진의 요구나 간접광고(PPL)와 연계된 내용으로 설정됐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배우 C씨는 제작진이 준 대본에 적힌 대로 다이어트를 위해 특정 식품을 먹는다고 방송에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C씨는 "사실 방송에 출연하기 전까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면서 "섭외가 들어올 때부터 요구사항이었기 때문에 으레 다른 출연자들도 그렇게 하는 걸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방송에서 보여주는 내용이 100% 진실이 아닌 경우는 다수다. 문제는 이런 사례들을 '조작'으로 볼 것이냐 아니냐다.

◇제작자는 '드라마'를 만들고 시청자는 '다큐'를 본다

"조작이냐 아니냐"라는 문제는 제작진과 시청자의 눈높이가 같지 않은 데서 출발한다. 예능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은 마치 '드라마'를 만들듯 스토리를 구성하고 재미 요소를 더하는 행위를 한다. 반면 시청자는 인위적 요소를 배제한 '다큐멘터리'를 기대한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보도나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작가가 스토리를 구성하고 재미나 프로그램 컨셉 등에 따라 설정을 하는 건 당연하다"면서 "시청자들에게 좀더 실감나고 재미있게 보이기 위해 설정된 내용임을 공개하지 않는 것일 뿐 조작이라 생각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보도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PD와 예능프로그램, 그리고 연성의 교양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의 제작마인드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한 예능 PD는 "시청자들이 드라마는 가상현실이라고 인식하지만 예능프로그램은 조금이라도 '리얼리티' 형식이 가미되면 보도프로그램과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며 "제작진의 역할을 거부한다면 말 그대로 연출자와 작가라는 직업은 필요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