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없는데 수신료 왜 내라고 하나요?"

#초등학생 자녀를 둔 주부 박모씨(36)는 집에 TV가 있지만 시청한 지 오래됐다. 애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거실에 있던 TV를 창고에 넣고 거실은 서재로 꾸몄기 때문이다. TV를 치우면서 집안 풍경은 달라졌다. 집에 오면 으레 리모컨부터 찾던 남편은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아이들도 스스로 놀 거리를 찾거나 보고 싶은 영상물은 박씨가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아 보여준다. 하지만 박씨 가족은 매달 TV수신료로 2500원을 내고 있다.

#서울의 한 원룸에서 자취생활을 하는 직장인 조모씨(28)는 집에 TV가 없다. 새벽같이 출근하는 데다 야근도 잦은 탓에 집에서 한가하게 리모컨을 누를 여유가 없어서다. 대신 시간이 나면 인기 TV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 VOD(주문형비디오)로 찾아보거나 이동 중 휴대전화로 챙겨본다. 조씨는 전기요금을 통해 TV 수신료를 계속 내왔다는 걸 최근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KBS 수신료 인상안을 놓고 정치권이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전기요금에 통합 징수되는 현행 수신료 체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채널 다미디어로 방송 환경이 변한 상황에서 납부를 거부하기 힘든 '준조세적 징수 방식'의 수신료 부과가 적절한지에 대해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6일 방송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TV 수상기를 보유한 가정은 매달 2500원을 KBS 수신료로 낸다.


이 금액은 1981년 정해진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지난 2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월 3500원으로 1000원 인상하는 안이 통과됐다.

인상안이 최종 국회를 통과할 경우 서민가정은 연간 1만2000원씩 부담이 늘어난다. 수신료는 전기요금에 통합 징수되기 때문에 TV를 보든 안 보든, KBS를 시청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방송을 볼 수 있는 단말기가 TV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휴대폰, 컴퓨터 등 다양화되는 등 미디어 환경은 변화했는데 수신료 시스템은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처럼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매달 꼬박꼬박 수신료가 나가지만 상당수가 수신료가 부과되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집에 TV가 없다면 수신료를 안 내도 되지만 행정적 절차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이를 아는 이도 많지 않다.

TV수신료-전기료 통합징수 방식 때문에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를 등한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편하게 수신료를 걷다 보니 수신료를 '눈 먼 돈'으로 인식해 난시청 해소 의무 등 서비스 질의 개선 노력을 게을리 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수신료를 의무 부과하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유영주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정책위원은 "텔레비전만 있으면 의무적으로 부과하는 'TV 수신료'가 아니라, '공공서비스 방송 수신료'로 성격을 바꾸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수신료의 성격이 바뀌면 납부방식도 자율적 방식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한국전력이 수신료를 대신 징수하면서 위탁수수료(수신료 수입의 약 6.5%)를 받고 있는데 수수료 수준이 적절한지 여부를 떠나 그 자체가 불필요한 비용이라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KBS가 모델로 삼고 있는 일본의 NHK는 NHK가 직접 징수하므로 이런 수수료가 들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수신료를 전기료 등에 포함시켜 통합 징수하는 나라는 한국, 그리스, 터키 등 3개국 뿐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박영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23일 고위정책회의에서 "수신료를 한전에 위탁할 당시에도 방식자체가 불법이냐 아니냐 논란이 굉장히 심했다"며 "한전에 6.5%의 수수료를 줘 국민들이 한전에 연간 370억원을 납부하는 것도 아이러니한 구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