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없는' 애플 믿음 흔들리나, 배당 요구 목소리

머니투데이

지영한 부장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고수해온 무배당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무배당을 통해 쌓아올린 막대한 잉여 현금은 혁신 제품 개발의 원천이라는 인식과 함께 애플사의 브랜드 파워를 높여온 방패였다.

그러나 잡스가 세상을 등지고 1주일만에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애플 투자자들이 배당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이는 애플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조짐은 톰슨 로이터가 미국의 주요 펀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11명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드러났다.

로이터는 12일(현지시간) 설문 결과를 전하면서, 아직은 응답자 대부분이 팀 쿡 최고경영진(CEO)이 이끄는 애플의 새 경영진에 강한 지지를 보내고 있고, 애플이 최소한 몇 년간은 훌륭한 신제품을 내놓을 것을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애플이 주주들의 충성도에 대한 보답으로, 현금 일부를 배당금으로 돌려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배당을 요구한 펀드매니저는 절반 이상인 6명에 달했다.

애플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컬럼비아 라지 캡 그로스 펀드의 피터 데이닌거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애플의 현금잔고와 잉여현금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애플이 주주보상에 나설 경우) 자신은 의미가 있을 정도의 배당을 바란다고 밝혔다.

잡스 치하의 애플은 오랫동안 배당을 거부해왔다. 애플은 회사에 쌓인 현금을 나눠주기 보다는, 제품 개발에 쏟아 부었고 가끔은 합병에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고도 애플은 현재 최고 현금보유 기업이다. 보유한 전체 자산가치중 5분의 1이 현금이다.

응답자의 대부분인 10명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쿡 CEO가 당분간 잡스의 비전을 지킬 것이란 믿음으로 애플 주식을 계속 갖고 있다고 밝혔다.

리걸 앤 제너럴 인베스트먼트의 나이젤 홀랜드 매니저는 "애플의 창조적인 재능은 넓고도 깊다. 애플은 이를 통해 소비자들 사이에 (경쟁사들이 넘보지 못할) '브랜드 해자(brand moat)'를 구축했다"며, 자신은 능력이 닿는 데까지 애플을 사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케이스 워츠 피프스 서드 애셋 매니지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자신들이 애플 주식을 보유한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앞으로 2년 정도는 주식을 계속 보유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웰스 파고 어드밴티지 그로스 펀드의 브루스 올슨 포트폴리오 매니저도 워츠 처럼 애플 주식을 보유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앞으로 5년간은 애플에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5명의 매니저는 애플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가 장기적으로는 시험받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일부는 쿡 CEO가 잡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애쓰다, 자칫 회사가 시험에 들지나 않을지, 일부는 잡스가 남겨둔 제품 파이프라인이 바닥난 이후에도 애플이 혁신적인 제품을 계속 내놓을지 걱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T.로우 프라이스의 데이비드 아이스워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스티브가 애플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스티브와 일하길 바랐는데'라는 말과 함께 다른 곳, 다른 일을 위해 회사를 떠나게 될까 걱정된다"며 "이러한 걱정이 앞으로 1~2년 동안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프스 서드 애셋 매니지먼트의 워치 CIO는 "만약 상품 출시나 제품개발 둔화를 목격하게 되면, 우리는 (주식을 계속 보유할지) 주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애플의 기량이 소진될 징후는 신제품을 사려고 며칠씩 진을 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말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애플 주식의 시가총액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던 1997년 50억달러 정도였지만 잡스가 CEO 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난 지난 8월에는 3490억달러에 달했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엄청난 성장을 구가한 셈이다. 하지만 제네바 어드바이저스의 리처드 쉐이너 매니저는 "우리는 애플 정도 크기의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애플의 성장은 둔화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포트 피트 캐피탈 그룹의 킴 커니 포레스트 애널리스트는 이미 애플 주식을 모두 팔아치웠다. 잡스의 죽음이 애플에 대한 비관론에 일조했지만, 기본적으로 애플이 '폐쇄적인 환경'하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판매하고 있는 점도 영향을 줬다는 설명이다.

'포스트 잡스' 시대를 맞이한 애플의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