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나눠도 브랜드는 못 나눈다?

기업의 가치는 브랜드의 가치다. 소비자들은 인지도가 높은 유명 브랜드를 선호하고 이는 기업의 매출과 직결된다. 기업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심하는 이유다. '사명'(社名)이 기업의 가치와 사업의 승패를 결정하는 셈이다. 이에 사명을 둘러싼 기업간의 다툼이 빈번하다. 재벌가도 예외는 아니다. 창업주에서 2~3세로 경영권이 넘어오면서 사명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공방이 펼쳐진다. 형제 등 친인척 간의 신경전은 법정 다툼으로까지 번진다.

아우는 웃고 형님은 울고 = 대성그룹은 지난 2001년 창업주인 김수근 회장이 사망한 이후 사명을 놓고 '형제의 난'을 펼쳤다. 김 회장은 사망하기 바로 전 해에 세 아들에게 경영권을 이양했다. 이에 따라 대성그룹은 장남인 영대 회장의 대성산업과, 차남 김영민 회장의 서울도시가스, 삼남 김영훈 회장의 대성홀딩스 계열로 나뉘었다.


그러나 지난 2010년 대성산업이 대성지주로 사명을 변경해 상장을 추진하자 대성홀딩스는 즉각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주회사라는 의미의 홀딩스'(holdings)가 대성지주와 같은 뜻이라는 이유에서다. 서울중앙지법은 대성홀딩스가 낸 상호사용금지 가처분과 간접강제 신청을 받아들였고 대성지주는 지난해 1월 대성합동지주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대성합동지주의 사명 변경은 하루 200만원에 달하는 간접강제금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 대성지주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대성홀딩스는 "유사한 회사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며 대성합동지주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상호사용금지 등 청구소송을 냈다. 법원은 지난 6일 "두 회사의 국문 상호와 영문 상호는 미세한 차이만 있을 뿐 그 외관과 칭호, 관념이 유사하다"며 삼남의 손을 들어줬다.


대성합동지주가 주식을 상장을 추진하기 9개월 전에 이미 대성홀딩스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재판부는 "대성합동지주가 대성지주라는 명칭을 사용해 대성홀딩스의 영업으로 오인시키려는 부정한 목적이 있어보인다"며 "대성홀딩스 측이 제출한 설문조사 결과에도 주식 투자자들이 회사명을 혼동해 금전적인 손해를 입은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롯데그룹, 매제가 승리= 롯데그룹은 로고를 둘러싸고 한바탕 전쟁을 치른 바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 2007년 관광여행업에 뛰어들면서 신격호 회장의 매제인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과 갈등을 빚었다.

호텔롯데는 지난 1978년 8월 알파벳 'L자'가 3개 겹쳐진 롯데심벌마크의 서비스표권을 등록했고 롯데쇼핑 등 계열사에도 이 권리를 일부 양도했다. 한편 김 회장은 1973년 신 회장에게 롯데 표장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허락을 받은 뒤 1978년 9월부터 해당 표장을 사용했다.

사실 롯데그룹은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사보에 롯데관광을 롯데그룹의 계열사로 표시해왔으나 대규기업집단 지정제도가 도입된 1986년부터 롯데관광 등을 계열사로 표시하지 않았다.

이후 롯데그룹의 계열사인 롯데닷컴이 2001년부터 관광여행업에 진출하자 롯데그룹은 롯데관광개발 등에 해당 표장을 사용하지 말라고 수 차례 요구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한 채 계속 영업을 하자 결국 호텔롯데 등 롯데 계열사 3곳은 롯데관광개발과 롯데관광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지난 2008년 5월 서울중앙지법은 "롯데그룹의 계열사가 아닌 롯데관광개발 등이 동일한 표장을 사용해 같은 계열사로 오인될 우려가 있다"며 "관광여행사업을 포함한 모든 간판과 명팜, 광고 등에 해당 표장을 삭제하라"고 판단했다.

이어 "신 회장이 김 회장과의 관계를 감안해 롯데관광개발의 행위를 묵인한 것으로 보인다"며 "롯데관광개발 등이 롯데그룹 측으로부터 서비스표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설정받았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롯데관광개발 등은 사명은 유지하되 로고는 쓰지 않기로 했다.

현대가도 사명분쟁을 피할 수 없었다. 현대기아차 그룹은 지난 2008년 신흥증권을 인수하면서 사명을 '현대차IB증권'으로 정했다가 소송에 휘말렸다.

현대증권이 "현대'라는 상호를 쓰지 말라"고 제동을 건 것.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증권이 낸 부정경쟁행위 중지 등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증권 투자자들이 보기에 두 회사를 동일한 회사나 계열 관계에 있는 회사로 오해할 가능성이 높다"며 "계열 분리가 된 이후 다른 계열에 속하는 기업이 새로 동일한 업종에 진출하면서 '현대'라는 명칭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결국 현대차IB증권은 'HMC투자증권'으로 이름을 바꿨다

한 법률 전문가는 "경영권이 승계되면서 계열사가 나눠질 경우 그룹에서 쓰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오려는 경향이 있다"며 "사명 등 기존 이미지를 가져오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들이는 수많은 비용을 절약하고 무임승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룹 측에서는 일반인들이 사명을 혼동 할 수 있고 기업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법정 소송을 불사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