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오빠'가 찔러넣어본 '작은 지옥'에 대하여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은 처음이다. 그의 소설을 애독하던 나는 '퀴즈쇼' 이후, 정확히는 '빛의 제국'부터 과거 '오빠의 모습'이 아쉬웠던 터다. 소설이 아닌 산문집을 들고 '돌아온 오빠'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가 수년간 한국을 떠나 해외에 머물렀고, 한국에서 벌어진 믿기지 않는 여러 일들을 '바깥에서' 보고 들었음은 안다. 해서 책읽기 방식을 바꿔봤다. '작가의 말'부터 읽기.


"한동안 나는 망명정부의 라디오 채널 같은 존재로 살았다. 국경 밖에서 가끔 전파를 송출해 나의 메시지를 전하면 그것으로 내 할 일은 끝이라고 생각했다."(작가의 말 중)

"2012년 가을에 미묘하게 변했다"며 "제대로 메시지를 송출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사는 사회 안으로 탐침을 깊숙이 찔러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의 고백을 접하며 작가의 맘을 헤아려본다.

눈으로 보고 겪고 스스로 정리하지 않은 채 한 번 '필터링'된 사건들 앞에서 우리는 관조적일 수밖에 없다. 연수를 간 지인이 돌아와 "세월호가 당신한테 그렇게 아파?"라고 물었을 때의 당혹감 같은 거다. 설마, 뉴욕타임즈 인터내셔설판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면서 한국 사회의 이런저런 사건을 냉정하게 바라본 그인데.


그럼에도 그가 '깊숙하게 찔러넣어야겠다'는 아주 원칙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는 걸 보면 이 땅이 아닌 곳에서, 이 땅에서 벌어진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건너 들으며 '이질감'이 아주 없던 건 아니었나보다.

어쨌든 '경쾌하게 세상을 조롱하고 비극적 상황에서도 농담을 던졌던' 그는 의도적으로 때론 의도하지 않게 거리를 둔 세상에 다시 발을 들여놓기로 했으니 만나볼 차례다.

1부의 '시간도둑' 편. 마르셀 에메의 단편소설 '생존 시간 카드'로 시작된 글은 이 시대 최고의 혁명가이지 영웅으로 통하는 스티브 잡스를 졸지에 시간도둑의 '주범'으로 몬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잡스가 개발한 스마트폰과 싸워야하는데 가난한 이들일수록 싸움에 질 수밖에 없다. 비용을 지불하고 비싼 스마트폰을 사고 이용 요금을 내면서 나의 시간을 빼앗기는 식이다. 그러나 '그들은' 스마트폰을 팔아 돈을 벌고 또 그 기업의 주식을 사서 계속 부자가 된다. 부자들은 소설처럼 32일, 34일 시간이 계속 늘어난다.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할 용기'에선 허위의식을 꼬집는다. 세상에 '럭셔리'한 여행을 할 자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비행기 여행은 '두 시간 전 도착해 신발을 벗고 허리띠를 풀고 노트북마저 꺼내야하는' 귀찮음과 비굴함으로 시작된다.

그럼에도 휴가는 꼭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보내야하고, 해외여행을 해보지 않으면 '우물안 개구리'가 되거나 '깨닫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지 않는' 덜 떨어진 사람으로 몰아가는 문화가 대세다. 거기에는 지구를 누비며 쏟아져 나오고 있는 여행서들이 한 몫 한다.

솔직히 모든 여행은 피곤과 위험을 동반하고, 여행에서 가족이나 파트너와 불화를 겪는 사건이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은 제로이니 오죽하면 옛말에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 했을까. 그래서 작가는 "너무 멋진 여행이었어"라는 말은 대부분 거짓말일 가능성임을 꼬집는다. '여행은 선택에 불과하다'는 당연한 결론을 그답게 풀어간다.

4부의 '패스트패션 시대의 책'에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계는 책값만 오르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함에도 독자들은 책값이 비싸다고 아우성이다. 저자가 제시한 근거에 따르면 물가는 지난 10년간 36% 올랐는데 같은 기간 책값은 18.5% 올랐으니 독자들의 주장이 틀렸다.

놀랍게도 작가는 스위스 명품 사장의 인터뷰를 빗대 "책값이여 더 떨어져라" 라고 말한다. 시계가 왜 그리 비싸냐는 질문에 그 회사 사장은 "필요가 없으니까요"라고 답한다. "사람에 필요한 물건은 값이 떨어지기 마련이고 그 회사가 만드는 시계는 필수품이 아니니 값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부연설명을 참고하자면 작가의 '궤변 아닌 궤변'에 웃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책값이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해 출판계가 공멸하고 사람들이 책이 없는 상황에 익숙해지면 책은 더 이상 '필수품'이 아니게 된다. 선택받은 소수만이 책을 사고 읽을 테니 지금보다 열배 비싸져도 항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책을 무조건 생필품으로 남기고 싶은 작가의 맘은 "지루고하고 쾌적한 천국 대신 흥미로운 지옥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산문집은 그가 2년 정도 몇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을 다듬은 모음집이다. 그가 이처럼 다시 '찔러본' 삶의 풍경은 '읽다 -말하다'로 이어질 예정이다.

'택시 요금 정책'이든, 자신의 고향 '부산' 이야기이든 매 장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료에는 작가의 풍부한 독서와 관람한 영화 이야기, 그리고 해외 경험을 토대로 한 '성찰'이 버무려져있다. 가장 큰 힘은 역시 그의 '입담'.

이야기꾼으로 다시 '돌아온 오빠'가 반갑다. 물론 세월이 흘렀으니 나이 든 오빠라는 점이 다소 아쉽다.

◇ 보다=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펴냄, 212쪽/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