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책누나들'은 왜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을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책누나' 장수혜씨/사진제공=책누나프로젝트

"6세 이하 글을 못 읽는 아이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친구들이나 보이는 친구들이나 똑같이 웃고 똑같이 즐거워해요. 오히려 맹아와 비장애인을 구분짓는 것은 어른들이죠."

지난해 8월, 삼청동 거리를 홀로 걷던 장수혜씨(26)는 교회 벽보에 붙어있는 어린이영화동화 강사 모집 공고를 보고 뭔가에 홀린 듯 교회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장씨는 강사 대신 봉사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떼를 썼다.


어린이도서관에는 봉사자가 없었다. 봉사를 지원하더라도 딱히 할 일이 없다는 것. 장씨는 자신의 경험을 십분 발휘해 어린이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을 상대로 영어·한글을 가리지 않고 책을 읽어줬다.

홀로 BGM(배경음악)을 깔고 목소리 연기를 하던 것이 나중에는 빔 프로젝터로 동화를 띄우고 여러 아이들에게 낭독공연을 하기에 이르렀다. 관객은 비록 20명 미만의 어린 아이들이었지만 브로드웨이를 꿈꾸던 장씨에게는 그 어느 공연장보다도 큰 무대였다. 차츰 주말마다 낭독공연을 보러오는 어린아이 팬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장씨는 10여 년 전 안방극장에서 촉망받는 아역배우였다.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사극 드라마 '여인천하'의 주인공 배우 강수연의 어린 시절인 '어린 난정이' 역할을 맡았다. 1997년과 1999년에는 KBS연기대상 아역상과 청소년상을 받기도 했고, 청소년드라마 '반올림3'에도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출연했다.


장씨는 "아이들이 도서관에 정기적으로 오지 않으니 준비해 온 동화가 그날그날 도서관에 방문하는 아이들의 수준과 달라 애를 먹었다"며 "나중에는 홀로 책을 읽기 힘든 6세 이하 아이들로 한정지어 공연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봉사가 꾸준히 이어지자 어린이 팬뿐만 아니라 지원자들도 생겨났다. 3명이 모였을 때 '책누나 프로젝트'로 이름을 정했다. 한빛맹아원에서 봉사하면서부터는 지원자가 더 늘어났다. 장씨는 "약 20명의 봉사자가 모여 정기적으로 주말에는 삼청동, 평일에는 한빛맹아원에서 책 읽어주는 일을 한다"며 "대부분 아나운서, 연기자 등 공연 관련 지망생이 많다"고 전했다.

책누나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장수혜씨/사진제공=책누나프로젝트

이번 달로 1주년을 맞는 책누나 프로젝트는 삼청로 문화축제의 공식 공연인 '삼청음악회(책누나의 북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오는 21일 삼청동 삼청감리교회 앞에서 무대를 마련하고 낭독공연을 한다. 재즈밴드 소울에스프레소, 뮤지컬 배우 박란주씨의 공연도 펼쳐진다. 교회 내부에서는 1년간 책누나 프로젝트를 되돌아보는 사진전도 열린다.

길거리 공연이기 때문에 원활한 진행을 위해 무선헤드폰 방식을 도입했다. 무선헤드폰 후원, 행사 진행을 위한 100만원 규모의 펀드레이징, 가수와 배우 섭외까지 장씨가 모두 발로 뛰었다. 장씨는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며 "당일 기부금은 모두 한빛맹아원에 전달할 예정이고 내 다음 달 월급의 절반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1주년을 맞이한 책누나 프로젝트가 전국으로 퍼져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평소 책을 잘 안 읽는 남동생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려 '책누나'라는 이름을 만들었다는 장씨. '책 읽어주는 문화'가 확산되는 것도 좋지만 '맹인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