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사장이 말하는 아깝다! 이책<10>

◇ 이것은 물이다 =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재희 옮김/2012/나무생각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은 나를 중심으로 내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다. 머리나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역시 '나'의 필요에 의해 어떤 사건을 복원해 보고, 상황을 유추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여기서 하나 더 나가 나와 더불어 사는 이들이 공유하는 공기, 혹은 세상, 혹은 물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부끄러운 세상이다. 그들에게 지성이나 말로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 실천과 자아성찰, 뼈아픈 진실만이 그들을 돌아보게 할 것이란 생각이다.

인생이 지옥 같다면,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이들에게 무지갯빛 세상을 말하기 힘들다면 이 책을 권한다. ‘디폴트세팅(default setting)’, 즉 컴퓨터의 기본 설정과도 같은 자기 마음속 신념의 형판을 벗어던지는 것이다.



◇ 사슴공원에서= 고영민시집/2012/창작과 비평


‘누가 목줄을 당기던 바람을 보았다 했나’
‘저녁 논물에 산이 들어와 앉는 것’
‘인중이 긴 하늘’
‘꽃은 당신이 쥐고 있다 놓아버린 모든 것’
‘물종지 같은 당신을
오래오래 생각해보고’

짧은 문장에 담긴 긴밀한 요구. 각계의 전문가들이 아이디어가 막히거나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는, 시집을 백 여 권씩 쌓아놓고 읽는다고 한다. 가까운 사이라도 잘 알 수 없는 ‘사람들 속의 무의식’을 시집 속에서는 뭉클 느낄 수 있다.

다가오는 융복합시대, 장르의 결합, 새로운 소비와 구조의 전환 앞에 속 깊은 시인의 울림을 읽는 일은 원시와 현대를 이어주는 초고속망이다. 발간되던 해에 미당문학상, 소월문학상, 윤동주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아까운 이 책!



◇ 이중톈 중국사 1~3권=이중톈 지음/김택규 옮김/2013/글항아리

중국 최고의 대중 역사저술가 이중톈. 인세로 벌어들인 돈으로 중국의 100대 갑부에 든 그가 어느 날 칩거생활에 들어갔다. 어떤 방송과 매체에도 나오지 않았다. 다들 그의 소식을 궁금해 할 즈음 총 36권의 ‘이중톈 중국사’ 시리즈의 집필 계획을 자신의 트위터에 발표했다. 머나먼 삼황오제의 때부터 최근세까지 장대한 규모로 통사의 집필을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1권 ‘선조祖先’ 2권 ‘국가國家’ 3권 ‘창시자奠基者’가 출간됐다.

소규모 출판사로서 우리는 사활을 걸고 이 책의 번역작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제1권의 번역원고를 받아든 날 흥분이 폭발했다. 과거로부터 거슬러 올라온다는 점을 제외하곤 이 책은 ‘통사通史’가 아니었다. 확실한 문제의식과 증거 제시와 논증, 시간대와 공간대에 대한 과감한 칼질, 주인공의 재빠른 교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서사구조, 뒷받침 되는 에피소드의 흥미진진함이 기존 역사서를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긴박감 속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아! 과연 이중톈이 이 책으로 자신의 대표작을 삼으려는구나 하는 결기를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역사를 새롭게 인식시켜주는 확고한 의지가 돋보였다. 정말 역사가 달리 보였다.

판매 면에서는 아쉬움이 컸다. 올해 1, 2, 3권을 펴냈지만 이중톈의 이름에 비해 책이 너무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12월에 4, 5, 6권이 곧 나온다. 시간을 거듭할수록 이 시리즈의 진가가 알려지리라 믿는다.


◇ 중국 농민 르포=천구이디·우춘타오 지음/박영철 옮김/2014/길

르포 작가인 천구이디·우춘타오 부부가 안후이성 농민의 생활실태를 3년에 걸쳐 취재해 폭로한 <중국 농민 르포>. 중국에서 출간 즉시 금서(禁書)가 되었으며, 해적판이 1000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 “중국 농민의 불평등을 고발한 기념비적 작품”이라며 독일 레트레 율리시스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생생함과 충격파로 100쪽을 읽는 데 2시간이 채 안 걸릴 정도였다. 1990년대 중국 농촌은, 조병갑이가 농민들에게 물세 받아먹던 1890년대의 조선과 무엇이 다른가 싶을 만큼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화이베이평원의 한 촌락에선 전 가족이 채소를 판 돈 5위안(2014년 환율로 약 900원)으로 봄 한철을 지냈다.

황산시 슈닝현 바이지향은 농민이 1년 내내 수고해도 평균수입이 겨우 월평균 58위안(1만440원)에 불과했다. 향 전체 호수 620호 중에 빈곤호가 514호로 82.9퍼센트에 달했다. 그 나머지 100여 호가 이른바 지방 권력자들인데, 저자들은 2000년부터 안후이성 농촌을 살펴보면서 “법을 어기며 자기 배를 불리는 자가 없는 곳이 없다는 사실에 숨이 막혀”옴을 느꼈다.

안후이성의 농촌지역 르포인 이 책은 요컨대 농업문제를 고발하고 농민의 항쟁을 전달하면서 문제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베일에 가려진 중국 잔혹현대사의 일면을 잘 보여주는 역작임이 분명하다. 글의 구성도 르포의 모범을 보이고 필력도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