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5형제의 도전, 산업은행 손잡고 세계1위로 날다

14년 전 당시 29살 청년은 외국계 컨설팅회사를 뛰쳐나왔다. 전자공학도 출신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던 그는 좀 더 부가가치가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사실 잘 모르고 시작했다. 이것저것 따졌다면 애초 도전은 불가능했다.

소프트웨어 솔루션사업을 했다. 글로벌기업의 소프트웨어를 사다가 국내 대기업을 상대로 깔아주는 사업이었다. 주문이 들어오면 거기에 맞춰 어떻게 생산·재고관리를 합리화할 것인지 공급망 관리를 맡아주는 시스템을 주로 다뤘다.


쉬운 사업이 어디 있겠냐마는 근본적 회의가 들었다. 모 대기업과 계약이 잘 됐는데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외국기업이 가격을 바꾸고 장난을 쳤다. 남의 물건을 갖다 파는 일의 한계였다. '내 제품을 만들어 수출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운명처럼 친구를 만났다. 절친한 고등학교 동창이 다리를 놓아 기술자 4명으로부터 사업아이템을 접했다. TV 수신, 위성통신 등을 위한 선박용 안테나를 만드는 구상이었다. 2004년 33살 성상엽 대표는 사업경험과 자본을, 친구 등 기술자들은 기술을 댔다. 그렇게 '독수리 5형제'는 의기투합했다.

젊음과 열정으로 승부를 걸었지만 넘어야할 벽은 많고 높았다. 당장 판로 개척이 깜깜했다. 해외시장을 뚫어야하는데 선박 내장재 시장은 굉장히 보수적이었다. 업력 40년씩 쌓아온 경쟁사의 쟁쟁한 브랜드 앞에 신생 회사가 설 곳은 없었다. 그나마 기술에는 자신 있었지만 이마저 실제 해양 환경과 국제기준에 맞춘 상용제품을 만들려면 시간이 걸렸다.

손동호 산업은행 중부지역본부장(사진 왼쪽)이 지난 3월 성상엽 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 대표이사에게 'KDB글로벌스타' 인증패를 전달하고 있다/사진제공=KDB산업은행

이 때 또 한 번 운명처럼 만난 게 KDB산업은행이다. 국책은행의 도움을 의뢰했는데 산업은행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물론 재무지표 등 일반적인 잣대로는 어려웠다. 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인텔리안)는 2005년 매출액 14억원에 4억원 적자였다. 2006년에도 매출액은 33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기술력과 성장성을 높이 샀다. 생소한 기술이었지만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조선 내장재 원천기술을 보유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본점 기술평가부가 기술력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내리자 벤처금융부 주관으로 2007년3월 30억원(지분투자 20억원, 전환사채 10억원)을 투자했다.

첫 인연을 맺은 후 지원은 계속됐다. 이듬해인 2008년1월 산업은행 평택지점은 시설자금 25억원을 빌려줬다. 인텔리안은 경기도 군포의 아파트형 공장 4개 호실을 새로 구입해 본격적으로 선박용 TV수신 안테나(TVRO) 생산을 시작했다.

이 무렵 인텔리안은 독자 브랜드 승부수를 띄웠다. 그동안 세계 1위 해양 전자장비 업체였던 미국 레이마린(Raymarine)에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납품해왔지만 '인텔리안'이라는 자체 상표를 내걸었다. 매출이 100억원도 안될 때 마케팅과 판매망 구축에 20억~30억원을 투자했다.

2008년9월 리먼 사태가 터지자 독자 브랜드 전략은 빛을 발했다. 런던증시에 상장돼 있던 레이마린의 시가총액은 1/60까지 폭락했다. 성 대표는 "OEM에 안주하고 있었으면 자칫 우리도 같이 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탄력을 받은 인텔리안은 공장 신축을 추진했다. 우주의 위성과 궤도를 맞춰 안테나를 테스트하려면 정남향 공장을 골라야 했다. 평택 진위산단이 알맞았다. 때마침 리먼 사태로 공장 부지를 내놓는 회사가 나왔다.

문제는 자금, 하지만 이 역시 산업은행이 도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위축된 투자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매출액 100억원대의 회사에 공장 신축자금 70억원을 신속히 내줬다.

성 대표는 "의사결정부터 완공 때까지 2, 3년은 걸리는데 산업은행이 처음부터 끝까지 저금리로 지원해주겠다고 해서 다른 은행을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의 전폭적 지원에 인텔리안은 실적으로 화답했다. 2010년 공장이 완공되고 넓어진 작업 공간에 맞춰 대형 선박용 안테나로 제품군을 확대하면서 회사는 급성장했다. 매출액은 2010년 160억원에서 2012년 280억원, 2013년 443억원으로 뛰었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은 매출증가에 따른 원재료 구입비 등 운영자금을 꾸준히 지원했다.

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의 연구원들과 위성안테나 제품 사진/사진제공=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

2013년부터 인텔리안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세계 1위 위성통신 사업자인 영국 인마샛(Inmarsat)이 전 세계 선박 등을 상대로 위성 전파송신으로 브로드밴드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안테나 사업자로 선정된 것이다. 처음에는 경쟁업체인 미국 씨텔사(통신용 위성안테나 분야 세계 1위 업체)만 공급권을 따냈다.

성 대표는 "떨어진 다음 날부터 인마샛을 쫓아다녔다"며 "이거 안되면 메이저 플레이어로 못 간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특히 인마샛이 사용하는 ka밴드 방식은 기존 ku밴드용보다 100배 이상 빠르다. 성 대표는 "2G에서 LTE로 넘어가는 수준의 획기적 변화"라며 "스마트폰이 처음 나올 때 뒤쳐지면 안 되는 것처럼 사활을 걸었다"고 말했다.

인마샛과 계약하기도 전에 수십억원을 투자해 시제품을 만들어냈다. 개발비는 산업은행이 단계별로 지원했다. 결국 현재 ka밴드용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95%를 달성하고 있다.

인텔리안은 위성기반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선박에서 항공기로 제품을 확대시켜나갈 계획이다. 방산용 안테나도 핵심 주력 사업 분야다. 성 대표는 "우리나라 기업 중 자체 브랜드로 미군에 바로 납품하는 곳은 인텔리안이 거의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세계 각국과도 공급협상을 벌이고 있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600억원, 5년 내 매출액 5000억원 달성이 목표다. 이미 선박용 위성통신 안테나와 터미널(단말기) 시장에서 세계 1위다.

성 대표는 단연 최고의 동반자로 산업은행을 꼽는다. 성 대표는 "산업은행은 기술과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며 "길게 보고 기업의 입장에서 지원해주는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산업은행도 기술기반 기업에 지원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윤도 산업은행 평택지점장은 "기술력 담보 대출을 강조하고 있는 정부 방침에 맞춰 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 같은 지역 내 우수기업들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